[주말이 즐겁다] 설악산 백담계곡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중에서 투명한 가을 햇살이 쏟아진다. 여울져 흐르는 맑은 계류는 온몸을 울긋불긋 물들인 채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가을 노래를 부른다. 뜨거운 감성과 차가운 이성과 역사를 보는 해안을 두루 갖췄던 시인의 시심이 서려있는 듯한 오색의 단풍 물결이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가을풍경

단풍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설악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설악동에서 접근하는 천불동 계곡,

하지만 설악에서 비교적 한갓지게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백담사가 자리한 내설악의 백담계곡을 빼놓을 수 없다. 더구나 1925년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 시인은 백담사에서 불후의 명시집 남의 침묵을 탈고 했으니, 백담계곡은 만해의 발길을 따르며 단풍의 정취를 느끼기엔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백담사까지의 백담계곡은 포장이 되면서 예전의 운치를 많이 잃었어도 백담사부터 수렴동산장까지의 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沼)와 담(潭), 그리고 아담한 폭포가 연이어진 절경이 펼쳐진다. 바람이 불때마다 단풍 든 이파리들이 빗금을 그으며 맑은 청류로 몸을 담그는 풍경도 좋다.

산길은 어린이 손으 잡고 걸어도 좋을 정도로 부드럽고 완만하다.

수렴도 전체에서 첫손에 꼽을 정도의 절경인 백담산장 위의 영산담에선 계곡의 가을 경치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 이어 황장폭포, 구용소, 사미소, 정유소 등이 이어지면서 사색하기에 더 없이 좋은 풍광이 펼쳐진다.

올해 백담사 주변의 단풍은 10월 초순쯤에 들기 시작해 중순쯤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고 있다. 백담사 아래쪽은 중순 이후에도 단풍을 볼 수 있다.

만해는 백담사를 무척 사랑했다. 20세때 처음 백담사에 들어와 인연을 맺었고, 잠시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25세때 다시 백담사로 돌아와 이듬해 출가했다. 그 후 3·1운동을 3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다시 백담사로 들어와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하는 등 인생의 고비 때마다 이곳 백담사를 즐겨 찾았다.


한용운의 사상 짚어볼 수 있는 '만해마을'

백담사 경내 한쪽에 자리한 만해 기념관에선 만해의 발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 1997년 개관한 만해기념관엔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불교대전 불교유신론 등 10여권의 작품 원본과 글씨 11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백담사 극락보전 앞 '화엄실'은 한용운이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이다.

또 이곳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머무르기도 했다.

지난 여름 백담사 인근의 남교리에 세워진 '만해마을'은 한용운의 사상을 짚어볼 수 있는 내설악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이 곳은 전시와 연수회와 문학포럼 등 각종 행사를 동시에 개최하고 마을에 머물며 만해의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입체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단순한 기념관과는 조금 다른 편이다.

남교리 심이선녀탕 초입에 자리잡고 있는 만해마을은 소양강 지류인 북천을 앞에 두고 설악산 자락인 안산(1,430m)을 등지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이다. 3층건물인 '만해문학박물관'은 만해의 사상을 짚어볼 수 있는 공간. 1층의 상절선시실엔 연보·사진으로 보는 연대기, 일대기를 담은 동양화 병풍, 만해의 친필 휘호 및 현판등이 대형 패널로 전시돼 있다.

만해마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은 2층 건물인 '심우장(尋牛莊). 만해가 말년에 거처하던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이름을 따온 이 건물은 문인과 학자, 스님을 위한 별채로 시대 정신과 사상, 문학 등을 토론하는 곳을 쓰인다.

입력시간 : 2003-10-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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