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문화읽기] 영화운동의 새 장을 기대한다


최근에 흥미로운 영화 관련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박철수 감독을 중심으로 30여 명의 감독이 참여하는 ‘뉴 시네마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가 결성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네트워크는 기존 영화제작과 배급 마케팅에서 거품을 빼고, 감독중심의 저예산 영화를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해서, 일반 극장이 아닌 온라인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상영하는 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창작중심의 제작과 수용자 위주의 배급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다양성과 진정성을 구현할 수 있는 대안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영화판의 복잡한 구도를 자세히 알 수 없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흥미롭기도 하고 충분히 기대를 품어봄직한 제안이다.

네트워크는 편당 제작비 5억원 가량의 저예산 영화 10편을 일차적으로 기획하겠다고 한다. 기존 시스템에서 영화 한 편 제작하고 마케팅하는 돈으로 10편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저예산 장편영화를 여러 편 만들겠다는 생각의 배후에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영상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가로놓여 있다.

고화질의 디지털 촬영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 방식으로 촬영된 화면을 필름으로 전환하는 키네코 작업을 거치면 일반 영화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 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다큐멘터리 영화 <영매>의 경우 디지털 방식으로 촬영해서 마케팅 비용까지 1억5,000만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 테크놀러지를 활용해서 제작비를 절감하고, 여러 감독들에게 연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본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감독의 표현영역을 넓혀가자는 의도는 누가 봐도 타당한 생각이다. 노파심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걱정스러운 것은 영화관람과 관련된 대목이다. 네트워크는 기존의 배급경로가 아닌 온라인과 문화시설을 이용해서 관객과 만나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컴퓨터 인터페이스(컴퓨터와 인간의 몸이 만나는 방식)로 장편영화를 관람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다. 또한 각 지역마다 마련된 문화센터의 음향시설은, 그 자체로는 훌륭하지만 영화 전용관의 그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영화 수용과 관련된 네트워크 측의 생각에는 낭만적인 측면들이 엿보인다.

또한 네트워크는 프랑스의 누벨 바그와 독일의 뉴 저먼 시네마 등에 필적할 만한 영화운동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작가주의 영화를 지향하며 영화가 산업적인 차원에서 독립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네트워크는 영화운동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중요한 그 무엇이 빠졌다는 느낌이다. 누벨 바그나 뉴 저먼 시네마 등이 영화운동일 수 있는 이유는 영화의 정체성, 달리 말하면 영화의 미학적 특성과 형식적 차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네트워크에서 영화미학과 관련된 문제의식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다양한 색깔의 감독들이 모였고 또한 아직 준비단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말을 하자면, 다양한 영화(films)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함께 전체로서의 영화(cinema)를 전복적으로 사유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영화의 미학적ㆍ형식적 측면에 대한 고민은 영화운동의 운명적인 표정이다. 특히 디지털 테크놀러지를 통해서 영화제작과 배급의 일대 전환을 가져오고자 한다면, 영화와 테크놀러지의 관계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누벨 바그나 뉴 저먼 시네마 또는 도그마 필름 등이 초기의 신선함과는 달리 급속하게 그 힘을 잃어갔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러 영화운동들이 여전히 문제적인 것은 주도적으로 활동한 기간이나 영향력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작품에 표현된 영화적 고민들이 여전히 현재의 문화예술에서도 반성적으로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제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네트워크에게 이러한 요청을 하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에서도 혁신적인 영화운동이 활기차게 일어나게 될까. 혹시 디지털장편영화가 충무로의 벤처영화로 자리를 잡는 수준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지켜볼 일이다. 네트워크의 활동이 한국영화에 잠재된 다양성이 활발하게 분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0-21 15:39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