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정씨 목자공파-정랑공파 '진짜 조상은 누구?'

종가집 며느리 거대 문중과 '나홀로 싸움'
온양정씨 목자공파-정랑공파 '진짜 조상은 누구?'

충정공 민영환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항거해 자결하기 사흘 전 스승인 의금부도사 정술교(鄭述敎)에게 괴이한 꿈에 대한 해몽을 바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정술교는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뵙고 오라며 거사를 응원했다. 그리고 제자의 거사 가 있자 식음을 끊고 유생들의 궐기를 촉구했다. 뒷날 그의 영향을 받은 장손 정화영은 3·1운동 직후 집에서 폭탄을 터뜨려 자결한다. 이후 정씨 가문은 일제의 탄압으로 풍비박산이 났고 6.25를 거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역사 속에 묻혀져 있던 정씨 일가의 내력은 정술교의 아호(必明齋, 반드시 밝힘)가 작용한듯 그로부터 80년이 지나 종가집 며느리의 지난한 '조상 찾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화제의 주인공은 온양정씨(溫陽鄭氏) 목자공파(穆字公派) 종손 며느리인 장금자씨(58). 정술교가 온양정씨 27세손이니 장씨는 3대 종부가 되고 아들은 정술교의 4대 종손이 되는 셈이다.


토지보상금 120억원 놓고 송사에 휘말려

장씨의 진실게임은 17년전 중학생이던 막내 아들이 "우리 조상은 누구냐" "족보는 있느냐"는 뜻밖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일찍 남편을 사별한 장씨는 아버지가 없어 의기소침해 지내던 아들의 가슴저미는 물음에 그 날부터 조상의 족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장씨는 남편의 뿌리를 찾아 본관인 온양을 시작으로 중앙도서관 족보실, 서울대 규장각, 정부기록보존실 등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93년 중순, 온양정씨 족보를 찾아냈다. 그리고 정부기록보존실을 드나들던 중 만난 친척 정모씨(6촌)와 함께 조상묘를 찾아나서 적지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던 중 장씨는 95년 갑작스럽게 송사(訟事)에 휘말렸다. 천안시가 온양정씨 조상묘가 있는 쌍용동 일대를 택지개발을 이유로 매입하면서 120억원대의 토지보상금을 온양정씨 정랑공파(正郞公派)에게 지급한 것이 문제가 됐다.

친척인 정씨는 "천안 종중에 문제가 있다"며 "소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장씨는 "종중일로 재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소송에 반대했다. 그러나 "종중을 위한 재산이 그들(정랑공파)에게 돌아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정씨의 주장이 워낙 강해 그에게 소송 일체를 맡겼다.

그러나 정씨의 소송에도 불구하고 토지보상금은 정랑공파측에 지급됐다. 이와관련, 장씨는 "나중에야 친척 정씨와 변호사가 등을 돌린 것을 알았지만 때늦은 뒤였다"고 말했다.

장씨는 몇차례 재판을 거듭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다툼을 벌인 정랑공파측이 족보를 위조해 가짜로 끼어들었다는 의문이 그것이다.

장씨에 따르면 초기인 1856년·1916년 족보와 '가짜' 의혹이 있는 정모씨가 제작한 1923년·1957년 족보 간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 이에대해 고문서에 정통한 한국정신문화원의 김동주 전문위원은 "1858년 세보와 1916년의 세보는 그 가계(家系)가 일치하는 반면, 1923년 간행된 세보에는 후손이 없어 절손(絶孫)된 가계에 진정한 자손인 것처럼 끼어든 흔적이 뚜렷하다"며 "1923년 이후에 간행된 족보는 변조됐다"고 단정지었다.

그러나 법원은 장씨와 김 전문위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씨측이 소송주체를 '종손'이 아닌 '종중'으로 한 절차상의 문제와 한두명의 전문가 견해는 증거로 불충분하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호적도 위조흔적 곳곳서 발견

사정이 이러하자 장씨는 '족보' 위조는 '호적' 위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것으로 판단, 정랑공파측 호적관계를 파고들었다. 그결과 호적도 족보에서와 마찬가지로 '위조' 의혹이 곳곳에서 발견됐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예컨대 장씨가 족보 변조의 증거로 제시한 28세손 정흠교의 아들 정의호(懿好)의 경우(1916년 족보에는 정이호(履好)로 등재돼 있고 후손이 없으나 1923년 족보에는 정의호(懿好)로 이름이 바뀌어 있고 후손 있음) 원 호적에는 처(妻) 박공세, 자(子) 명영 등으로 나타나 있는데 전적(轉籍)된 호적에는 첩(妾) 박공세, 서자남(庶子男) 명영 등으로 돼있다.

정씨는 이를 근거로 2000년 11월13일 대전지법 천안지원에 정의호외 13인의 호적을 정정해달라는 신청을 냈고, 그해 11월25일 보정절차를 거친 뒤 2001년 7월20일 천안지원은 직권으로 호적정정 허가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이 결정은 2002년 9월14일 상급심인 대전지법에서 뒤집어졌다. 신청인이 소송당사자인 '이해관계인'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뒤늦게 법원이 소장하고 있는 재판서류가 변조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장씨가 2000년 11월25일 보정해 제출한 서류에 이 사건과 관계없는 '정필호'라는 인물이 추가돼 기록된 것.

장씨측은 이것이 대전지법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고 천안지원에 근무하는 S씨와 정랑공파측이 결탁한 것으로 판단, 천안지검에 수사를 의뢰해놓은 상태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최호용 검사는 "변조된 것은 확실하다"며 "증거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량공파 정낙중씨는 '정씨' 아닌 '길씨'?

최근에는 ‘진실게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 사실들이 드러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9월 정랑공파종중이 2001년 5월 목자공파종중을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각하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서울지법 제19민사부는 판결문에서 ‘(공동선조가 불투명해) 정랑공파종중이 종중으로서 존재하지 아니하여 당사자능력이 없고, 정00씨 역시 대표권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법원의 종래 입장(정랑공파종중 인정)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9년이 넘게 진행되온 종중간 다툼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정랑공파종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정낙중 전회장이 ‘정씨’가 아닌 ‘길씨’라는 의혹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장씨는 정낙중씨의 부친 정명영씨의 경우 호적상 전호주와 호주관계를 명시하고 있지 않아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실제 정낙중씨 부인 김수홍씨의 본가 호적 상에는 1946년 4월19일 김수홍씨와 결혼한 사람이 정낙중이 아닌 ‘길낙중’으로 기록돼있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정랑공파종중은 “근거없는 주장”으로 일축하고 있다. 정낙중씨는 기자가 몇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지난 10월18일 천안시 정랑공파종중 사무실에서 만난 관계자들도 “장씨가 괜히 문중을 시끄럽게 한다”면서 취재에 불만을 나타냈다. 한 관계자는 “아직 1심밖에 안 끝났다. 2심에서 뒤집힐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소송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8년간 이 사건을 취재해온 MBC 이상호 기자는 지난해 12월 펴낸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 ‘당신의 족보는 진짜입니까’ 편에서 족보를 ‘죽은 자의 기록’(死者의 書)으로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17년간 계속되온 ‘진실게임’에서 족보는 누구를 향해 ‘진실’을 말해줄 것인가.

박종진 기자 jjpark2hk.co.kr


입력시간 : 2003-10-22 13:34


박종진 기자 jjpark2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