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만들기에 헌신한 동문들, 일부 명예실추로 최대 위기

정치삭풍 헤치고 만개하나?
대통령 만들기에 헌신한 동문들, 일부 명예실추로 최대 위기

대통령선거 운동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해 10월, 경남 양산의 B농장. ‘53기획단’(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부산상고 53회 동기) 멤버들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기원하며 지지 결의를 다졌다. B농장의 주인은 이영로씨. 노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을 촉발시킨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부산상고 53회 출신의 금융인이다. 최 전 비서관의 1년 선배.

B농장 결의에서 보듯 부산상고 동문들은 학교의 명예를 걸고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고 마침내 ‘꿈’을 이뤘다. 그 결과 부산상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포상고와 함께 상업고등학교로는 ‘유이’(有二)하게 대통령을 배출한 명문고로 자리매김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육사, 전두환 대통령의 대구공고, 노태우 대통령의 경북고, 김영삼 대통령의 경남고, 김대중 대통령의 목포상고와 마찬가지로 부산상고 인맥은 참여정부 출범을 계기로 주목의 대상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의 병풍 역할을 한 신상우 민주평통부의장(전 국회부의장)과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43회)를 꼽을 수 있다.

정가 일각에선 두 사람이 내년 총선에서 여의도에 입성할 경우 화려한 ‘부산상고 시대’를 열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내년 총선 출마와 관련, PK(부산.경남) 지역이 노 대통령 개혁정치의 시험무대로 떠오른 가운데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이 막후 역할을 하면서 부산상고 출신들이 ‘노풍’ 재점화의 진원지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ㆍ재계서 두드러진 활약

부산상고 동문 중에는 역시 금융계와 재계에 저명 인사들이 많다. 재계를 대표하는 인사로는 노 대통령의 한해 선배인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52회)이 대표적.

삼성그룹 사정에 정통한 재계 인사에 따르면 이 본부장은 대선 전만하더라도 건강 문제에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연말 정기 인사에서 교체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노 대통령의 당선으로 자리를 더욱 확고히 굳힐 수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본부장이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라는 게 가장 큰 이유. 이 본부장이 노 정권과 삼성 사이의 핫라인 역할을 맡고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재계 주변에 떠돌고 있다.

SK(주)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이자 석유화학업계 원로인 황두열 부회장과 정종순 KCC회장은 부산상고 49회 동기이고 40회 초반 기수로는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41회), 김영재 한국후지필름 대표(42회), 박득표 포스코건설 회장(43회), 배광우 DHL코리아 대표, 박안식 대창단조 회장, 최근 롯데월드 사장에 오른 오용환씨(이상 45회) 등이 있다. 황보수량 서울알미늄 사장은 51회.

노 대통령과 동기로는 강태룡 ㈜센트랄 대표, 김종삼 동국무역 전무, 김기성 DHL코리아 전무 등이 있다. 최 전 비서관과 동기인 한해 후배(54회)로는 신근철 신라해운 대표, 김종열 우모콜렉션 부사장 등이 있고 김정열 동원산업 대표(60회), 조운호 웅진식품 사장(68회) 등은 60회로 내려간다.

부산상고 출신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금융계다. 권경수 전 서울은행 상무(33회), 최연종 전 한국은행 부총재(43회), 유평렬 전 일은증권 고문(48회) 등이 대표적 원로이고, 지난 5월14일에는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와 김지완 현대증권 대표이사(이상 51회)가 나란히 승진해 동문들에게는 경사가 겹쳤다.

현재 은행권에서 일하고 있는 인사는 강종옥 외환은행 서부영업지역 본부장과 김용우 기업은행 부산지역 경남본부장(이상 54회) 등이 있고 김충곤 퍼스트유니온내쇼날뱅크 서울지점장(55회), 김수룡 메리디엔파트너즈그룹 회장(56회)도 대표적인 부산상고 출신이다.

실업계 고등학교지만 노 대통령 처럼 법조계로 진출한 인사도 적지 않은데, 황도연 전 헌법재판관이 38회로 원로급에 속하고 손진영 서울고검 검사(57회), 은진수 변호사(67회), 오세화 부산지법 부장판사(67회) 등이 눈에 띈다.

또 이양한 전 서울시의회 부의장(48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으로 잘 알려진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46회), 김응룡 삼성라이온스 감독(47회) 등도 부산상고 출신이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구설수에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노무현 시대’를 여는데 헌신한 부산상고는 최근 일부 동문들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구설수에 올라 있다. ‘재신임’ 정국의 단초를 제공한 ‘최도술 게이트’는 그동안 축적된 ‘학연’(學緣)의 문제점들이 드러난 상징적인 사건인 셈이다.

부산상고와 관련된 ‘구설수’는 참여정부 출범 초부터 있었다. ‘나라종금’ 사건이다. 이 사건은 나라종금의 대주주인 보성그룹이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에게 로비를 했는가 하는 것과 그 돈이 노 대통령과 연결됐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그러나 안씨는 “보성의 자금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생수회사(오어시스워터) 운영자금으로 썼을 뿐 로비나 대통령과는 무관하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오아시스워터의 전신인 ‘장수촌’ 대표가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8년 후배인 홍경태씨이고 그가 오아시스워터에서도 이사로 활동(등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자체만으로 노 정권의 ‘도덕성’은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 4월18일 청남대 이관행사에 참석한 2명의 부산상고 동문도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고 있다. 노 정권을 강타한 ‘양길승 파문’의 현장에 있던 정화삼 서울낫소 전무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썬앤문’ 사건의 당사자인 문병욱 썬앤문 회장이다.

정씨는 정유근 대양상선 사장, 이승보 국민참여운동본부 운영위원과 함께 ‘40년 지기 3인방’으로 통할 정도로 노 대통령과 가까운 동기다. 그는 노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래 선거가 있을 때마다 휴직계를 내고 선거운동을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정씨는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청주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범죄혐의자로부터 부당한 향응을 대접받는데 직간접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노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했다.

노 대통령의 4년 후배인 문씨(57회)는 최근 한국일보가 단독 보도한 정치 자금 관련 ‘녹취록’으로 앞으로 두고두고 참여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녹취록’에 따르면 썬앤문 그룹 김성래 전 부회장이 대선 전 노 후보 진영에 95억원을 전달했음을 암시하고, 노 대통령의 오른팔인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건넨 수표 사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대목도 있다.

부산상고 총동문회(회장 신상우)는 올해 1월16일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신년 하례식을 가졌다. 원래 롯데호텔에서 대규모로 할 예정이었지만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크게 축소했다고 한다. 신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역대정권의 예에 비춰 “자중하자”는 다짐을 가졌다. 그러나 이들의 다짐은 일부 ‘예외인사’들로 ‘공염불’ 될 처지에 놓였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0-23 10:57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