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우스에서 이웃집 남자로… 사람냄새 풍기는 자유인

[스타탐구] 신성우

테리우스에서 이웃집 남자로… 사람냄새 풍기는 자유인

많이 둥글둥글해졌다. 대책없이 널부러졌다는 말이 아니다. 최근 텔레비전 속의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내비친다는 듯 편안해 보인다. 가수 겸 연기자 신성우.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테리우스가 친근한 동네 오빠, 아저씨로 변화해 가고 있다.

세월과 함께 터득한 본능적인 느긋함이거나 의식적인 사회화, 둘 중의 하나일테지만 어쨌든 그는 한결 여유롭고 안정돼 보인다. 도시의 고독한 섬 이미지를 벗고 대중들 사이에서 호흡하고 사랑받는 스타로 거듭나고 있는 신성우, 그를 살펴봤다.


로커의 화려한 변신

후까시. 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 일본어인줄 알지만 사용한다. “거참, 완전 후까시 덩어리네~” 90년대 초반 신성우가 적당히 헝클어진 긴 머리에 금속성의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스탠딩 마이크를 휘어잡으며 록을 부르자 남자들은 위와 같이 중얼거렸다.

당시만 해도 록은 국민들에게는 낯선 장르였고 넘쳐나는 자의식을 감당 못하는 일부 뮤지션들의 고함 정도로 취급됐다. 그런 분위기 속에 록이라는 음악을 들고 혜성처럼 나타난 그는 순정만화 주인공이 부활한듯한 스타일리쉬한 모습으로 단박에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큰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 중저음의 목소리는 비주얼에서 일단 합격점수를 받았고 대학시절 조각을 했고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워 보이는 그의 라이프 스타일은 더 더욱 그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다. 신성우 앞에 붙는 영원한 전치사 ‘테리우스’라는 별명도 그때 만들어져 10년이 넘게 따라다니고 있다.

안소니의 부드러운 미소, 윌리엄의 헌신적인 사랑은 없지만 고독한 반항아의 매력으로 캔디의 마음을 붙든 테리우스처럼 신성우 역시 결코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을 것 같은 고집스런 록커의 모습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것이 후까시이건 아니건 그는 꽤 멋졌다.


참신한 '신성우 표' 연기

발표하는 앨범마다 반응도 좋았다. ‘내일을 향해’ ‘뭐야 이건’ ‘아웃사이더’ ‘꿈이란 건’ ‘서시’ ‘노을에 기댄 이유’ 등 히트곡만해도 여러 곡이고 그의 음악적 열정을 간파한 몇몇 연출가들의 눈에 띄어 뮤지컬 ‘록햄릿’ ‘드라큘라’에도 출연했다.

뮤지컬 출연으로 연기의 맛을 느꼈는지 그 후 연기하는 신성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약간은 어눌한 말투, 쓸쓸한 눈빛, 좀처럼 표정의 변화가 없는 ‘신성우 표’ 연기는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기의 남자’ ‘위풍당당 그녀’ ‘첫사랑’ 등 각기 다른 성격의 드라마에서 진지함과 코믹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더니 얼마 전 ‘상두야 학교가자’에서는 아줌마를 유혹하는 제비족으로 카메오 출연해 제대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노래와 연기의 차이를 묻는 분들이 자주 계신데 그건 단지 밥 먹을 때 숟가락을 쓰느냐, 젓가락을 쓰느냐의 차이 같다.

음악과 연기 모두 내 안의 있는 그 어떤 것을 끄집어 내는 과정이고 둘 다 재미있기 때문에 한다.” 그의 호연이 눈에 띄었는지 뒤를 이어 이현우, 윤종신 등 가수들의 연기 도전 사례가 늘어났고 시청자들 역시 능숙하진 않지만 어딘가 진실돼 보이는 그들의 연기에 애정있는 관심을 보였다.


모든것이 '재미' 있는 일

그는 ‘재미’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신성우가 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재미있는 일’인 동시에 ‘재미가 없어지면 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서른 중반의 남자답지 않게 귀엽고 생기발랄하다. 가방에 늘 지니고 다닌다는 여권과 은행 통장만 봐도 알 수 있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고 자유로운 사고 속에 좋은 음악이,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믿는다.

예전의 아웃사이더 분위기와 일상의 시니컬함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그가 먼저 손내밀며 인사하고 제작진들과도 허물없이 지낸다.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데뷔 초만해도 힘들었다. 언제봤다고 다들 그렇게 친한척들을 하는지… 근데 지금은 내가 그렇다. 사람사는 게 뭐 별건가? 다들 외로운 개인들이고 함께 어울려 다독거리며 살아도 모자란 세상인 것 같다.” 한번은 사람들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출근시간에 발가락이 부러진 비둘기가 절뚝이며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편의 시를 떠올렸단다. 그 시간에 넥타이를 매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 비둘기 같았다는 것.


배우로, 가수로, 미술가로….

애주가에 골초로 소문이 났지만 담배는 몇 년전에 벌써 끊었고 술은 촬영에 들어가면 거의 안 마신다. 언젠가 프로필에 주량을 양주 한 병이라고 썼던 것이 화근. 연기와 노래 외에 틈틈이 조각 전시회도 갖고 있다.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서. 영화 시나리오도 밀려든다.

그 중 ‘애니버서리’라는 코믹버디 장르를 관심있게 읽었는데 강남을 누비는 고도의 사기꾼 역할이 마음에 들어 출연결정을 내렸다. 상대역은 ‘소름’에 출연했던 김명민이다.

사실 그에게 연기, 노래, 조각 등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모두 신성우가 찾으려는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 그는 배우, 가수, 미술가 등의 직업인으로 불려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예술은 직업이 되는 순간 추해진다. 생활 속에 녹아 있을 때 고귀하다. 순전히 돈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차서 강박관념에 하고 싶지는 않다. 여자에 거는 조건이 크거나 환상에 젖은 것도 아니다. 다만 아직 필(feel)이 오는 사람이 없을 뿐. 얼마 전 출연했던 드라마의 작가와 스캔들이 나긴 했지만 그것 역시 사실과 무관하다고.

“요새 이것저것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만능 엔터테이너 어쩌고 저쩌고 하더라. 근데 나는 그 말이 신성우는 제대로 하는 건 하나도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웃음) 그런데 어쩌겠는가! 두루두루 다 재미난 걸.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생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

범접할 수 없는 불화산 같은 록커에서 갖가지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펼치는 연기자로 행동반경을 넓힌 신성우. 한결 둥글둥글해진 모습으로 사람 냄새 풍기는 그를 보고 있으면 괜히 흐뭇해지는 이유는 뭘까?

김미영 자유기고가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