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천사표가 있나봐요"

[스타 데이트] 유호정
"내 안에 천사표가 있나봐요"

‘스위트 홈’으로 돌아왔다. 10월 29일 처음 방영되는 KBS2 TV 새 수목드라마 ‘로즈마리(극본 송지ㆍ연출 이건준)’에서 유호정(34)은 ‘현모양처’가 된다. ‘앞집 여자’의 늦바람난 순진한 아줌마로 우리를 웃겼던 그녀는 이제 바깥으로 돌지 않는다.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인생 최대의 행복이자 목표인 알뜰 주부 ‘정연’ 역. 가정 살림에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는다.

1995년 탤런트 이재룡과 결혼해 주부 생활 8년을 맞은 유호정은, 정연과 닮은 듯 연예계에서도 소문난 살림꾼이다. 압권은 잡지에나 등장할 법한 아기자기한 집안 풍경. 3년 전 집을 속속들이 고치고 꾸며낸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엮은 ‘유호정의 행복한 집 이야기(서울문화사 刊)’를 펴낼 만큼 손끝이 야무지다.

“취미라고까지 하기는 뭐하지만, 집안 꾸미는 것을 즐겨요. 말끔하게 정리해놓고 있으면 뿌듯하고,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일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도, 주변 노처녀들에게 “왜 결혼을 안 하죠? 얼마나 좋은데!” 라며 ‘결혼 예찬론’을 펴는 모습도 극중 정연의 태도와 흡사하다.


작가들이 좋아하는 배우

‘로즈마리’는 이처럼 가족을 최고로 알고 끔찍이 아끼는 ‘현모양처’ 정연이 말기 위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작지만 소중한 가정의 행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 이색적인 것은 그러한 숭고한 가족애가 시한부 선고와 남편의 바람이라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정연은 남편(김승우 분)에게 여자(배두나 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삶을 정리하면서 그 여자에게 남편을 부탁하며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

“그런 천사표가 어디 있어?” 하는 야유가 나올 법도 한데, 유호정은 극 중 정연의 이런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남은 시간을 그저 원망하고 절망하며 보내기에는 아깝잖아요. 또 남편이 아직 젊은데 ‘혼자 살아라’하는 것도 이기적이죠. 저라면 내 남자가 홀아비 냄새 풀풀 풍기면서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것이 썩 유쾌할 것 같지는 않아요.”

흔히 유호정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김수현, 노희경, 송지나 등 인기 작가들과 호흡을 맞춰온 이력 때문. 이 작품 역시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로 스타 반열에 오른 송지나 작가가 기획 단계에서 “이 배역은 유호정이 딱이다. 유호정 아니면 안 된다”며 일찌감치 그녀에게 맡긴 배역.

“PD들이 좋아하는 연기자는 카리스마와 스타성이 넘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면이 좀 부족해서 작가들이 좋아하나 봐요.” 이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겸손한 표현. 어떤 역을 맡겨도, 설사 악역이라도 밉지 않게 소화해내는 그녀만의 솜씨가 꽤 노련한 까닭이다.

1991년 MBC 특채로 뽑혀 ‘고개숙인 남자’로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내민 유호정은 이후 ‘옛날의 금잔디’ ‘우리들의 천국’ ‘거짓말’ ‘작별’ ‘청춘의 덫’등 드라마에 출연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영화는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유일한 출연작.

장승업과 평생을 두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기생 역을 맡아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기로 관객들에게 잊혀지지 않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단 5분의 짧은 출연임에도 큰 수확을 거둔 셈. “영화 데뷔라고 작정하고 출연했던 것은 아니에요. 거장인 임권택 감독의 작품인 만큼, 연기자로서 배울 점이 많을 거라고 보고 촬영장에 나갔던 거죠.”


"결혼 뒤의 내인생, 행복해요"

그녀가 요즘 일상에서 받는 느낌은 여유로움이다. 유호정은 결혼과 진로 문제로 갈등하던 이십대를 그리워 하지 않는다. 결혼 하고 아이도 낳은, 서른 중반에 접어든 지금 자신의 모습이 한결 좋다고 한다. “최근 들어 주름도 생기고, 눈 밑도 꺼졌어요. 외모만을 따지자면 예전만 못하겠죠. 하지만 전 부끄럽지 않아요. 연륜이 느껴지는 지금의 내가 더 좋은걸요.”

그래도 그녀는 근래 들어 부쩍 어려진 느낌이다. ‘앞집 여자’의 미연과 다른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앞머리를 깡총하게 잘랐기 때문이다. 대신 의상은 눈처럼 흰 브라우스에 검정 롱 스커트같이 차분하고 성숙해보이는 스타일을 고집한다.

사실 ‘앞집 여자’의 강한 인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출연하는 터라 상당히 부담스러웠단다. “방영일이 다가올수록 걱정보다는 궁금함이 앞서요. 빨리 방영이 됐으면 좋겠어요.”

초조한 것은 시청률에 연연해서가 아니다. “대박이 터지면 물론 좋지만 거기에 현혹될 시기는 지났다”는 게 그녀의 말. “시청률이 나쁘면 기운이 빠지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인기가 아니에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찍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한꺼풀 아래 자신감이 살짝 엎드려 있는 말이다. 가녀린 외모지만 똑 부러지는 강단이 있는 배우, 유호정. 남편인 탤런트 이재룡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여자”라고 한 이유가 이 때문일까.


● 프로필

생년월일: 1969년 1월 24일 키: 165cm 몸무게: 43kg 혈액형: O형 취미: 음악감상, 비디오감상, 독서 가족사항: 1995년 탤런트 이재룡과 결혼, 슬하에 1남 학력: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3-10-23 15:31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