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부엌, 그리고 사랑

[문화 속 음식이야기] 소설 '키친' 돈까스 덮밥
소설 속 주인공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부엌, 그리고 사랑

“정말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뭘 기르는게 좋아. 아이든가, 화분이든가...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되거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본문 중에서)

가족을 일찍 여의게 된 사람은 외로움이 많으면서도 정작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껍질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은 이렇게 자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미카게는 20대의 나이에 죽음이라는 것에 익숙해진 여자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고 키워 주었던 할머니 역시 세상을 떠나자 이제는 슬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공황을 겪고 있다. 그런 미카게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부엌에 있으면 혼자라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찾는 행복

어느날 미카게 앞에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던 꽃집 청년 유이치가 나타난다. 그는 집세 때문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미카게에게 임시로 자신의 집에서 지낼 것을 제의한다. ‘지금까지의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잠자리’를 바라던 미카게로서는 쉴 곳을 얻은 셈이다. 그녀는 함께 있을 사람이 있고, 식물이 있고, 부엌이 있는 그곳을 곧 사랑하게 된다.

유이치의 가족 역시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원래 유이치의 아버지였던 에리코는 아내를 잃고 나서 성전환수술을 통해 여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미카게는 곧 두 사람의 따뜻한 배려로 점차 안정감을 찾아간다. 남성이었으나, 여성성을 지닌 에리코. 그녀는 미카게의 상처를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나갈 것인지 가르쳐 주게 된다.

‘키친’의 속편에 해당하는 ‘만월’에서는 유이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카게가 유이치의 집을 나온 후 뜻밖에 에리코가 살해되는 일이 일어난다. 고아가 되어버린 유이치는 미카게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과 담을 쌓으려 한다. 이번에는 미카게가 유이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고 있는 것을 깨닫지만 왠지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결국 미카게와 유이치는 각자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만월’의 마지막 부분은 외로움을 이겨내려면 누군가를 돌보고 보듬어야 한다던 에리코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출장 중에 계속 싫어하는 음식만 먹게 된 미카게,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길을 나섰다가 먹어본 것 중에 최고인 돈까스 덮밥을 발견한다. 그녀는 유이치에게 전화를 건다.

산사에 여행 중이라 두부밖에 먹지 못했다고 투덜대는 유이치를 위해 미카게는 따뜻한 돈까스 덮밥을 들고 무작정 유이치에게 달려간다.


입맛 살려주는 다양한 맛

책을 읽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돈까스 덮밥을 떠올리면 어느새 배가 고파진다. ‘키친’에 실려 있는 다른 단편인 ‘달빛 그림자’에도 굴튀김 덮밥이 나오는 걸 보면 혹시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덮밥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는 덮밥 종류가 꽤 많은데 쇠고기를 얹은 규동, 달걀과 닭고기를 얹은 오야코 돈부리 등이 유명하다. 돈까스 덮밥은 ‘가츠동’이라고 불린다.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전해진 서양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돈까스이다. 양식집에서 스프, 빵과 함께 나오던 것이 최근에는 ‘정통 일본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 일본 문화가 유행처럼 퍼지면서 ‘양식의 변종’이었던 돈까스가 과거와 달리 고급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밥과 국, 반찬이 함께 제공되는 일본식 돈까스는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숙하다.

가슴이 허전하고 외로울 때는 역시 입맛을 살리는 푸짐한 음식이 제격이? 두툼한 고기와 밥, 거기에 따뜻한 국물도 먹을 수 있는 돈까스 덮밥은 마음 속을 든든하게 해주기에 좋은 것 같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는 음식이다.

*돈까스 덮밥 만들기(2인분)


-재료: 돈까스용 등심 400g, 소금, 후추, 양파 1/4개, 대파 1/2대, 쑥갓, 김 1/2장, 다시물 1/2컵, 밀가루, 달걀 2개, 빵가루 1컵, 튀김기름, 밥 두공기


-만드는 법:

1. 고기는 1cm두께로 잘라 앞뒤를 두드린 다음 칼끝으로 힘줄을 끊어주고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0.5cm의 칼집을 낸다.

2. 준비된 고기에 소금과 후추가루를 앞뒤로 가볍게 뿌린후 20분 정도 지나면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물을 씌운다음 빵가루를 묻혀서 160℃의 기름에 넣고 튀긴다.

3. 양파와 파는 가늘게 채썰고 달걀은 풀어 놓고, 쑥갓은 두꺼운 줄기는 손질한다.

4. 덮밥 냄비에 다시물을 넣고 끊으면 양파와 파를 넣어 익으면 돈까스를 얹고 달걀을 넣어 반숙으로 익히고, 달걀위에 쑥갓을 얹는다.

5. 우묵한 그릇에 밥을 편편하게 펴 담고 4를 얹는다.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0-23 15:58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