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 홀인원] 성 대결 쾌거와 박세리 효과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58년 만에 남자대회 컷 오프 벽을 가뿐히 뛰어넘은 박세리에게 박수를 보낸다. 대회 시작 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골프팬들의 뜨거운 관심이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했을텐데, 이를 잘 이겨내고 ‘톱 10’까지 오른 것을 보면 과연 세계 여자 골프를 쥐락펴락 할 만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필자는 4라운드 내내 박세리의 샷과 표정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첫날 둘째날은 컷 오프 통과라는, 그리고 셋째날 넷째날은 ‘톱 10’이라는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주 만족스런 샷이 나왔을 때나, 어려운 퍼팅을 가까스로 성공했을 때는 간간이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한샷이 한샷이 버거워보이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미국 LPGA 투어에서도 이번 대회에서 만큼의 힘겨운 표정은 보기 어려웠다. 마지막날, 마지막 18번째 홀은 어렵지 않게 파를 세이브 할 수 있는 홀이어서 “끝났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끝까지 편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톱10’이라는 목표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이번 성 대결에서는 다시 한번 남자의 벽이 높다는 것을 모두가 실감했다. 골프는 역시 ‘ 비거리’의 싸움이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사실 박세리의 강점 중 하나가 다른LPGA 선수보다 상대적으로 비거리가 긴 것이다. 때문에 박세리는 파 5 롱홀에서 버디를 낚는 실력이 월등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자신의 강점을 살리기는커녕 남자들보다 거리가 짧은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내내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골프는 내가 잘하고 있어도 상대편 선수가 조금 더 잘하면 스스로의 플레이가 초라하게 느껴져 결국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기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마도 이번 대회를 통해 어렵고 힘든 코스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만큼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었고, 또 고도의 집중력을 라운드 내내 유지한 것이 박세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수확이 된 듯하다.

이번 대회에서 남자 프로들은 박세리보다 드라이브를 약 20 야드 멀리 보냈다. 롱홀에서는 40~50 야드까지도 차이가 났다. 당연히 버디를 낚는 확률도 높아야 하는데, 막상 홀이 끝날 땐 박세리와 마찬가지로 파 세이브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남자 프로가 여자 대회에 나와 성 대결을 하게 된다면 반대로 남자 프로들의 숏게임이 많이 향상되지는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도 해 보았다. 성 대결은 여자 선수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 선수들에게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 실제 이번 대회에서 남자 선수들도 박세리에게서 배운 점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족 하나.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나라 갤러리들의 수준도 한층 올라간 듯 하다. 박세리를 따라 무려 1,000여명의 갤러리가 몰려다녔는 데, 경기에 그리 큰 지장을 주지 않았다. 갤러리들도 선수들의 플레이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골프인으로서 무척 반가운 현상이다.

박나미


입력시간 : 2003-10-28 15:10


박나미 nami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