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의 힘… 방카슈랑스 출범 앞두고 생보사 러브콜, 동양생명 최대 수혜

'미다스의 손' KB를 잡아라
국민은행의 힘… 방카슈랑스 출범 앞두고 생보사 러브콜, 동양생명 최대 수혜

'총자산 219조원, 지점수 1,222개, 행원 1만8,301명.'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이 제휴 사업을 통해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충당금 규모에 짓눌려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지만 폭 넓은 지점망과 영업력,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는 무시할 수 없는 자산.

운 좋게 국민은행과 손을 잡은 기업들은 고공 비행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국민은행을 놓친 기업들은 깊은 한숨만 내쉰다. 예대마진(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로 인한 이익)이 갈수록 줄어 들어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 절실한 은행권 현실을 감안하면, 국민은행은 향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막강한 무기를 서서히 가동시키고 있는 셈이다. 바로 1등 은행의 힘이다.


동양생명과 삼성생명의 엇갈린 성적표

방카슈랑스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난 여름, 국민은행과 접촉을 시도한 생명보험사는 줄잡아 10여 곳에 달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파트너로 일찌감치 낙점한 곳은 부동의 업계 1위인 삼성생명과 2위를 다투는 교보생명, 그리고 주주로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ING 등 3개사에 불과했다. 최강의 제휴 파트너 면면에 중소형 생보사들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업계 최강 간의 제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던 삼성생명과의 제휴가 계약 조건에 대한 이견 탓에 성사되지 못한 것. 양측은 수수료, 계약 기간, 업무 권한 및 책임 소재 등을 두고 한 치의 양보 없이 자존심을 건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듭하다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ING와의 제휴마저도 전산상의 문제로 지연됐다.

은행마다 최소 3곳 이상과 제휴를 맺어야 한다는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라 삼성과 ING 대신 자리를 차지하게 된 곳은 '빅3' 중 하나인 대한생명과 중형 생보사인 동양생명. 사실상 어부지리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극적인 역전 홈런은 흔히 대타에게서 나오는 법. 업계 5위에 불과한 동양생명은 국민은행 창구를 통해 방카슈랑스 최대 수혜자가 되며 판매액 1위를 질주했다. 10월17일 현재 생보업계 전체 방카슈랑스 판매액은 총 9만5,000건에 월 초회 보험료 기준 6,991억원. 이중 동양생명은 2만600건에 1,048억원 어치를 팔아 치웠다.

판매액으로는 15%, 건수로는 21%에 달했다. 교보생명(1만6,800건, 992억원)과 대한생명(1만9,000건, 455억원)을 크게 앞섰다. 게다가 국민은행과의 제휴에 실패한 삼성생명은 이 기간 고작 5,520건에 343억원 어치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동양생명의 선전은 '수호천사 꿈나무 저축보험' '수호천사 연금보험' 등 상품 자체의 매력과 함께 국민은행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큰 밑거름이 됐다. "1개 보험사 점유율이 50%를 넘을 수 없다"는 규정을 의식해 은행측이 가장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동양생명에만 '일시납 연금 상품' 판매를 허용해준 것도 결과적으로 동양생명에 날개를 달아줬다.


업계 4위 LG화재의 비상

손보 업계도 양상은 비슷했다. 국민은행과 방카슈랑스 제휴를 맺은 손보사는 업계 1위 삼성화재를 제외한 현대, 동부, LG, 동양 등 업계 2~5위 보험사. 삼성화재는 450억원에 달하는 부실 대출에 대한 보험금 지급 여부를 놓고 국민은행과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탓에 아예 제휴 대상에서 제외됐다.

초반부터 기세를 올린 곳은 이중에서도 특히 LG화재. 국민은행의 등을 업은 데다 경쟁 업체들에 비해 장기 저축성 보험을 집중 판촉한 것이 톡톡히 효과를 본 것이다. 10월17일까지 LG화재는 총 2만5,173건에 초회 보험료 기준 2억4,825억원 어치 보험을 팔아 단연 1위를 기록했다.

전체 점유율 면에서는 31.8%로 현대해상(31.2%)을 간발의 차이로 제쳤지만, 개인들을 상대로 한 가계성 보험에서는 무려 53.1%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단체보험 등 기업성 보험에 집중한 현대해상이 2억4,605만원 어치를 판매했고, 동양(1억3,858만원) 동부(8,237만원)가 뒤를 이어 국민은행 제휴사들이 2~4위를 차지했다.

국민은행을 놓친 업계 1위 삼성화재는 6,048만원 어치를 판매해 시장 점유율이 7.8%에 그쳐 자존심을 크게 구겨야 했다.


"SKT와는 손 못 잡아"

국括뵉敾?9월초 이동통신업체 LG텔레콤과 손을 잡고 '뱅크온' 서비스를 시작했다.

'뱅크온' 서비스는 국내 최초로 구현된 스마트 칩 기반의 모바일 뱅킹 서비스. 칩에 휴대 전화 주인의 계좌 정보가 담겨 있어 적외선 인식 장치 등을 통해 계좌 조회와 이체는 물론 현금 인출과 교통요금 결제 기능까지 갖춰 지금까지의 모바일 뱅킹 서비스에 비해 한 단계 진보된 서비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작 절차도 대폭 간편해졌다. 기존 폰 뱅킹이나 모바일 뱅킹이 계좌 이체의 경우 최고 10여단계의 입력을 해야 했지만, '뱅크온'은 버튼 한 두 번만 누르면 거래가 가능하도록 했다.

국민은행과 LG텔레콤의 제휴가 주목을 받은 것은 그간 국민은행이 이동통신회사의 모바일 뱅킹 서비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기 때문. 기존 모바일 뱅킹이 이동통신사가 모든 서비스를 개발하고 금융기관을 끼워주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지면서 이동통신사가 금융 정보 및 수수료에서 은행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

무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SK텔레콤의 '네모' '모네타' , KTF의 'K-merce' 등이 모두 이런 방식이었다. 이들 서비스가 대중화에 실패한 것도 "통신회사에 금융 영역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탓에 국민은행을 필두로 한 은행권이 거세게 반발한 결과였다. 특히 국민은행은 통신업계의 강자 SK텔레콤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주도권 다툼을 해왔다.

'뱅크온' 서비스가 가능했던 것은 금융 서비스는 은행이, 통신 서비스는 이동통신사가 제공한다는 원칙에 국민은행과 LG텔레콤이 합의했기 때문. 즉, 고객의 금융 거래에 따른 거래 정보와 이용 수수료는 모두 국민은행이 가져가고 LG텔레콤은 네트워크 제공과 이에 따른 통신료만을 받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현재까지 '뱅크온' 서비스는 순항을 하고 있는 상태. 서비스 이용을 위해서는 30만원대 단말기를 새로 구입해야 하지만 시행 2개월도 안돼 가입자는 5만명을 거뜬히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G텔레콤 관계자는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과의 제휴에 힘입어 실적이 꽤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경쟁사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실적 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며 "경쟁사들도 예의 주시하며 시장 진입을 넘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투신 상품 판매 점유율도 50% 넘어

국민은행 창구를 통해 판매되는 투신 상품도 실적 면에서 타 은행을 압도한다. 9월말 잔액 기준으로 은행권 전체에서 판매된 투신 상품은 12조5,000억원 가량. 이중 국민은행은 6조5,000억원을 팔아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조흥(1조8,000억원) 신한(1조4,000억원) 등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실적이다.

국민은행이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랜드마크투신운용의 '랜드마크 신종MMF 3호'와 미래투신의 '미래 솔로몬 신종MMF 2호'는 현재 잔액이 각각 3,000억원과 2,000억원에 달하는 등 최고의 인기 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을 정도다.

투신상품팀 김규현 과장은 "합병 전 주택, 국민은행이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투신 펀드 판매에 나선 데다, 김정태 행장이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 차원에서 펀드 판매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 타 은행을 압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풍도 거세다. 제휴사들로부터 반(半)강제적으로 과다한 수수료를 떠안기고 있다거나, 수익성에 지나치게 혈안이 돼 직원들에게 강제 할당을 시킨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돈다.

한 시중은행 한 임원은 "방카슈랑스나 모바일 뱅킹 서비스 등 새로운 사업에 의욕적인 것은 좋지만 지금의 상황은 분명 과당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국민은행이 최대 은행의 지위를 이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국민은행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최대 은행으로서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것일 뿐, 제휴사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 방카슈랑스팀 이승철 차장은 "일부 은행과 보험사 등이 악성 루머를 퍼뜨리고 있지만 일일이 대응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고 발끈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뒤로 지금 이 시간에도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과 손을 잡기 위한 타업종 기업들의 물밑 움직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0-30 15:44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