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최고의 흥행카드, 제대 후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코트 누벼

돌아온 '매직 히포' 현주엽 겨울코트 달군다
프로농구 최고의 흥행카드, 제대 후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코트 누벼

10월25일 전국 5개 도시에서 일제히 막을 올린 2003~2004 애니콜 프로농구 코트에 반가운 얼굴들이 돌아왔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느라 몇 시즌 동안 소속팀을 떠나 있던 스타플레이어들이 예비역 신분으로 전역 신고를 한 것.

용병들이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판을 치는 겨울 코트에 화려한 기량의 ‘토종 스타’들이 돌아온 것은 그 자체로 농구 흥행에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그들 가운데서도 ‘매직 히포’ 현주엽(28ㆍ195cmㆍ부산 코리아텐더)의 복귀는 단연 농구 팬들의 최대 관심사.

현주엽은 힘과 높이, 기술의 삼박자를 함께 갖춘 용병 선수들과 ‘맞장을 뜰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내 선수 중 하나인 데다 서장훈(서울 삼성) 김주성(원주 TG) 등이 주도한 ‘빅맨’ 대결구도를 다시 짤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다. 3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현주엽이 진가를 발휘하리라고 팬들이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과연 현주엽은 올 겨울 농구코트에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면서 태풍의 핵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서장훈·김주성과 함께 '빅맨3'시대 활짝

"복귀 후 맞는 시즌 첫 경기에서 져 좀 아쉽네요."

25일 부산서 열린 안양 SBS와의 홈 개막전에서 팀이 69대 79로 패배한 뒤 내뱉은 현주엽의 첫마디다. 그는 이날 경기에서 20분 가량 코트를 누볐지만 8득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팀도 진 데다 자신의 활약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아쉬울 만했다. 하지만 컴백 무대는 이제 시작이다. 게다가 현주엽의 몸은 아직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한 상태임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지난해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농구 대표팀이 만리장성 중국을 넘어 금메달을 따내는 데 수훈을 세운 얼마 뒤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리던 왼쪽 무릎에 칼을 댔다.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로 악화된 무릎 상태를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수술이었다.

1년에 걸쳐 기나긴 재활치료와 회복 운동이 이어졌다. 공을 손에서 놓은 채 매일같이 오전 오후로 재기를 위한 몸 만들기에만 전념했다. 지난 8월 상무(국군체육부대)에서 제대했지만 팀 훈련에 본격 합류한 것도 고작 한 달 반 전이다.

“오늘 경기를 뛰어 보니 괜찮았어요. 경기 중에는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에 아파도 잘 모를 수 있는데, 경기 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아마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복귀 첫 경기에서 팀이 패했지만 현주엽의 목소리에 여유가 묻어난 까닭이었다.

허나 운동선수가 달고 다니는 부상이란 것은 일반적으로 완치가 없다. 현역으로 뛰는 내내 조심조심 부상 부위에 신경을 기울이며 운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현주엽이기에 당장 무리하면서까지 ‘오버’할 생각은 없다. 오랜만에 팬들에게 인사하는 상황이라 자칫 의욕이 앞서 호기라도 부리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겪을 수 있기 때문. 상무 시절의 은사였던 추일승 코리아텐더 감독 역시 현주엽을 금이야 옥이야 다룬다. 몸 상태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무리한 풀타임 기용보다 최대한 아껴서 적재적소에 출장시킨다는 복안이다.

현주엽은 자신을 괴롭혀온 무릎보다 오히려 부족한 훈련량으로 인해 떨어져 있는 경기 감각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몸놀림이나 공을 다루는 게 전체적으로 마음에 안 들어요. 시즌에 대비해 운동한 지 1주일도 안된 탓인지…. 하지만 팀에 적응이 되면 서서히 좋아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현주엽의 재기에 대한 자신감은 확고하다. ‘군대를 갔다오면 진정한 남자로 거듭난다’ 는 말이 새삼스러울 정도다. “상무 시절을 겪으면서 인내심이 커진 것 같고, 무엇보다 코트에 서고 싶다는 의욕이 더욱 강해졌어요.”


강한 자신감 "이제부터 시작"

서장훈과 함께 한국농구의 쌍두마차로 군림하던 아마 시절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불운으로 점철됐던 입대 전 시즌들을 돌아보더라도 그의 다짐은 헛말이 아니다. “정말 많이 아쉬운 세월이었어요. 그러나 중요한 건 이제부터가 아니겠습니까?”

현주엽을 두고 그간 부정적 평가들도 적잖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개인플레이를 즐기고 팀워크를 鰻4蔑?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런 말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 플레이 스타일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경기 중에는 항상 주변 상황을 판단한 다음에 플레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상무 시절 그를 지도했던 추일승 감독도 현주엽을 적극 옹호한다. “승부욕이 누구보다 강하고 해결사로서의 적극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비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시즌 4강 돌풍을 일으켰던 동료들을 신뢰하는 현주엽은 시범경기 때부터 어시스트를 곧잘 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다른 선수들이 잘하니까 제가 공을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경기 상황에 따른 플레이를 해왔다는 그의 말에 근거가 될 만한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현주엽은 마음 한 켠의 부담감을 숨기지 않았다. 연봉 3억원으로 프로농구 전체 2위(1위 서장훈ㆍ4억원), 팀내에선 지존의 몸값을 받는 그이기에 팀 성적을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죠. 항상 부담감을 가지고 운동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돌풍의 주역인 동료들이 건재한 데다 믿고 따를 수 있는 감독이 오셨기에 잘 될 것으로 봅니다.”

KBL(한국농구연맹) 공식잡지 ‘점프볼’ 11월호의 표지 모델은 다름 아닌 현주엽이다. 올 시즌 100만 관중 시대를 목표로 야심차게 출발한 KBL이 현주엽의 흥행력을 그만큼 높게 평가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주엽으로선 소속팀의 성적 못지않게 프로농구 전체 인기에도 큰 역할을 해줘야 할 입장인 것이다.

파워 넘치는 드라이브인과 골밑 싸움, 그리고 호쾌한 슬램 덩크로 대변되는 ‘매직 히포’ 현주엽. 그의 화려한 재기 쇼는 언제쯤 본격화될까. “기다려 보세요. 무릎이 완벽해지는 2~3라운드에 가서는 덩크슛도 펑펑 터뜨릴 겁니다.” ‘하마의 마법’이 기다려지는 겨울코트다.

토종 빅맨3… 누가 최고인가
   

서장훈(29ㆍ207cmㆍ서울 삼성)과 김주성(24ㆍ205cmㆍ원주 TG)은 최근 한국농구 최고 센터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는 신ㆍ구 간판 주자들이다. 여기에 포지션은 다르지만 현주엽(파워 포워드)이 가세하면 전문가들이 말하는 '용병급 토종 3인방'이 완성된다.

얼마 전 한 스포츠신문이 각 팀 감독들의 선호도를 인용해 막내인 김주성이 셋 중 가장 낫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평가 대상으로 거론된 현주엽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일까.

"주성이는 좋은 선수이고 그런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소속팀인 원주 TG가 우승권에 가까운 전력인 데다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어 정규 리그에선 주성이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같은 큰 경기에서는 아무래도 경륜이 훨씬 많은 장훈이 형이 더 무서운 선수가 아닐까요. 만약 빅매치에서 두 선수가 맞붙으면 장훈이 형이 더 나을 것 같은데요."

자존심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 현주엽에게서 본인에 대한 솔직한 자평을 들었다. "뭐, 저야 팀이 약체니까…. 다만 우리 팀 조직력이 매끄럽게 돌아가고 전력이 상승된다면 저도 아마 더욱 두려운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3-10-30 16:32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