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있는 풍경] 다방의 추억


인사동에서 ‘사루비아 다방’전이 열렸다. 사루비아 다방이 있던 자리는 새로 건물이 올라가고, 골목 건너편 다방에서 설치 미술전이 열린 것이다. 지하는 도색하나 되지 않은 채 황량했으며 액자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그 황량한 각각의 벽에는 TV 모니터, 거울과 어항, 그리고 테이블이 있었고 영상 프로젝터가 그림자와 옛 느낌을 담은 영상을 쏴 지난 다방의 추억을 하나 하나 곱씹어 댔다. 어쩌면 소멸되어가는 모든 다방에 대한 추모전 같은 것이었을까.

한 때는 다방이 문화 공간이었던 적이 있었다. 일제 시대에서부터 196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의 문화인들도 다방이라는 공간을 매개체로 성장했다. 그때는 다들 힘들게 살았기에 다방은 그들의 작업실이자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랑방이었다. 사람들은 그때를 ‘낭만의 시대’라고 불렀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다방에는 그런 낭만의 느낌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풍요로워진 요즘에는 다방에서 한 잔의 커피에 의미를 담거나, 사람들과 만나 커피를 마시며 문화 담론을 나누는 이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연락할 수 있으니 구태여 다방에서 만나야 할 이유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낭만을 생각하고 한번쯤 다방을 가봐도 옛맛이 나질 않는다.

전시회에서 사온 CD를 컴퓨터에 넣고 찬찬히 보니, 수많은 다방 사진들과 소싯적에 다방 DJ를 했다는 몇몇 화가들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배경에는 예전의 다방에서 즐겨 듣던 ‘Dust In The Wind’, ‘Holiday’ 같은 노래마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불현듯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승환 커피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0-31 10:54


한승환 커피 칼럼니스트 barist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