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막장' 빛낸 물오른 연기

[스타 데이트] 이종원
인생 '막장' 빛낸 물오른 연기

영화 ‘최후의 만찬’(감독 손영국ㆍ제작 해바라기 필름)에서 이종원(34)은 과감히 망가진다. ‘오버야, 오버~!’ 시사회가 열리기도 전에 그는 필름을 “무려 서른 세 번이나 보고 또 보며” 자못 진지하게 결론을 내렸다. “심하게 구겨졌다. 웃기려 하다 보니 좀 오버 했다.”

영화 ‘최후의 만찬’은 인생의 막다른 곳에서 만난 곤봉, 세주(김보성 분), 재림(조윤희 분)이 벌이는 해프닝을 담은 영화. 이 작품에서 이종원은 삼류 건달 ‘곤봉’ 역을 맡았다. 엉겁결에 다른 조직의 보스 다리를 찔러 상처를 내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린 단순 무식한 깡패다.

상대 조직에 잡혀 개죽음 당하느니 스스로 죽는 편이 낫겠다며 자살을 결심하고 생명 보험까지 가입하지만, 말만 그렇지 진짜 죽을 마음은 도통 없는 대책 없는 푼수로 등장한다.


이미지 대 변신 "오버야, 오버"

배우의 변신을 누가 탓하겠냐 마는, 이종원이 곤봉 역을 망설임 없이 맡은 건 의외다.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넘쳤다. 고뇌하는 의사 ‘세주’ 역할을 맡은 공동 주연인 김보성과 ‘배역이 바뀐 게 아니냐’고 수근거렸다. 하지만 영화 개봉(11월 5일)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상황이 정 반대다.

‘의리맨’ 김보성은 “이종원 혼자 다해 먹었다. 나는 어떡하라고…”하면서 “최후의 만찬은 곧 이종원의 영화”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기꺼이 망가짐을 결심했지만, 실행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본격 촬영 전엔 7kg이나 몸무게를 불려 스포츠로 단련된 근육질 몸매를 무참히 뭉개버리는 것이 어려웠다. 촬영 첫 날 과감하게 머리를 삭발한 것도 내리기 힘든 결단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참기 힘든 고역은, 학창시절 흔하게 쓰는 XX이라는 욕설 한 번 해본 적 없는 그가 촬영 기간 동안 줄곧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닥치면 해 낸다’는 뚝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배역에 푹 파묻혔다.

“곤봉 역할을 한 게 아니라, 제가 곧 곤봉이라고 생각하며 지냈어요.” 기질상 이종원은 “역할에 완전히 동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비 오는 날 새벽엔 술힘을 빌어, 팬티 하나 달랑 입고 거리 활보도 했단다. “누가 전 줄 알아 보겠어요? 웬 미친 놈이려니 하겠죠. 꾸밈없으니까 더 편하고 좋던데요.”

그래도 고정 관념은 무서운 법이다. 드라마에서 이종원은 늘 깔끔한 세련하고 도시 남자로 등장했다. 특히 ‘청춘의 덫’과 ‘젊은이의 양지’ 등에서 보여준 출세주의에 불타는 냉혈한의 눈빛은 오래도록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무거운 이미지를 털어내려 의식한 것이 또 하나의 속박이 되더군요.” 일 욕심이 대단한 것도 사실인 듯 하다. “최선이 다 했음에도 아쉬움이 큽니다. 딱 원래 의도했던 것의 50%만 나왔어요.”


가슴이 뜨거운 남자

철두철미한 성격이지만, 가슴은 뜨겁다. 극 중 주인공 세 명은 모두가 불행한 인물. A(곤봉)는 조폭에 쫓겨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고, B(세주)는 수술 중 의료 사고로 아내와 태아를 잃은 의사. C(재림)는 카드 빚에, 몸까지 깊이 병든 20대 초반의 암울한 고아. 당신이라면 인생이 ‘꼬이고 꼬인’ 이 세 사람 중 누구에게 가장 동정심을 느낄까. 이종원은 주저없이 B(세주)를 꼽는다.

“세상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평생 볼 수 없다는 것보다 더한 형벌은 없을 거예요.” 사람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 건 결혼한 이후부터다. 1999년 동갑내기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현지영(34)씨와 결혼, 1남 1녀를 둔 이종원은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을 지켜볼 때 가장 즐겁다”는 다감한 아빠. 가족이 최고란다.

그는 1988년 스포츠 의류 리복의 CF로 스타덤에 올랐다. 워낙 센세이션을 일으킨 광고라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일명 ‘발레식 의자 넘어뜨리기’는 신세대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다. 당시 수 많?중고생들이 학교 기물인 의자를 도구로 그를 흉내내다가 의자를 부수는 경우가 많아 사회 문제가 되었을 정도.

드라마에서도 승승장구 했다. 최근 한 시청률 조사회사가 발표한 지난 10년간 방송됐던 역대 인기 드라마 최다 주연 리스트에 그는 1위 최진실, 2위 박상원에 이어, 당당히 3위로 이름을 올렸다. ‘마지막 승부’, ‘젊은이의 양지’, ‘청춘의 덫’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에서의 활약은 좀 미미한 편. ‘나비’, ‘밀애’, ‘계약 커플’ 등 공들인 영화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최후의 만찬’이 “마지막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찍었다는 이종원은 “이번에는 관객 100만 명을 넘겼으면 한다”고 조심스레 바람을 털어 놓았다. 내친 김에 “굉장히 웃긴다는 평가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로 기억됐으면 한다”고도 했다. “담배 좀 끊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애절한 부탁과 함께.

 

● 프로필

생년월일: 1969년 9월 25일 키: 183cm 몸무게: 75kg 혈액형: O형 특기: 농구 학력: 단국대학교 토목과 출연 드라마: ‘세 남자 세 여자’, ‘청춘의 덫’, ‘경찰 특공대’ KBS 젊은이의 양지, 맨발의 청춘, 순정, 꼭지 MBC 마지막 승부, 짝, 아이싱, 간이역, 예스터데이 출연 영화: 나비, 밀애(密愛), 열 일곱살의 쿠데타, 푸른 옷소매, 계약커플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3-10-31 13:14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