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쓴 삶의 편린들

[문화속 음식이야기] 영화 '제8요일' 초콜릿
달콤하고 쓴 삶의 편린들

인간이 만들어낸 식품 중에서 초콜릿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흔하지 않을 듯 싶다. 원산지인 아즈텍에서는 ‘신의 음식’으로 칭송받았으나 유럽에 전해지면서부터는 최음제로 취급, 마약처럼 경계되는 식품이었다.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피해야 할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초콜릿이 꼭 건강에 악역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초콜릿은 기운을 나게 해주는 강장식품이며 피로 회복제이기도 하다. 삶에 있어서 ‘휴식’이라는 것은 초콜릿과 같은 역할인 것 같다. 지나치면 병이 될 수 있지만 휴식이 전혀 없다면 인생은 참으로 무미건조해질 것이다.

영화 <제 8요일>은 한 남자가 초콜릿과 같은 삶의 달콤함을 가르쳐주는 친구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잘 나가는 세일즈 기법 강사 아리. 그는 일에만 몰두하며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지만 그 대신 가족을 잃는다. 오랫만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은 아리에게 아이들은 등을 돌리고,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잠시 여행을 떠난다.

어느 비오는 밤, 차를 몰고 가던 아리는 뜻하지 않은 동행자 조르주와 마주친다.


눈물 대신 잔잔한 웃음

다운 증후군 환자인 조르주는 하나뿐인 누나로부터도 버림받고 죽은 어머니에 대한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가뜩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는 아리에게 조르주의 출현은 귀찮고도 당혹스럽다.

가족의 존재도 버거워하던 그가 졸지에 장애인의 뒷수발을 들게 된 것이다. 조르주는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초콜릿을 잔뜩 먹고 발작을 일으키는가 하면 트럭 운전사와 싸워 아리를 난감하게 한다. 그런데도 아리는 왠지 조르주를 떨쳐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어쨌든 일상을 공유하게 되고, 함께 별거 중인 아리의 아내 줄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이기적인 아리에게 질려버린 줄리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그를 매몰차게 쫓아내고 만다. 여기서 하나의 반전이 일어난다. 눈물이라고는 모를 것 같던 아리가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이제는 거꾸로 조르주가 아리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다. 조르주와 함께 지내며 아리는 차츰 따뜻하고 인간적인 자신의 내면을 회복해 가는데….

마침내 아리는 과감히 강의를 팽개치고 조르주와 함께 다시 줄리의 집으로 향한다. 두 사람의 신명나는 불꽃놀이에 얼어붙어 있던 줄리와 아이들의 마음도 녹기 시작한다. 이렇게 아리는 가족을 되찾지만 조르주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있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아리의 곁을 떠난다. 그렇게 좋아하지만 먹지 못했던 초콜릿을 실컷 먹고는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건물 옥상에서 뛰어 내린 것이다.

슬픈 결말인데도 이 영화는 눈물 대신 잔잔한 웃음을 준다.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날 수 있고, 아리가 ‘신이 8번째 날에 만든’ 소중한 친구로 그를 기억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조르주가 죽기 직전에 먹는 초콜릿은 슬픔이 아니라 달콤한 기쁨의 상징이다.


초콜릿의 어원은 '쓰다'

달콤한 음식 하면 떠오르는 것이 초콜릿이지만 정작 초콜릿의 어원은 ‘쓰다’는 뜻이라고 한다. 초콜릿의 단맛은 카카오가 아닌 설탕, 우유 등에서 나온다. 카카오콩을 볶아서 껍질을 까고 으깨면 페이스트 형태의 카카오매스가 된다.

여기에 설탕, 우유, 카카오버터를 섞어 굳힌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초콜릿이다. 이때 들어가는 부재료에 따라 초콜릿의 종류가 나누어진다. 즉, 우유가 들어가면 밀크 초콜릿, 설탕만 들어간 것은 스위트 초콜릿, 카카오 고형분을 넣지 않아 흰빛이 나는 것은 화이트 초콜릿 등이다.

영화 속에서 조지가 먹은 초콜릿은 제과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고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들이다. 판형으로 나오는 대중적인 초콜릿에 비하면 확실히 더 고급스러운 셈인데, 이 초콜릿들 중 가장 인기있는 것 몇 가지만 알아보자.

‘트뤼프’는 겉 모양이 송로버섯(트뤼프)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트뤼프의 겉을 감싼 초콜릿은 비교적 진하고 맛이 쓰다. 때로는 쌉쌀한 코코아 가루를 묻히기도 한다. 그 속에는 말린 과일이나 잼 등이 들어가는데 이 속재료들이 초콜릿의 쓴맛과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봉봉’(정확히 말하면 봉봉 오 쇼콜라)은 안에 술이 들어간 초콜릿이다. 무심코 먹다가 술이 쏟아져 나와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는 봉봉에는 주로 위스키, 각종 리큐르, 코냑 등이 사용된다. 술의 맛과 향을 보존하면서 초콜릿 안에 넣는 과정이 까다로우므로 상당히 고급 초콜릿에 속한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초콜릿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랄리네’는 아몬드, 헤이즐넛 등 각종 견과류를 설탕에 절여 굳혔다가 가루 내어 초콜릿 반죽에 섞어 만든다. 이때 조리된 견과류는 케이크, 쿠키 등 다른 과자에도 널리 사용된다.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0-31 13:30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