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교계 최고의 별, 이중간첩 혐의로 처형된 만인의 연인

[역사속 여성이야기] 마타하리
유럽 사교계 최고의 별, 이중간첩 혐의로 처형된 만인의 연인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어떤 전쟁이라도 이긴다는 말인데 나, 즉 아군을 파악하는 것이야 면밀한 검토와 철저한 분석을 하면 그만이지만 적을 아는 것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이다. 적도 이런 고사성어를 뼈 속 깊이 각인하고 절대 자신을 외부로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나를 알아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 치열해지는 것은 막상 진짜 전쟁보다 첩보전이다. 특히 현대의 전쟁은 총칼을 들고나서는 물리적인 무력전보다는 정보전, 즉 첩보전으로 판가름난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첩보원, 즉 스파이이다. 스파이라면 누가 떠오르는가? 007 제임스 본드나 마타하리라는 이름이 언뜻 떠오를 것이다.

제임스 본드야 영화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지만 마타하리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실존하던 인물이었다. 아름다운 미모로 유럽의 사교계를 오가면서 정보를 캐내 팔아먹었다는 팜므 파탈의 대명사 마타하리. 그녀는 과연 스파이였을까?


알몸으로 총살당한 여인

1917년 10 월15일 아침. 파리 교외 반센느 둑에서 한 여인이 총살된다. 총살 직전 씌우려던 눈가리개마저도 거부한 채 그녀는 12명의 사수 앞에서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섰다. 그녀는 마타하리. 본명은 M.G.젤러(Margaretha Geertruida Zelle)로 네덜란드 출신의 무희이자 고급 콜걸이었다.

그녀의 죄목은 스파이 혐의. 한창 1차 대전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정보를 판 이중간첩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마타하리를 재판한 판사는 그녀가 독일에 판 정보가 프랑스군 5만 명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었다고 판단하고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름다운 무희

마타하리, 즉 M.G.젤러는 검은 머리에 올리브빛 피부, 커다란 갈색눈,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미모의 여인이었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네덜란드였는데 스무살을 전후하여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고 한다.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주둔하던 장교와 결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결혼은 7년 만에 불행하게 끝나고 만다.

남편과 이혼한 마타하리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지만 빈털터리었다. 그녀가 가진 것은 오로지 아름다운 육체뿐. 그녀는 파리의 한 클럽에서 이국적인 미모를 한껏 돋보이게 하는 발리 댄스를 선보임으로써 일약 유럽 최고의 무희로 유명해지게된다.

그녀가 춘 춤은 정통 발리 댄스는 아니었고 노출이 심한 의상과 자극적인 몸놀림을 바탕으로 한 스트립 댄스에 가까운 것이었다. 유럽의 남성들은 그녀의 춤에 열광했다. 젤러는 이국적인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름도 마타하리로 고친다. 마타하리란 인도네시아 어로 ‘여명의 눈동자’ 란 뜻이다.


유럽 고위층 남자들의 혼을 빼놓다

마타하리에 대한 입소문이 점점 퍼지면서 그녀는 파리 최고의 클럽인 물랭루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무희가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럽의 정치를 쥐락 펴락 하는 각국의 고위층들을 상대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매력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 유럽 남성들을 유혹하였다. 실제로 당시 유럽의 군인들 사이에 가장 각광받는 핀업사진이 마타하리의 사진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만난 고위층의 남자들은 프랑스 군부와 정계의 고위층, 재계 인사, 네덜란드의 수상, 프로이센의 황태자 등등 나라와 분야를 막론하였다. 당시 해외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언제나 커다란 전쟁의 가능성을 품고 있던 유럽에서 각 국 정책 결정권자와 동시에 모두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언제라도 정보를 빼 내 스파이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마타하리는 세계 1차 대전 전부터 영국의 정보 기관으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1차 대전이 일어날 당시 독일의 베를린에 머물러 이런 의혹을 더욱 가중시켰다.


스파이였나? 희생양이었나?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마타하리는 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프랑스로 돌아 오려고 한다. 전쟁 중에 부상당한 그녀의 애인 블라디미르 드 마슬로프의 병문안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독일에 적대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마타하리의 무리한 프랑스 행을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특히 전쟁 전부터 마타하리의 행동을 수상히 여겼던 영국은 프랑스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체포하여 3차례나 심문하기도 하였다. 마타하리는 독일에서 얻은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프랑스에 겨우 돌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이어 그녀는 프랑스 경찰에 체포된다.

마타하리가 ‘H21’ 이라고 불리는 스파이로써 프랑스 정관계에 암약해 정보를 독일측에 팔아넘겼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심문 과정에서 마타하리는 독일군으로부터 스파이 제의를 받고 돈도 받았지만 스파이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이미 아름다운 무희에게 찬사를 늘어놓으며 추켜세우던 풍요의 시대는 끝났고, 전쟁이라는 각박한 현실을 맞이한 유럽에서 어느 누구도 그녀를 변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범죄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소환되는 사람들은 모두 프랑스 내에 거물급 인사들이었다,

프랑스 고위층은 들끓기 시작했다. 외부의 적과 대치하고 있는 때에 내부의 스캔들은 치명적이었다. 빨리 사건을 끝내고 누군가 모든 비밀을 짊어져야만 했다. 마타하리에 대한 재판은 너무 간단하게 끝났고 전시 상황이라는 명목으로 사형 집행도 서둘러 이루어졌다.

1999년 비밀 해제된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 문서에는 마타하리가 군사 정보를 독일에 넘겼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마타하리가 실제로 스파이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막연히 뇌쇄적인 미모에 자신의 속내를 단단히 감춘 여자 스파이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분명한 점은 그녀는 한때 유럽을 들끓게 한 만인의 연인이었고, 미모를 바탕으로 한 스파이 행각으로 사형을 당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김정미 방송ㆍ시나리오 작가


입력시간 : 2003-10-31 13:38


김정미 방송ㆍ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