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거짓말의 휴머니즘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에서 옆으로 누워 운송되던 레닌 동상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레닌 동상이 철거된 것이 언제인데, 이제 와서 <굿바이 레닌>이라니. 제목이 조금 촌스럽군. 통독 이후 처음으로 독일의 제조업이 미국을 앞섰다는 보도를 얼마 전에 접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독일에서는 통일 이전에 대한 역사적인 향수를 음미할 여유가 생긴 것일 수도 있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1980년대 후반의 대학가에서 읽혔던 레닌의 여러 저작들이 떠올랐고, 프랑스의 구조주의 맑스주의자인 루이 알튀세르의 <레닌과 철학>을 영문판으로 읽으며 지적인 열정에 휩싸였던 추억이 새삼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영화 <굿바이 레닌>을 보기 전에 잠시 스쳐갔던 감상들이었다.

<굿바이 레닌>은 대단히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영화는 통일을 전후한 독일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제시하면서, 통일 과정에서 독일인들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경험해야 했는지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관점에 따라서 자본주의적인 삶에 대한 반성적인 지점들을 발견할 수도 있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 같은 이념적인 문제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도 있는 영화이다. 개인적인 소회를 말하자면, 함께 거짓말을 만들면서 서로를 위로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동독의 열혈 공산당원이자 교사인 크리스티아네는 베를린 장벽 제거를 주장하는 시위대에서 아들 알렉스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혼수 상태에 빠진다. 그 사이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동독과 서독은 통일이 되었고 독일 축구팀은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다.

하지만 8개월 만에 깨어난 크리스티아네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모른다. 충격을 받으면 재발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따라, 알렉스는 어머니에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사실을 감추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즐겨 먹던 피클과 음식들을 먹고 싶어하고, 알렉스는 구 동독 제품의 상표와 용기를 찾기 위해서 쓰레기통을 뒤진다. TV를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직접 대본을 쓰고 친구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만든 뉴스를 비디오로 몰래 방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알렉스의 거짓말은 성공했을까. 알렉스가 잠든 틈을 타서 아파트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철거된 레닌의 동상이 밧줄에 묶여 헬리콥터로 운송되는 것을 목격한다. 알렉스의 어머니는 한 달 뒤에 세상을 떠나고, 사람들은 그렇게 레닌의 시대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낸다.

역사는 인간에게 상처를 남기고, 인간들은 상처를 치유하며 역사를 만든다. 크리스티아네의 혼수상태는 통일을 전후해서 구 동독인들이 겪어야 했던 극심한 혼란과 정신적 상처를 보여주는 압축적인 상징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많은 구 동독인들이 그녀와 같은 혼란을 경험했을 것이다.

영화는 유머와 거짓말로서 상처를 감싸고자 한다. 알렉스의 거짓말은 진실의 은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의 거짓말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와 지나간 시대에 대한 존중이라는 덕목이 빛나고 있다. 이를 두고 거짓말의 휴머니즘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로베르토 베니니가 가스실 앞에서 보여주었던 환한 미소나, 영화 <스모크>에서 서로의 실존적인 상처를 따뜻하게 감쌌던 인간적인 거짓말들이, 모두 거짓말의 휴머니즘에 속하는 것이리라.

영화 <굿바이 레닌>이 보여준 것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대립이 아니라 차이가 존중되는 중간지대였다. 진실의 가치는 언제나 존중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진실이 무자비한 폭력일 수도 있다.

또한 많은 경우에 있어 거짓말은 나쁜 것이지만, 때로는 인간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일 수도 있다. 어설프게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진실 아니면 거짓이라는 흑백논리적인 이분법은 그 자체로 이미 폭력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진실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전제한 상태에서, 진실과 거짓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존중하는 과정일 것이다. 진실 아니면 거짓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비문화적이거나 반문화적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떨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지 않으면 벌거벗은 진실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아닐까. 어쩌면 거짓말조차도 빈곤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보석처럼 빛나는 영화 한 편을 보면서, 거짓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가르침을 얻는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1-04 13:58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