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계 북한 민주화론 제시 등 미 정부 향해 '구애'일부선 반 김정일 체제의 구심점 역할에 기대

황장엽 방미는 코드 맞추기?
4단계 북한 민주화론 제시 등 미 정부 향해 '구애'
일부선 반 김정일 체제의 구심점 역할에 기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미국을 찾았다. 한국 정부와 ‘가네 못 가네’ 줄다리기를 한 지 2년여만에 이뤄진 미국 행이다. 그는 왜 그토록 미국을 찾으려 했을까. 그는 미국 방문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황씨의 한국 망명이 갖는 복잡한 복선만큼이나 그의 미국 방문을 보는 시각에도 큰 편차가 존재한다.

황장엽씨는 워싱턴에 머문 1주일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숱한 말을 쏟아 냈다. 그의 행보와 말 속에서 공통 분모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가지, 그가 미국을 방문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 망명얘기는 일체 없었다는 얘기다.

‘황장엽 수반 방미 환영’. 10월31일 낮 12시 황장엽씨가 자신을 초청한 디펜스 포럼 주최 강연에서 연설하기 위해 워싱턴 미 의회 의사당 별관인 레이번 빌딩 339호실에 들어서는 순간, 한 참석자가 종이 플래카드를 높이 쳐들었다.


황장엽은 북한 망명정부 수반?

황장엽과 수반이라는 단어 사이에 ‘북한 망명정부’라는 글자가 빠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플래카드는 이날 행사장을 가득 메운 ‘반북(反北) 인사’들의 희망을 반영하고 있었다.

황씨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미국 내 일부 보수 집단과 반북 재미 동포 그룹 사이에서는 황씨를 북한 망명정부의 수반으로 옹립하려는 논의가 진행돼 왔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 붕괴 전까지 미국에서 반 후세인 운동을 벌였던 아흐메드 찰라비(현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순번제 의장)처럼 황씨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체제 전복을 위한 해외 활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이 황씨에게서 망명정부 수반의 수락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오산이었다. 황씨는 정작 그들이 듣고자 한 답을 주지 않았다. 미국 망명 의사와 미국에 본부를 둔 북한 망명정부 수립에 대한 황씨의 의중을 끈질기게 묻는 우익 보수 성향의 재미동포들을 향해 황씨는 “그 질문은 나에 대한 모독”이라고 못박았다. “나는 결코 망명한 적이 없고, 대한민국에 온 것은 내 조국에 온 것이다. 김정일 제거에 미국의 도움이 중요하다고 내가 미국에 살겠는가.”

거듭된 부인에도 북한 망명정부 수립에 대한 촉구성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대한민국은 우리 민족의 정부이고, 민족의 정부가 있는데 망명정부가 왜 필요한가”라며 “내 활동의 근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받았다.


반 김정일 체제 조직은 필요

대신 황씨와 보수적 동포 인사들을 잇는 고리는 ‘김정일 타도’였다. 황씨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김정일 체제 타도를 위한 조직 결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톤이 높아졌다. 황씨는 “내가 조직을 결성할 능력도 없고, 역량도 제한돼 있지만 동포들이 그런 조직을 결성해 국내 인사들과 연계활동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며 “그러나 그 조직이 시초부터 망명정부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보유 상황에 대한 진전된 증언을 듣고자 했던 미국측 참석자들의 기대도 채워지지 않았다. 황씨는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단서를 단 뒤 원론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북한의 핵 보유 목적에 대해 “그들이 장난감으로 핵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느냐”고 반문, 폭소를 자아낸 뒤 “그들이 시초부터 핵을 가지려고 한 이상 구태여 그 목적을 물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황씨는 “김정일은 중국 러시아로 정보가 넘어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며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로 있을 때의 일화를 들었다. 그는 “당시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가 나를 자주 찾아와 ‘왜 핵 탄두를 개발하고 있느냐’고 항의성 질문을 해와 상부에 보고했더니 ‘묵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소개했다.


"난 점쟁이가 아니다"

김정일 정권이 언제쯤 무너질 것으로 보느냐는 한 미국인의 질문에 황씨는 “나는 점쟁이가 아니다”고 답해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그는 1997년 망명할 당시 5년 후면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으로 봤던 자신의 판단이 오판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오판은 정세 변화로 인한 것이지, 판단 자체가 오류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언제 보다는 어떻게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릴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이를 위해 그는 4단계 북한 민주화론을 제시했다. 김정일 독재 체제하에서 협동농장을 자영농으로 바꾸는 최소한의 경제개혁을 실시해 민주 봉기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1단계다. 2단계에서는 김정일 체제를 해체한 뒤 남북간 경계를 유지한 상태로 북한에 5년 이하의 과도정부와 의회를 구성하게 된다.

3단계는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남북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기간이다. 황씨는 이 단계에서 연방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거쳐 남북간 경계를 폐지한 뒤 단일 정부를 수립하면 4단계가 완성된다.


황씨는 친미주의자?

황씨에게 미국은 김정일 정권을 타도할 힘과 의지를 가진 나라였다. 그래서 미국이 핵심 역할을 맡는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황씨는 역설했다. 그가 미국 방문 동안 가장 힘주어 강조하고자 했던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이 때문일까. 황씨는 미국 방문 기간 내내 친미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한강의 기적은 미국 민주주의 도입과 원조의 덕이다.” “한국으로서 한미 동맹 강화는 민주사회와 국익을 지키는 일이며, 인류를 위해 가장 옳은 방법이다.” “테러와 싸우는 미국의 전략은 전 인류에 유익하다.” 그는 작심한 듯 미국을 추켜 세웠다.

황씨의 이런 ‘구애’에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이다. 이번 미국 방문이 황씨에게는 자신의 소신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었듯이 미국인들에겐 황씨를 실험하는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미국 정부 내 매파들이라면 한번쯤은 황씨를 찰라비에 견주어 봤을 것이다. 황씨가 4단계 북한 민주화 전략에서 거론한 5년 임기 이하의 과도정부 수반은 아직 공란으로 남아 있다.

황씨를 만난 미 정부와 의회 인사 중에서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에게 시선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포위츠 부장관이 북한 체제 붕괴론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거야말로 북한 문제의 모든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코드’는 일치한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2차 6자 회담 재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시점에서 황씨의 미국 행은 실기한 것일 수 있다”며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담이 끝난 후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황씨의 평가는 미 정부 관리들의 파일에 남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입력시간 : 2003-11-05 11:29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