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 여행] 이문세(下)


1984년 두 번 째 앨범 '파랑새'를 발표했다. 또한 85년 4월부터 맡아 온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96년 12월까지 11년 8개월 간 진행,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이 시절 하루 1백 통이 넘는 여학생들의 팬 레터가 집으로 쇄도할 만큼 인기가 높았던 그는 85년 MBC 라디오 부문 연기 대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86년 세 번째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가수로서의 이문세로 새롭게 부각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그 해 강릉으로 내려가는 도중 대형 교통사고로 턱뼈를 다쳐 두 번의 수술을 해야 하는 불행을 겪었다. 가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었을 만큼 힘겨운 고통을 그는 이겨냈다.

87년 2월 신촌블루스의 세션으로 63빌딩에서 신곡 '사랑이 지나가면'을 발표했던 콘서트는 눈물 겨운 재기의 무대였다. 역시 이문세였다. 이 노래는 KBS 2TV '가요 톱10' 5주 연속 1위로 골든 컵을 수상하고 다운타운 가요 뮤직 박스 차트에서 연 13주간 1위를 차지 하는 빅 히트를 터트렸다.

또한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 한 음반에서 무려 5곡이 동반 히트를 기록, 100만장의 음반이 날개를 단 듯 팔려나갔다. 86, 87, 88년 골든디스크상 수상에 이어 88, 89년 MBC 10대가수상까지 거머쥐며 정상의 인기가수로 떠올랐다.

히트 보증 수표로 떠오른 그는 킹레코드와 3억원이라는 당시 국내 최고의 전속금 계약을 기록, 부러움을 샀다. 이문세는 "내가 정말 인기 가수가 된 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두렵기만 하다"며 어리둥절해 했다. 인기가 치솟자 말썽도 동반했다. 88년 말, 작곡가 원철희가 데뷔 이전인 80년 3월에 녹음했던 이른바 '이문세 마이너스집'의 뒤늦은 발매를 시도해 신경전이 벌이지기도 했다.

또 5집 '시를 위한 시'를 발매한 킹레코드는 당시 3,300원이던 음반값을 일방적으로 4,000원으로 인상 해 소매상들의 불매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절정의 인기 가수였지만 소박했던 이문세는 화려한 TV나 밤무대보다는 라디오DJ와 콘서트 그리고 음반 발표를 위주로 활동을 했다. 89년 10월 14일 이대 육완순교수의 무남독녀 외동딸 이지현씨와 1년 6개월 간의 열애 끝에 압구정동 광림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가정을 꾸렸다.

90년 당시, 이문세는 1억 3,000만 원이라는 국내 최고의 모델료를 받고 서울우유의 '요델리' CF모델로 나섰다. 91년엔 '푸른 독도 가꾸기' 콘서트에 이어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MC로 전격 기용되었다.

91년 10월 성악가 박정하 교수와 듀엣으로 발표한 7집 '겨울의 미소'는 클래식과 가요의 접목이라는 점에서, 한해 전 이동원, 박인수 교수가 합작으로 냈던 '향수'에 이어 두 번째 시도였다. 또한 92년 5월에는 드럼과 피아노가 어울린 신보 '저 햇살 속에 먼 여행'에서 가요와 재즈의 접목도 시도했다.

음반 발매를 기념하기 위해 힐튼 호텔에게 실황 녹음한 이문세 공연 실황 음반 역시 50만장 이상 팔려 나갔다. 또한 다큐 뮤직 비디오 '일상 탈출'과 캐롤 CD 발매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당시 이문세는 얼굴이 길다는 이유로 이수만, 유열과 함께 '마삼 트리오'로 불리며 함께 공동무대를 꾸며 더욱 대중과 친숙해 졌다.

그는 모범적인 가장이었다. 93년, 4살 난 아들을 위해 팝 발라드 풍의 8집 '종원에게'를 발표했다. 동시에 음악과 영상을 담은 뮤직CD를 처음으로 발표하면서 인천을 시작으로 광주, 대구 등 6개 도시 순회 콘서트 '겨울 여행'을 시작했다. 첫 공연이후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할 만큼 그는 피로에 시달렸다.

94년 5월, KBS2 TV '열린 음악회'에서 이문세 특집방송이 나갔고, MBC 드라마 '사춘기'에 특별 출연해 연기력을 뽐내기도 했다. 재능이 많은 그는 94년 12월 자서전 같은 수필집 '마굿간 이야기(삼호미디어)'를 펴내기도 했다. 95년엔 40인조 오케스트라의 세션으로 녹음한 9집 '영원한 사랑'을 발표했다.

또 청소년 대상의 심야 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를 10년 간 지켜 오며 청소년 문화에 일익을 담당한 공로로 교육부장관의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해, 1년 만에 KBS2 TV '이문세 쇼'로 MC를 맡은 그는 주병진, 전영호와 함께 방송3사의 토크쇼 경쟁을 주도했다. 96년 SBS TV에선 '이문세의 라이브' 진행과 더불어 10집 ‘조조할인’을 발매했다.

역시 발매 두 달만에 40만장이 磯?빅히트를 기록했다. 96년 6월엔 'MBC라디오를 빛낸 자랑스런 입'으로 선정되며 브론즈 마우스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96년 12월 1일 1만회 방송을 마지막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를 패닉의 이적에게 넘겼다. 그는 장장 11년 8개월 간 동일 프로를 진행한 최장수 별밤지기로 기록되었다.

98년엔 11번째 앨범 '섬타임즈'를 발표하고 99년엔 세계적인 톱스타 60여명과 함께 프로젝트 앨범 '원 나이트 원 월드'에 아시아 대표로 참가했다. 2000년 2월엔 장모인 현대무용가 육완순씨와 함께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노래와 안무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초대형 퍼포먼스를 펼쳤다. 2001년 3월엔 13집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발표했다.

라디오 청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DJ로 군림했던 이문세. 지금도 끊임없이 전국 투어를 펼치며 무대를 지키고 있는 그는 이야기하듯 다정하고 솔직한 노래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무대에선 최고의 가수, TV에서는 명 MC, 헤드폰을 끼면 명 DJ로 둔갑하는 그는 꾸밈없고 자연스런 재담과 노래 덕분에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온 흔치 않은 만능 엔터테이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1-06 16:49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