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체 잇속챙기기 무한경쟁갈곳 없는 혐오시설, 모두가 손해보는 결과

속 보이는 '님비', 염치없는 '핌피'
자자체 잇속챙기기 무한경쟁
갈곳 없는 혐오시설, 모두가 손해보는 결과


3,000톤이 넘는 쓰레기를 실은 ‘모브로 4000호’가 미국 뉴욕 근교 마을 아이슬립을 출발한 것은 1987년3월이었다. 배출된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자 궁여지책으로 쓰레기를 받아줄 곳을 찾아 무작정 항해에 나선 것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텍사스…. 가는 곳마다 ‘노(No)’라는 차가운 답변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중남미로 방향을 틀어 멕시코, 바하마 등을 전전했지만 역시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전전하기를 6개월. 무려 6,000마일의 항해 끝에 결국 다시 돌아온 곳은 아이슬립이었다.

‘님비’(NIMBY)라는 조어가 생긴 것은 그 때였다. ‘우리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영어 표현 ‘Not In My Back Yard’의 첫 글자를 딴 표현이었다. 그로부터 15년여, ‘님비’는 전 세계 곳곳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90년대 중반 풀뿌리 민주주의를 표방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님비 현상은 지역 곳곳을 침투했다. 혐오 시설을 내 지역에 유치할 수 없다는 님비 현상의 한편에는 지역에 이득이 되는 시설은 적극 유치(Please, In My Front Yard)하겠다는 ‘핌피’(PIMFY) 현상도 뒤따랐다.

님비와 핌피의 혼재 속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제 잇속을 따지기 위해 계산기를 부지런히 두드려 가며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때론 무력 시위를 동반하며, 때론 로비력을 동원하며.


있는 곳이 더하다?

부유층들이 집결해 있다는 ‘강남 특구’ 의 3개구 중 하나인 서울 송파구. 요즘 이 일대 거리 곳곳에는 두 가지 상반된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하나는 성남 서울공항의 이전을 촉구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동부지원ㆍ지청 유치를 결의하는 내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접한 서울공항이 송파구 발전에 저해되기 때문이고, 동부지원과 지청의 유치는 송파구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님비와 핌피의 상징물이 동시에 상존하는 셈이다.

대통령 전용기가 이착륙하는 서울공항이 위치한 곳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 일대. 송파구 장지동이 바로 인접한 데다 활주로가 송파구의 중심인 석촌호수 방향을 향하고 있다. 구측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은 고도 제한이다.

롯데그룹이 석촌호수 주변에 112층 짜리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 했으나 고도 제한에 걸려 36층 짜리 건물로 변경을 해야 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장지동은 물론 문정동, 가락동 등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데 번번히 제동이 걸리고 있다. 송파구 전체 면적의 68%가 건축에 제한을 받고 있는 상태.

구의회 윤광기씨는 “서울공항이 인접해 있는 바람에 송파구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하루 빨리 김포나 수원 오산 등으로 공항 이전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파구 의회는 28명의 구의원 전원이 서울공항 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데 이어 서명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측이 생각하는 또 하나의 노림수는 서울공항 이전에 이어 이 지역에 신도시를 유치하는 것이다. 성남 서울공항이 신도시 건설의 적지라는 몇몇 분석도 지역 여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주변에 신도시가 들어서면 송파구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서울공항 이전에 송파구와 함께 인근 강남구, 그리도 당사자 격인 성남시가 공동 보조를 맞추며 전방위 공세를 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원ㆍ검찰 청사를 유치해라

培캇릿?서울공항을 ‘내치는’ 대신 동부지원과 지청을 ‘끌어 오기’ 위해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청사가 유치될 경우 상주 및 유동 인구가 늘어나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광진구 자양동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부근에 있는 동부지원ㆍ지청 청사는 1972년에 건설돼 시설이 낡은 데다 부지가 비좁아 늘어나는 행정 수요를 소화하기가 벅찬 실정. 이에 따라 법원행정처 등 관련 기관은 올 연말까지 신축 청사 후보지를 선정해 계약할 계획이다.

송파구가 이전 부지로 제시하고 있는 곳은 문정 지구. 지하철 8호선이 통과하는 데다 인근에 3호선 연장 구간인 수서-오금역 공사가 연말 착공 예정이고, 송파대로 등 교통 인프라도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구의회측은 이 역시 주민들을 동원해 서명에 나서는 한편 조만간 관계 기관 청원에도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최대 걸림돌은 기득권을 갖고 있는 경쟁 자치구 광진구다. 사정은 송파구에 비해 광진구가 더 절박하다. 이 구청 이호준 자치행정과장은 “3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청사가 다른 구로 옮겨가면 이 일대 상권이 침체돼 가뜩이나 열악한 재정 자립도에 치명타를 입는 것은 물론 강ㆍ남북간 지역 불균형이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배수진을 친다.

광진구측이 최근 카드로 제시한 것은 현 청사가 있는 부지 5,000여평에 더해 청사 뒷편 KT 강북지역본부의 부지 5,000여평을 사들여 총 1만여평의 신축 부지를 마련하겠다는 안. 이런 노력 탓에 현재까지는 송파구에 비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자체 평가다. 하지만 송파구측은 “광진구에 청사를 재건축할 때 3,500억원 가량이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현재 개발제한구역인 송파구에 신축할 경우 3분의 1 수준인 1,200억원이면 충분하다”며 경제 논리를 들이대고 있어 아직 결과는 안개 속이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북부지원ㆍ지청 청사 역시 이전 추진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지자체들의 경쟁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청사 유치전에 뛰어든 곳은 노원구를 비롯해 중랑구, 도봉구 등 3곳. 지원과 지청이 빠져나갈 경우 지역 상권이 무너진다는 논리로 방어벽을 치고 있는 노원구의 근소한 우세 속에 구내에 별다른 지역 경제 기반이 없어 청사 유치를 경제 회생의 기회로 삼겠다는 중랑구와 구내 국군병원이 1만9,000평의 부지 매도 의사를 밝히면서 호기를 잡은 도봉구가 도전장을 내민 형국이다.


대립, 갈등, 그리고 폭력

핌피 현상은 종종 볼썽 사나운 대립으로도 표출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광주ㆍ전남 정부기관 합동청사 유치를 둘러싼 지자체간 불협화음이었다. 발단은 행정자치부가 9월 국세청 환경청 노동청 등 16개 정부기관의 호남권 합동 청사를 나주시 남평읍에 짓겠다며 내년 예산에 17억4,500만원을 요구한 것이었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광주시는 발끈했다. “현행대로 광주에 존치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박광태 시장은 국무총리와 행자부 장관을 면담해 정부기관 합동청사의 광주 건립 약속을 받아냈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논란이 커지자 국회 행자위는 11월초 예산안에 합동청사의 위치를 명시하지 않은 채 관련 예산을 통과하는 것으로 미봉했다.

이번엔 나주시측이 반발했다. 신정훈 나주시장은 행자부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고, 주민 500여명은 남평읍내를 돌며 촛불 시위를 했다. 전남도공무원직장협의회도 성명을 내고 “나주시에 유치키로 결정된 정부기관 합동청사 부지를 광주에 짓도록 요구하기 위해 총리와 행자부 장관을 만나고 다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박 광주시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광주시와 나주시의 갈등은 경륜장과 호남재문화연구소 유치 경쟁에 이어 이번이 벌써 세번째였다.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 입지 선정을 두고도 최근 비슷한 사태가 재연됐다. 전남도는 광양 순천 여수 하동 일대 2,691만평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자 투자 유치와 지원 행정을 맡을 기관을 광양시 광양읍에 두기로 했다. 이에 순천시의원 19명은 11월4일 박태영 전남지사실을 찾아가 ‘밀실행정 박 지사 퇴진’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사무실 안에 있던 화분을 깨뜨리는 등 20여분간 난동을 피웠다.


혐오시설은 목숨 걸고 반대한다

이런 핌피 현상은 유치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밑질 것은 없다는 점에서 그래도 고상한 전쟁에 속한다. 서울공항 이전 요구 같은 님비 현상은 자칫 혐오시설을 관내에 유치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예 사생결단에 가깝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입지 선정 건이었다. 지난 7월14일 전북 부안군이 위도에 처리장을 유치하겠다고 정부에 단독 신청한 이후 군민들과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의 격렬한 반발은 벌써 4월째 계속되고 있다. 주민들의 반발은 군수 폭행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뾰족한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의 납골 시설 확보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2001년7월 서초구 원지동 일대 5만평을 추모공원 부지로 확보하고 그 해 12월 이 부지를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했다. 늘어나는 화장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2004년까지 화장로 20기, 납골당 5만위를 건립해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주민을 등에 업은 서초구의 반발은 거셌다. 주민들은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지난 8월 시측이 주민들에게 내민 협상카드는 추모공원 대신 화장장과 병원(국립의료원)이 함께 들어서는 의료단지로 만들겠다는 것. 혐오시설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겠다는 것이었지만, 개발제한구역을 풀어 병원과 납골 시설을 함께 건립한다는 것 자체가 편법이라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한 자치단체 내에서도 이해 관계에 따라 격렬한 갈등이 빚어진다. 구로구의 고척동 영등포교도소ㆍ구치소 이전 계획이 본격화한 것은 2000년 무렵. 구측은 현 부지를 종합유통타운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아래 부천시 등 타 지역 이전을 적극 물색했지만 이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수년간의 검토 끝에 구측이 내린 결론은 구로구 내의 천왕동 7만평 부지로 이전하는 것.

하지만 이마저도 집값 하락을 우려한 천왕동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 아직까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구로구청 김원철 도시계획팀장은 “교도소라는 것도 그저 공공기관에 불과한데 주민들의 적대심이 대단하다”며 “지역 이기주의를 무조건 질타할 수는 없지만 도를 넘어설 경우 모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나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3-11-13 14:05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