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소장간 불협화음, 원내정당·정당민주화 기치 무색
열린 우리당 김근태 "아, 속타네" 중진·소장간 불협화음, 원내정당·정당민주화 기치 무색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고민은 크게 두가지다. 내년 2월로 예정된 당 의장(대표) 경선에 출마할 것인가 하는 것과 ‘원내정당화’ 를 표방한 우리당이 당내 파워게임으로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원내대표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이다다. 김 대표는 민주당이 신당 문제로 신·구주류로 나뉘어 지리한 생존게임을 벌일 때만 해도 ‘상종가’ 를 유지했다. 당시 김 대표는 중도파의 리더로 그의 선택에 따라 당의 진로가 결정될 상황이어서 신·구주류 양쪽으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았다. 때문에 김 대표는 한때 ‘분열없는 통합신당’ 을 내세우며 신당의 새 대표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신당을 둘러싼 신·구주류의 갈등이 당무회의 폭력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동거’ 가능성이 없게 되자 김 대표는 3일간에 걸친 ‘사죄 단식’을 한 뒤 “역사 발전에 앞장서지 못하는 민주당은 민주당이 아니다. 기득권에 집착해 민주당의 정통성을 외면하면 결과적으로 지역주의 정당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며 민주당을 떠나 신당창당주비위에 전격 합류했다. 그때가 9월7일이었다. 김 대표의 합류로 신당 창당은 급물살을 탔고, 10여일만인 19일 민주당을 탈당한 신당파와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 44명은 ‘국민참여통합신당’(약칭 통합신당)을 결성했다. 김 대표는 원내대표로 내정됐다. 김 대표는 ‘정책정당’ ‘원내정당화’ 를 골자로 하는 취임 소감을 밝혀 신당 원내대표에 대한 기대를 한껏 고무시켰다.
그러나 통합신당이 11월11일 열린우리당으로 바뀌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까지 구조적인 당내 이질성과 갈등은 김 대표가 원내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했다. 당내 계파와 중진ㆍ소장 간 불협화음으로 내부 기구 인선과 지구당 창당 등에서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연히 원내정당과 정당민주화를 내세운 김 대표의 위상이 크게 손상됐고, 당 헤게모니를 둘러싼 파워게임 과정에서 소위 ‘김근태파’로 분류된 의원들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면서 김 대표의 입지가 좁아지고 말았다. 현재 우리당은 민주당 신당파, 통합연대(한나라당 탈당파), 개혁당, 신당연대(당밖 개혁세력) 등 4개 세력군이 결합한 구조이지만, 크게 보면 ‘친노(親盧) 그룹’과 ‘비노(非盧) 그룹’으로 양분된다. 친노그룹은 대선 과정에서 철저하게 노 대통령을 지원한 세력으로 민주당 강경 개혁파, 개혁당, 신당연대가 이에 속한다. 비노그룹은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일정 거리를 둔 민주당 의원과 한나라당 탈당파 등이 포함된다. 김 대표는 중도파로, 굳이 분류하자면 비노그룹에 속한다. 우리당 구조의 이 같은 이질성은 창당 과정에서부터 계파간 힘겨루기로 나타났다.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 지도부, 시도지부 창준위 위원장, 중앙위원 구성 등에서 시비가 일었고, 일부 지구당에서는 창당 시비로 폭행사태까지 빚었다. 특히 창당 과정에서 중진의원이 중심이 된 이른바 ‘김원기파’가 영향력을 행사하자 이에 반발한 신진 개혁세력이 ‘반 김원기파’를 결성했고, 최근에는 현실주의자파와 개혁주의자파로 나눠지는 등 당내 갈등은 백가쟁명 수준에 와 있다. 또 당 의장의 선출 문제를 놓고 드러난 간선제 지지파와 직선제파간의 대립은 당내 파워게임의 또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계파를 초월해 매주 정책회의를 주도하며 ‘새로운 신당’ 깃발을 흔드는 김 대표의 모습은 공허하게 비쳐졌고,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도 많다. 김 대표의 최근 ‘고민’은 자신의 위상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원내대표실의 한 관계자도 “대표가 직선으로 된 당 의장 경선에 나설 것인가를 놓고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선으로 당 의장을 선출할 경우 당 의장에게 힘이 집중돼 원내대표는 껍데기만 남을 수 있고, 선거국면으로 들어가 국회가 휴회상태로 되면 원내대표는 뉴스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고 밝혀 김 대표의 고민을 엿보게 했다. 실제 우리당 당헌에 의하면 당 의장은 중앙위원회와 의원총회의 연석회의 등을 주재하고, 당무를 통괄하며, 중앙위원회 의장이 돼 명실상부한 실질적인 당의 대표가 된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11월12일 밤 KBS가 마련한 4당 대표 TV토론회에서 ‘당 의장 출마 여부’에 대한 패널의 질문에 확답을 피했다. 그의 ‘모호한’ 대답은 당 안팎에서 당 의장 출마설로 이어지고 있다. 정가 일각에선 오래 전부터 ‘큰 꿈’(대권 도전)을 꾸어 온 김 대표가 당 의장이 갖는 ‘선점의 효과’에 매력을 느끼고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원내대표로 선출된 지 두 달도 안돼 당권 경쟁에 나서겠다고 하면 ‘원내중심 정당’을 주창해온 김 대표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당 의장 경선에 나섰을 경우 승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당에선 이미 김원기, 장영달 의원 등 중진과 ‘천ㆍ신ㆍ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으로 대변되는 소장파가 당권을 향해 가속도를 내고 있는 상태다. 당내 문제가 산적하고 계파간 파워게임이 한창인 상황에서 뚜렷한 우군이 없는 김 대표가 과연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정치권은 그의 ‘고민 후’을 주목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3-11-20 10:57
|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