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한 카리스마의 완성영화 '올드보이'서 복수와 연민이 교차된 내면연기로 관객 압도

[스타 데이트] 최민식
원숙한 카리스마의 완성
영화 '올드보이'서 복수와 연민이 교차된 내면연기로 관객 압도


영화배우 최민식(41). 그는 영화와 ‘열애’하는 남자다. 영화 ‘올드 보이(박찬욱 감독, 쇼이스트 필름ㆍ에그 필름 공동 제작)에서 온몸으로 카리스마의 진수를 보여준 그는 작품을 완성한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징한 여자를 만났죠. 지지고 볶고 난리를 피다가 이제야 헤어지게 됐네요. 그래도 가슴 깊이 사랑했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예요.”모든 영화에 혼신의 힘으로 ‘연애’를 거는 그이지만 ‘올드 보이’는 각별했다. 그토록 애를 태웠던 상대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문도 모른채 15년간 사설 감금방에 갇혔다가 풀려난 ‘오대수’역을 맡아, 복수심으로 상대를 추적하다 결국 비극적 운명 앞에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하는 작품이었다. 감금, 복수, 근친상간 등 영화의 설정은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이야기다. 죽을 고생 하겠다”는 것이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을 때의 솔직한 심정.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답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15년간 영문도 모른 채 감금됐다 풀려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으니 내가 하는 게 정답이다.”비현실, 아니 초현실적인 캐릭터 덕분(?)에 마음껏 상상력을 펼쳤다는 말이다.


"죽을고생 했다"

연기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표현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세상과 유리됐던 사람의 말투와 모습을 끌어내기 위해, 내면의 목소리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죠.” 15년 동안 폐쇄된 공간에 갇혔다 풀려난다는 이 작품의 특징은 감금 직전엔 퉁퉁한 인상의 평범한 샐러리맨 모습을, 감금 당시엔 마르고 병약한 인상의 외형적 변신을 요구했다.

여느 영화 촬영과는 달리 고초를 겪어야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복싱과 줄넘기, 절식을 병행했다. 이처럼 무려 10kg이 넘는 살을 뺐다 늘였다 한건 본능적인 승부 근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할 때는 독해지죠. 몸무게를 10kg이나 줄여야 했을 때는 이게 사람 할 짓은 아니라고 생각되면서도 나중에는 저절로 음식이 싫어지더군요.”

외면상의 변화보다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격투신이었다. 혼자 10명이 넘는 건달들을 상대로 싸웠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액션 연기에 도전하는 것이라 체력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한다. “홍콩 영화 주인공들의 멋진 액션과는 거리가 멀어요. 허덕이면서 힘들어 하는 게 보이니까.”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다시는 이런 장면의 최민식은 볼 수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흔든다.

1989년 영화 ‘구로 아리랑’으로 스크린에 발을 들여놓은 최민식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기 그지 없다. ‘넘버 3’(97년), ‘조용한 가족’(98년), ‘쉬리’(99년), 해피엔드(99년), 파이란(2001년), 취화선(2002년)까지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독차지 해 왔다.

특히 광기 번득이는 화가 장승업의 삶을 혼신을 다해 연기한 ‘취화선’은 청룡ㆍ백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및 제 4회 도빌 아시아 영화제 최우수 남우주연상 등 국내외 영화제를 휩쓸었다.


금기를 넘은 자유의 몸짓

이력이 말해주듯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연기파’ 배우. 작품 고르기로 소문난 그가 ‘올드 보이’의 제안을 받고는 초고도 안 보고 덤벼 들었다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기 때문이죠.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 박 감독의 작품에 매료됐어요.” 영화가 가진 파격적인 상황 설정도 한 이유다. “근친상간 등 상업 영화의 금기를 넘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변.

복수가 영화의 모티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민식을 움직이는 것은 연민이다. “복수도 불쌍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분노”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세월이 분노를 삭혀주는 좇?약인 것 같아요. 저라면 복수하기 보다 그의 상처 받은 내면을 이해하고 싶어 같이 소주 한 잔 기울였을 겁니다.” 불혹을 넘긴 나이. 원숙한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하는 최민식의 저력은 세월이 갈수록 깊어지는 감수성에 기인한 것 같다.


● 프로필

생년월일: 1962년 4월 27일 키: 177cm 혈액형: B형 좌우명: 서툴고 촌스럽더라도 성실하게 가자 학력: 대일고, 동국대 연극영화과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3-11-20 16:00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