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vs LG·KTF 동맹군 전면전, 치열한 타사 깍아내리기 경쟁도

이통3社 사활건 제로섬 게임
SK vs LG·KTF 동맹군 전면전, 치열한 타사 깍아내리기 경쟁도

“한 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 아마도 이는 이동통신회사에 꼭 적합만 말이었다. 011 = SK텔레콤, 016 = KTF, 019 = LG텔레콤. 휴대폰의 식별 번호는 특정 통신회사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분실해도 기존 번호를 포기하지 않는 한 통신회사를 옮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 장벽이 허물어진다. 이전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통신회사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도록 한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행되는 것.

‘011’ 번호를 사용하면서도 KTF나 LG텔레콤 고객일 수도 있고, SK텔레콤 고객이면서도 ‘016’ ‘019’ 를 쓸 수 있게 된다. 업계로서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플러스 섬’ 경쟁이 아닌, 서로의 고객을 빼앗아야 하는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제로 섬’ 경쟁을 치러야 하는 셈이다.

번호이동성제를 앞둔 이통 3사의 전쟁 양상은 2위 업체인 KTF는 한 발 비껴 서 있고, 1위 업체인 SK텔레콤과 꼴찌 업체인 LG텔레콤이 전면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하나로통신 인수 실패 등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1위 업체의 고객을 빼앗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특명이 내려졌을 것”(SK텔레콤) “가장 약한 3위 업체를 먼저 제거한 뒤 2위 업체와 경쟁하겠다는 의도일 것”(LG텔레콤). 양측은 각기 다른 음모론적 해석을 내놓는다. 반면 KTF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다’ 는 심산인 듯하다. 양측이 서로 치고 받으며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주는 마당에 굳이 전면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계산인 셈이다.


1위의 꼴찌 죽이기냐, 꼴지의 도발이냐

어느 쪽이 먼저 선제 공격을 퍼부었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문제와 비슷하다. 일단 표면적인 발단은 SK텔레콤측이 자사 고객들에게 보낸 ‘10월 소식지’와 일부 대리점이 제작한 홍보 전단지였다.

SK텔레콤은 LG텔레콤이 시행중인 ‘약정 할인제’에 집중 포화를 날렸다. 사용 기간(18~24개월) 약정을 조건으로 매월 사용요금의 15~40%를 할인해 주는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보조금 지급 행위라는 것이었다. LG텔레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요금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SK텔레콤의 요금이 LG텔레콤보다 더 저렴합니다”는 자극적인 문구로 딴죽을 걸었고, 후발 사업자들이 직원들을 통해 자사의 고객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불법 행위라며 문제를 삼았다.

LG텔레콤의 반격은 거칠었다. “SK텔레콤님, 자사의 이익을 위해 고객의 이익이 결코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SK텔레콤답게 경쟁 앞에 떳떳한, 고객 앞에 정직한 2004년1월을 준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2004년 1월에는 LG텔레콤도, SK텔레콤도 오직 고객만이 심판입니다” 연일 광고 문구를 달리하며 지배 사업자로서 SK텔레콤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약정 할인은 보조금이 아닌 요금 할인 혜택이며 고객의 선택 사항인데도 편파적인 전단지로 노골적으로 고객을 회유하고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내년부터 도입되는 ‘010’ 통합 식별번호를 두고도 공방이 일었다. SK텔레콤측이 ‘스피드 011, 스피드 010’ 이라는 광고를 내보내자 LG텔레콤측이 “식별 번호의 독점을 없애기 위한 것이 번호이동성제 도입의 기본 취지인데 ‘010’ 역시 SK텔레콤의 브랜드화를 하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전방위 난타전으로 확산

상호 비방 광고ㆍ홍보전은 구체적인 실력 과시로 비화했다. 시발은 11월11일 LG텔레콤과 KTF가 동맹을 맺고 낸 정부 건의문. 양사는 건의문에서 SK텔레콤을 차별 규제하지 않으면 번호이동성제가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발 사업자 구형 단말기 보상 및 할부 판매 허용 ▦후발 사업자 가입자들에 대한 요금 감면 폭 확대 ▦SK텔레콤 할부 판매 및 요금 감면 금지 등이 구체적인 건의 사항이었다.

SK텔레콤측도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바로 다음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회사측은 “차별 규제 요구는 시장 원리에 배치될 뿐 아니라 소비자를 볼모로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주장”이라며 강력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어 KTF와 LG텔레콤이 자사를 상대로 부당 영업 행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정보통신부에 제출하고, LG텔레콤의 약정 弩?요금제를 불법 보조금 지급 행위로 통신위원회에 신고했다. 게다가 일부 요금제의 요금을 낮춘 신규 요금 상품을 정통부에 신청할 방침을 밝히며 요금 경쟁에도 본격 뛰어 들었다.

커스터머부문장 조 신 상무는 “SK텔레콤의 요금 수준이 전체적으로 경쟁사보다 높지 않지만 다만 일부 높은 부분이 있어 이번 기회에 바꾸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진짜 전쟁은 내년 상반기

그래도 지금까지의 경쟁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진대제 정통부장관 주재로 이통 3사 사장단이 모여 공정한 경쟁을 약속했다지만, 진짜 라운드가 시작되는 내년 1월1일부터는 생사가 걸린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내년 상반기가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장점유율 순서대로 시차를 두고 제도가 시행이 되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는 SK텔레콤 가입자 만이 KTF와 LG텔레콤으로 옮길 수 있는 시기. 고객을 빼앗으려는 KTF와 LG텔레콤이 공동 보조를 취하는 반면 SK텔레콤은 고객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대결 구도가 명료할 수밖에 없다.

LG텔레콤은 이미 “3사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 2005년이 오기 전에 내년 1년 동안 200만명의 가입자를 추가 확보한다”는 목표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후발 사업자의 한 대리점 관계자는 “사전에 확보한 SK텔레콤 고객 정보를 이용해 무차별적인 공세에 나서거나, 대리점들이 앞장서 번호 이동 고객에게 편법 특혜를 주는 일도 비일비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전투구 식 경쟁을 보는 국민의 시각은 곱지 않다. 비판은 양측 모두에 쏟아진다. “선발 업체로서 그간 수많은 특혜를 입은 SK텔레콤이 후발 업체를 짓밟은 모양새는 결코 좋지 않다.” “서비스 경쟁은 뒷전으로 제쳐두고 상호 비방만 하고 있다.”

과연 번호이동성제가 업체간 서비스 경쟁을 통해 고객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한다는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업체 간 혼탁한 경쟁만 부추길 것인지 이동통신 업계는 지금 그 시험대 바로 앞에 서 있다.

거짓과 왜곡 공방… 누구 말이 진실인가
   


업계가 벌이는 공방에는 진실은 거의 없고 거짓말 혹은 사실 왜곡만 무성하다. 우선 공방의 최대 쟁점이 된 LG텔레콤의 약정 할인이 불법 보조금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조만간 통신위 심의에서 가려질 전망. 하지만 보조금 해당 여부와 관계없이 LG텔레콤 일부 대리점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약정 할인을 이용해 과장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LG텔레콤 일부 대리점이 약정 할인을 이용할 경우 30만~40만원에 달하는 단말기를 무료로 구입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며 "만약 약정 할인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경우 단말기 가격을 충당할 수 없는 만큼 과장 광고에 해당될 가능성이 짙다"고 말했다.

타사 고객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 역시 위법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직원들의 지인 정보만 수집하고 있을 뿐 다른 경로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는 LG텔레콤측 주장을 100%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본인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발 사업자들은 SK텔레콤 차별 규제의 필요성으로 1년간 신규 가입자의 경우 SK텔레콤이 92%를 독식했다는 수치를 들이 댄다. "점점 독과점이 심해져 공정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신규 고객 수에서 해지 고객의 수를 뺀 고객 순증분에 대한 점유율. 10월까지 실제 신규 고객에 대한 SK텔레콤의 점유율은 48%에 그쳤다.

"통화 요금이 LG텔레콤보다 더 저렴하다"는 SK텔레콤의 광고 역시 사실 왜곡에 가깝다. 광고의 사례는 월 통화량 200분인 일반 요금제 고객이 비할인, 할인, 심야 통화 비중이 각각 60대 30대 10인 경우를 가정한 것. 수백, 수천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자사 요금이 저렴한 사례 하나를 뽑아 마치 요금 전체가 저렴한 것처럼 홍보하고 있음은 SK텔레콤측도 시인을 하고 있다.

'스피드 011' 광고를 통해 '011' 번호를 독점해 온 SK텔레콤측이 '스피드 010'이라는 광고를 들고 나온 것도 위법의 소지가 크다. "KTF나 LG텔레콤도 010 번호 앞에 자사 브랜드를 붙이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 SK텔레콤측 주장이지만, 국가 자산인 식별 번호를 자사의 브랜드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1-21 16:10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