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 현당 최일선에 투입숫자·서류와 전쟁 치르는 전투병, 금융현장 지키는 자긍심 가득

[직업의 세계-16] 금융감독원 검사역 윤성식
금융사고 현당 최일선에 투입
숫자·서류와 전쟁 치르는 전투병, 금융현장 지키는 자긍심 가득


한번 의심스럽다 싶으면 종일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길을 걷든 전철을 타든 온 신경이 한가지에 쏠려 있다. 무엇을 어떻게 조사하고 증명해야 문제를 밝혀낼 수 있을까? 밤엔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심할 땐 천장에 서류가 어른거리고, 심지어 서류가 기어다니는 환상을 볼 때도 있다. 이러기를 벌써 9년째다.

“당구에 빠진 사람 눈에는 주위의 모든 게 당구공으로 보인대잖아요. 한창 문제에 빠져 있을 땐 저희도 세상이 전부 숫자와 서류로 보여요.”

그래도 일이 싫지 않으니 천직은 천직이다. 금융감독원의 베테랑 검사역 윤성식(44)씨. 은행검사1국 수석검사역이다. 검사역은 금융계의 수사관이나 다름없다. 금융에 관한 한 모든 사건사고를 다룬다. 몇 달전에도 윤씨팀은 숨어 있던 9억원대의 횡령사고를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 장부와 전표 등 서류와의 싸움에서 얻어낸 결과다. 문제 추적에서부터 수습, 징계까지 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금감원 자체가 금융기관을 감시, 감독하는 기관이다. 은행과 보험사, 리스사 등 동네 새마을금고만 빼고는 모두 이들의 감시망에 들어 있다. 심지어 사채업자까지도 이들의 감독 대상이다. 윤씨가 소속된 은행검사1국에만 검사역이 약 70명. 금감원 전체를 합치면 수백명의 검사역 대부대가 포진한 공룡조직이다.


업무특성상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

“우리는 전투의 보병과 같습니다. 보고를 받는 건 사령관이지만, 직접 고지를 장악하고 깃대를 꽂는 것은 보병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금융 현장을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자긍심과 희열이 있습니다.”

야근과 출장은 워낙 잦아 이제 일상사가 되었다. 현장 파견만 1년에 약 10차례. 금융사고가 터지면 터진대로 바로 ‘출격’, 잠잠하면 잠잠한대로 사전예방차 실시하는 정기종합검사에다 예고없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내부 통제검사’ 까지 쉴 틈 없이 돌아온다. 정기검사만 석달에 두번 꼴이다. 한번 출장가면 약 20일씩 집 구경을 못한다. 한 달에 10여일은 가족과 떨어져 덩그러니 객지의 여관방에 누워 있는 기분이 그리 편안할 리 없다.

업무의 특성상 그리 환대 받는 처지도 못 된다. 예전보다야 인식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검사를 받는 쪽에서는 더도 덜도 아닌 ‘벌 주러 온 사람들’로 여기기 보통이다. 감사팀에 대한 향응이나 칙사대접? 옛날에나 통하던 악습이다.

“요즘 그랬다가는 난리가 나죠. 이미 90년대 초부터 그런 건 없어졌어요. 더구나 검사를 나가면 저희는 차를 마시든 밥을 먹든 철저히 팀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개인 행동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요. 가령 점심 시간에 혼자 나가서 조금만 오래 있다가 들어오면 먼저 저희들 사이에서 의심받기 십상이죠.”

은행에 들어설 때부터 검사역들과 피검사자간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는 시작된다. ‘이를 드러내지 말라’ 는 말은 금감원 검사역들 사이에 통하는 불문율 중 하나다. 함부로 웃지 말라는 뜻이다. 친절하게 대하되,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기선제압용 지침이다.

정기종합검사의 경우 한번에 보통 20명이 팀을 이룬다.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살펴봐야 할 서류량만 어른 키 높이쯤 된다. 하루 내내 숫자와의 숨바꼭질이 이어진다. 화장실을 다녀올 때를 빼고는 자리 한번 뜰 새가 없다.

만성적인 요통에다 서류의 글자는 또 얼마나 깨알같이 작고 빽빽한가. 학창시절 1.5의 시력을 자랑했던 윤씨는 검사역 생활 9년만에 0.5, 0.1의 짝눈이 되고 말았다. 허리는 삐걱대고, 눈은 침침하고, 게다가 서류를 넘길 때마다 날리는 종이먼지까지 기관지를 괴롭힌다. 출장비를 아껴서라도 가능하면 하루 한번은 꼭 고기를 먹어두는 이유도 다른 게 아니다.

“이 일도 체력싸움입니다. 평소에 식사든 운동이든 건강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못 버팁니다. 보기보다 체력이 상당히 소모되는 일입니다.”

몸이야 괴로워도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다. 지방의 모 은행점포에서 일어난 9억원대 횡령사고는 심지어 당사자인 은행측조차 모르고 있던 것을 밝혀낸 것이다. 당시 윤씨는 우연히 이 내부통제검사에 합류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평소처럼 은행측에 대차대조표 등 관련서류와 전표를 요구해 훑어보던 중, 뭔가 수상쩍은 부분이 눈에 걸렸다. 이상한 계정과목에 이상한 거액이 들어 있었다. 그 계정대로라면 다른 은행에 돈이 보내졌다는 뜻이지만, 은행측에 확인해 보니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윤씨의 추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관련 서류를 샅샅이 대조하고 확인해 나가자 서서히 사고의 몸통이 드러났다. 한 직원이 서류를 조작해 무려 4년간 14차례에 걸쳐 거액을 빼돌린 것이 확인됐다. 이 간 큰 횡령범은 감쪽같이 주위를 속인 채 이미 다른 지점에 발령을 받아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늦으나마 윤씨팀의 적발로 횡령범은 곧바로 면직, 구속되었다. 사고를 미리 예방하지 못한 책임으로 은행담당자 20여명까지 덩달아 징계를 당한 뒤 사태는 마무리됐다.


금융사고 징계땐 인간적 연민

작년 초엔 80억원 횡령사건도 치뤘다. 모 우량은행에서 터진 이 사건은 원래 해당은행의 자체감사에서 1차로 적발된 뒤, 워낙 피해액이 거액이라 금감원이 나선 케이스였다. 이 사고 역시 내부의 한 직원이 은행의 대출한도를 악용해 돈을 빼돌린 것이었다. 문제의 장본인은 당연히 면직, 구속되었지만 남은 문제는 사라진 돈의 행방을 찾는 일.

금융회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금 추적을 벌인 끝에 그나마 사라진 돈 일부가 횡령범의 친구 계좌에 들어가 있는 것을 찾아냈다.

사고 뒤에 따라오는 것은 징계다. 징계대상과 문책 수위를 확정하는 것도 검사역의 역할이다. 특히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도의적인 책임으로 문책을 당하게 된 이들을 보면 검사역 윤씨의 마음도 편치 않다.

“얼마 전 확인서를 작성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분을 보았을 때는 정말 너무나 딱하고 마음 아팠습니다. 저도 같은 가장으로서 그 심정을 충분히 알지요. 금융소비자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윤씨는 부산상고를 졸업, 78년 한국은행에 입사하면서 금융계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부산지점 근무를 시작으로 86년 을지훈련 당시엔 서울에서 비상계획업무를 담당, 이때의 업무공로로 재경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 야간대학에 다니며 경영학을 전공, 전형적인 주경야독의 성실파이기도 하다.

검사역이 된 것은 95년 은행감독원으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다. 금감원의 전신인 은행감독원은 당시 한국은행에 소속된 기구였다. 초임 검사역으로 발령받아 고참들을 따라다니며 현장업무를 익힌 지 네번째만에 직접 업무에 투입되었다. 첫 임무는 포항의 모 은행에 대한 내부통제검사. 내부통제검사는 일종의 ‘불심 검문’ 과 같다.

의욕에 넘쳐 있던 초보 검사역 윤씨, 웃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상급자인 반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멋모르고 혼자 은행담당자로부터 확인서를 받아냈다가 혼이 났다.

“발령 받은 지도 얼마 안된 새파란 검사역이 그러고 있으니 반장님이 봤을 때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지금 생각해도 혼 날 만 했지요.(웃음)”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사건. 검사업무 3년째를 맞던 해, 지방의 한 은행점포에 나가 대출업무를 검사할 때였다. 조사를 하다 보니 2개의 업체에 대한 대출상황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대출금액도 많은 데다 해당 업체도 아닌 제3자의 개인계좌에 대출금이 들락거리는 등 돈이 오가는 모양이 수상쩍었다. 은행측 담당자에게 확인해 봤지만 그들의 설명이나 서류상으론 아무 하자가 없었다. 결국 ‘대출금 사후관리에 유의하라’는 정도의 지적만 하고 검사를 끝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두달 뒤 사고가 터져버렸다. 알고 보니 그 미심쩍은 업체들은 바로 그 은행의 지점장 부인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회사였다. 지점장이 부당하게 대출금을 일으켜 횡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검사 때 진작 적발해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윗분들의 질책과 제 자신의 자책감으로 그때 무척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그 일 이후, 은행 점포에 검사를 나가면 반드시 직원들 인사기록카드부터 요구해 먼저 직원들의 가족이름부터 눈여겨 본 뒤 검사를 시작합니다. 그때 얻은 교훈이지요.”

금융사고만 아니라 은행 퇴출과 합병 때는 감독관으로, 자금 ‘세탁’ 문제가 터질 때면 검찰청의 요청으로 자금 추적을 벌이는 등, 돈과 은행에 관한 한 모든 문제에 수시로 투입된다.

재작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직원들의 파업은 검사역 윤씨에게도 무척 힘겨운 시간이었다. 파업이 시滂퓽美뗌?검사국에서 종일 전화통에 매달려 수시로 상황을 파악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꼬박 밤을 새야 했다. 하루는 새벽 2시에 상황본부로부터 전화가 날아들었다. 빨리 다른 은행에 연락해 인원을 차출해 파업은행으로 보내라는 다급한 지시가 떨어졌다. 부랴부랴 각 은행담당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 인원 파견을 요청하는 등, 고달픈 나날이었다.

“물론 뿌듯한 일도 많습니다. 언젠가 창원지방검찰청의 지원 요청을 받아 자금 추적을 벌인 일이 있는데, 첫날 새마을금고에서 자금 세탁한 내용을 밝혀낸 뒤 증거자료를 검사에게 제출하자 부장검사가 ‘우리는 일주일이나 뒤지고도 못 찾은 것을 단 몇 시간만에 찾아줬다’ 며 감탄을 하더군요. 저희로선 간단하고도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지만, 한편 참 뿌듯했습니다.”


단편소설 쓰는 사내 인기작가

윤씨는 한국은행 근무 시절 사내 잡지의 소설공모에 단편소설을 응모해 4년 연속 당선과 우수상을 차지한 사내 인기작가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꿈도 자신이 겪은 검사업무나 금융사고를 소재로 좋은 소설을 쓰는 것. 그런데 그 좋아하는 글쓰기도 IMF 이후 무기한 보류중이다. 워낙 바빠져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잃어버렸다.

최근에도 20여일의 지방출장에서 막 돌아온 윤씨. 까칠한 입술로 ‘감기몸살에 걸렸다’고 말하던 그와 헤어진 다음날 TV에선 또다시 은행현금 수송차량 탈취 사건 소식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오랫동안 윤씨의 새 소설을 구경하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아쉽지만, 꼭 아쉬운 것만도 아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1-21 16:23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