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깨우침의 과정, 그 속에 진정한 자유가 있죠"

[스타탐구] 장미희

"연기는 깨우침의 과정, 그 속에 진정한 자유가 있죠"

변할수록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배우만의 특권이다. 유지인, 정윤희와 함께 1970~1980년대 트로이카로 군림하며 은막의 최고 스타였던 장미희. 1975년 박태원의 ‘성춘향’으로 데뷔해 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매 작품마다 화려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배우이자 대학의 연극영화과 교수, 또 영화진흥위원회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장미희에 관한 탐구.


온몸으로 보여준 한국영화의 필모그래피

장미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상함이다. 출연한 영화가 갖는 작품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20대의 감성, 30대의 육체, 40대의 지성을 갖춘 채 연기자와 교육자, 정책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한국의 독보적인 여배우다.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며 조리있게 말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교수님’이고 핵 폐기물 반입 반대, 동강댐 건설 반대 등을 소리 높여 외칠 때는 ‘생각있는’ 사회 운동가다. 질문을 받을 때면 구술 시험을 치르는 여학생처럼 긴장하고 비교적 솔직하고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편이다. 책을 좋아하는 평소 습관 탓인지 사용하는 어휘와 표현도 상당히 세련됐다.

1980년대의 장미희가 지적인 여배우의 모습이었다면 1990년대의 그는 격정적이고 처연한 선구자다. 2000년대 들어 이미지의 대변신이 일어나는데 “똑(떡) 사세요~”와 “아름다운 밤입니다”가 그를 대신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천직으로 느껴지는 장미희는 순전히 언니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언니는 한 영화사의 오디션에 동생을 끌고 갔고 거기서 그는 숨어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 배우 선발을 지켜보던 당시 기자들의 몰표로 여주인공으로 선발되고 ‘겨울여자’,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사의 찬미’ 등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필모그래피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영화배우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3년, 구구한 억측을 뒤로한 채 공부를 하겠다며 파리로 홀연히 떠날 때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도 했다.

그 후 파리와 미국에서 오랜 시간 공부한 후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서더니 이제 충무로보다는 캠퍼스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교육자가 됐다. “배우는 인간에 대한 끝없는 탐험입니다. 인간에 대해 늘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져야 하는 사람이죠. 학교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다 보면 그 탐험이 더 치열해집니다. 아무래도 젊은 피들과 섞여 있어 그렇겠죠. 여러모로 좋습니다.”

영화 ‘보리울의 여름’ 후 활동이 뜸하다 싶더니 얼마 전 부터는 ‘꽃뱀’으로 변신해 안방극장에 웃음을 뿌리고 있다. 흥부와 놀부로 상징되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흥부네 박 터졌네’에서 놀부 박만보(이순재)에게 ‘작업’ 들어가는 밤무대 여가수 출신의 꽃뱀으로, 기분이 좋을 땐 엉덩이까지 흔들며 노래 부르는 푼수끼 다분한 역할이다.

코믹 연기라 쳐도 이번 작품에선 정말 제대로 망가지는데 정작 본인은 기다렸다는 듯 즐거워한다. “우선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갈수록 연기가 자유로워지지 않아 요즘 들어 자유와 재미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다 같이 한번 즐겁게 웃어보자는 생각이 출연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됐습니다.” 단아한 장미희는 기대하지 말란다. 허름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엉뚱한 대사들을 쏟아낼 계획이란다.


친구같은 남자 있으면 결혼

‘기혼’과 ‘미혼’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사회 이분법적 사고라서 싫다는 그는 어쨌든 아직 미혼이다. 지금까지 자신있게 프로포즈한 남자가 없었을 뿐이지 독신을 고집하는 건 아니란다. 함께 뜰을 가꾸고 소박한 밥상을 나눠먹을 수 있는 친구 같은 남자였으면 한다고.

한결같이 소녀같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끊임없는 자기관리다. 하루 2끼 식사와 채식 위주의 식생활로 건강을 유지한다. 강아지와 앵무새, 고양이를 기르며 긍정적인 사고로 살다 보니 자연스레 젊어진단다.

그는 곧잘 연기를 글 쓰기에 비유한다. 보통 처음에 시를 한번 써 보려고 공책에 끄적거렸다가 길어져 산문이 되고 소설이 되지만 다시 짧은 시를 써 보려고 안간힘 쓰는 것 처럼 연기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연기를 완결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다.

“연기는 깨우침인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득도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시행착오와 번뇌를 통해 진정한 맛을 알아가는 거죠. 더 분주히 노력하고 고민할 겁니다. 저, 아직 늙지 않았으니까요.”

맞다. 특유의 간드러지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호호’ 웃음을 날리는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여인의 아름다움은 세월에 의해 단련되어지고 성숙된다고 했던가! 오래될수록 더욱 진한 맛을 내는 포도주처럼 한국영화계의 큰 고개로 자리잡고 있는 그가 있어 든든하다. 장미희의 연기를 향한 그 부지런한, 끊임없는 질주는 오늘도 논스톱이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