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혹은 신화의 무협 판타지멜로 형식 빌린 통일신라시대 역사 이야기

[시네마 타운] 천년호
설화 혹은 신화의 무협 판타지
멜로 형식 빌린 통일신라시대 역사 이야기


흥미롭게도 올해 이미 선을 보였거나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 중에는 시대극이 많다. <청풍명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황산벌>, <천년호>, <낭만자객>들인데 거기다 텔레비전 드라마 <다모>, <대장금>까지 포함해서 생각해보면 ‘역사고증과 역사발견’이 현재 대중문화의 중요한 코드로 읽혀진다.

시대극들은 과거에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던 궁중의 암투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인물을 다루지 않는다. 최근의 사극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실존 인물인 것과 상관없이 ‘개인적인 일상’이다.

우정(<청풍명월>), 삼각관계(<스캔들>), 사투리(<황산벌>) 등은 역사책이나 역사물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적이 없었다. 만약 이런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었더라도 핵심적인 요소는 늘 거대한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담론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고증이 불가능한 부분들에 대해 여지없이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점이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좀더 자료가 많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들은 그래서 사실적인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판타지’의 성격을 갖게 된다.


무협멜로판타지 혹은 무협멜로서사시: 중국영화아닌가?

<천년호>의 배경은 통일신라 말기에 해당하는 880년대이다. 진성여왕과 골품제도, 화랑은 그 시대를 가늠하게 하지만 사실 한국어 대사를 제외하면 이 영화는 배경이 신라 또는 한국이 아니어도 그다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영화가 표방하고 있는 장르가 국제적 혼합이듯이 영화적 장치들은 거의 국적불명으로 보인다. 만약 대사가 한국어가 아니라 북경어라면 중국영화로 받아들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이고, 동아시아 지역의 언어와 역사에 무지한 외국 관객은 홍콩영화라고 믿을 것이다.

<천년호>가 중국에서 촬영되고 주요 제작 스태프들이 이미 잘 알려진 중국과 홍콩의 영화인들이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기원전 57년 어둠과 주술의 시대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 의해 멸망하는 아우타족의 이야기는 역사적이기 보다는 설화적 혹은 신화적이다.

그리고 우연히 아우타의 천 년 동안 묻혀있던 저주는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원귀로 환생한다는 이야기의 설정도 중국영화의 줄거리와 매우 흡사하다. 여기에 영화의 핵심인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는 진성여왕과 신라를 수호하는 장군 비하랑, 그리고 비하랑이 사랑하는 역적의 딸 자운비의 삼각 관계가 중심축이다. 이런 이야기의 구도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지겨운 설정과 동일하다.

무엇보다도 중국영화 같은 부분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황궁의 공간적 특성이다. 물론 신라시대의 건축을 정확히 고증해 낼 수 있는 자료는 없었고, 판타지에 어울리는 궁궐을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라시대의 많은 양식이 당나라와 비슷했다고 하더라도 진성여왕의 황궁은 <영웅>에 나오는 중국과 너무 흡사하다.

무협과 멜로와 판타지를 섞어 놓은 장르에서 국적이 뚜렷하고 역사적 사실을 설득력있게 그리는 게 필수조건은 아니라지만 이미 중국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진 공간적 특성을 2,000년 전 신라로 보라는 것은 너무 억지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모호한 공간적 배경과는 달리 비하랑이 치뤄내는 전쟁은 너무 ‘사실적’이고, 그와 반면에 아우타의 원한이 들어 온 자운비의 액션은 너무 ‘비사실적’이다.


이중적인 여성의 몸: 청초한 여인 자운비와 천년의 원한을 지닌 아우타

<천년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김효진의 자운비였다. 지금까지 사랑스러운 청순한 여성은 어떤 종류의 힘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주로 멜로 영화의 아름다운 여성은 허약해서 병에 걸린 적은 무수히 있었지만, 이를테면 이중성 같은 것이 같은 형태의 몸에서 보여진 적은 없었다.

비록 자운비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연히 뽑아낸 검이 원혼을 불러내 파괴적인 힘을 갖게 되었더라 하더라도, 산골에서 꽃잎을 따서 말리는 여성에서 가공할 만한 액션을 뿜어내는 여성 혹은 중성(모습은 여성이지만 목소리는 남성적이기 때문에)적 인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더구나 흔히 남성성과 뗄 수 없는 상징을 지닌 검을 여성성으로 대변되는 대지에서 빼어냈다는 점은 여성성의 해방과 그로 인해 여성이 가지게 된 힘을 파괴적이고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해석하게 만든다.

자주색 도포와 풀어헤친 머리를 휘날리며 하늘을 나르고 유연하게 이동하는 모습에는 분명 자유와 해방을 발견할 수 있고, 귀신영화에 등장하는 한과 분노를 품은 여성의 무서운 눈매와 표정은 자신을 억압하려고 했거나 강간하려고 했던 남성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로까지 보여진다.

현대 한국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고 흥행 성적도 좋은 영화에는 늘 멜로적인 요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야기는 늘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다.

<천년호>는 배경이 신라이고 여왕이 등장하고 중국에서 촬영되었다는 차별점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런 점들을 반복하기 때문에 전혀 새롭지 않다. 같이 죽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하지만 국가(신라)를 위해 자운비를 죽여야 했던 비하랑은 사랑보다는 언제나 애국을 택했던 수많은 남성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고, 힘을 갖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사랑스러운 여성은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죽음으로 완성(?)된다.

시네마 단신
   

충무로 3인방 <하류인생>으로 다시 뭉쳐

<서편제>, <취화선>의 거장 임권택(67) 감독이 2년 만에 '액션영화'로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흔아홉 번째 영화 <하류인생>이 그것이다. <하류인생>은 1960~70년대를 무대로 하는 건달 이야기. 소용돌이치는 현대사에서 온 몸으로 세상에 부딪치는 이 남자의 인생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다. 이태원 사장과 정일성 촬영감독이 임 감독과 다시 의기투합했으며 '록의 대부'신중현이 영화 음악으로 가세한다. 내년 4~5월께 개봉 예정.


<바람난 가족> 펀드 '작은 대박'

530명의 네티즌 투자자들이 참여했던 <바람난 가족>의 인터넷펀드가 79.4%의 수익율을 기록했다. <바람난 가족>은 지난 8월14일 개봉하여 10월16일을 끝으로 전국 약17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입력시간 : 2003-11-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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