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저출산 현상, 1.17명으로 세계 최저수준노동력 부재·고령화 등 사회문제, 인구정책 중대 기로에

고달픈 생활전선 "둘째는 꿈도 못꿔요"
심각한 저출산 현상, 1.17명으로 세계 최저수준
노동력 부재·고령화 등 사회문제, 인구정책 중대 기로에


네 살 난 아들을 둔 주부 오모(35)씨는 요즘 형제 없이 외롭게 커 가는 아들을 보면 안쓰러움이 앞선다. 둘째 아이를 출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두 자녀를 키울 자신이 없어 고민이다. 오씨는 “친정에서 종종 아이를 봐 주시는데 이것도 어머니를 고생시킨다고 식구들에게 눈치가 보이는 형편”이라면서 “현실적으로 아이를 더 낳는 것은 엄두를 낼 수가 없다”고 말한다.

가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오씨처럼 아이를 낳고 싶어도 여건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들이 늘어 나면서 지난 1960년 가임 여성 1인당 출산 인구가 6명까지 달했던 합계 출산율이 현재는 1.17명까지 떨어졌다.

미국(2.13명) 프랑스(1.89명)는 물론이고 저출산율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는 영국(1.64명)이나 일본(1.33명)보다도 낮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출생아는 55만 7,000명으로 2000년보다 8만 명이나 줄었다.


희망자녀수와 실제 출산 큰 차이

낮은 출산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출산율 저하의 속도다. 5~6명이던 출산율이 2명 이하로 떨어지는 데,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 100여 년이 걸린 것과 달리 한국은 30년이 채 안 걸렸다. 전문가들은 “당장 출산 안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계속 하락하고 노동력 부재, 고령자 급증 등의 문제까지 겹쳐 극도로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부부의 평균 희망 자녀수는 2.1명이다. 그러나 실제 출산율은 1.17명에 불과하다. 원하는 만큼만 아이를 낳으면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 출산력’(2.1명)이 확보되나, 실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현실이 못 된다는 것이다.

주부 배모(31)씨는 “아이를 하나만 낳아도 부담스러워 주체를 못하는 마당에 둘째, 셋째는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초등학교 6년 이하의 자녀를 둔 기혼 여성(886명)과 남성(5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출산과 양육에 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여성의 61.6%, 남성의 39.9%가 “직장 생활과 양육을 병행하기 어려워서”라고 응답했다. 여성이 출산을 앞두고 ‘일이냐, 가정이냐’로 갈등하게 만드는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의 ‘평등의 전화’가 올 상반기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산전 후 휴가와 육아 휴직 등 모성 보호에 대한 상담 건수는 전체 1,471건 가운데 204건(13.9%)로 지난해 같은 기간(159건)보다 크게 늘었다.

턱 없이 부족한 보육 시설도 여성의 육아 부담을 가중시켜 저출산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보육 시설은 2만여 곳. 보육 시설 이용을 원하는 3세 미만 영아는 89만 명에 이르나, 수용 능력은 15만 명에 불과하다. 교육비도 큰 문제다. 여성의 59.6%와 남성의 53.9%가 ‘사교육비 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자녀 1인당 평균 양육비는 월 75만 1,000원으로, 교육비(47만 2,000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피터 맥도널드 호주 국립대 교수는 최근 통계청 주최로 열린 국제 세미나 ‘저출산과 고령화’에 초청돼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 중요한 지적을 했다. “불평등한 사회 현실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 남편의 고용 불안, 주택 가격 급등으로 부인이 돈을 벌러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 등이 겹쳐 발생한 것이다.”

저출산의 파장은 예상 이상이다. 한 사회의 활력도를 가늠하는 잣대인 ‘노령화지수’(65세 이상 인구를 14세 미만의 인구로 나눈 지수)에서 2000년 전 세계 23위를 기록했던 우리나라는 2050년에는 2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현재 425만 명에 달하는 초등학생은 불과 20년 뒤면 275만 명까지 줄어 들고, 주변 사람들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직장생활 병행이 가장 큰 장애요인

지난 8월 정부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출산 장려 및 여성경제 활동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2004년부터 만 6세 이하의 자녀 보육비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를 현재 25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늘리고, 육아 휴직 급여도 월 30만원에서 월 40만원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신 인구 정책이 마련되면 출산과 양육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고 보육 시설을 늘리는 등 출산 장려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도 ‘출산안정법안’을 발의 50만원 이상의 출산 수당을 지급하고 셋째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양육비 일부를 지원토록 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발의해 둔 상태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저출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올라왔던 데 대한 반응의 성격이 짙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사회정책연구실장은 ‘저출산의 사회경제적 영향과 장ㆍ단기 정책 방안’이란 연구보고서에서 “출산율의 저하는 곧 사회의 전반적인 침체와 고령화와 연결된다”며 “떨어지는 출산율을 안정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던 터다.

그러나 ‘신인구정책’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노령화에 대한 사회 복지 대책은 세우지 않고, 아이를 낳아 노령 지수를 낮춘다는 것은 편협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기백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근래 들어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국토 면적이 좁고 부존자원이 적은 우리나라의 인구 밀도는 여전히 세계 3위로 대단히 높은 수준”이라며 “저출산 추세가 지속되더라도 실제 인구가 감소하는 데는 50년 이상 걸리므로 출산 정책은 신중하게 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출산율이 저하해 노동력이 모자랄 것이라는 우려에 관해서 “고도의 기술 사회인 21세기에는 머릿수보다 기술력의 질이 중요하다“며 “실업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을 막기 위해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도 않다”고 반박했다.

신순철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홍보출판과장도 “상당수 여성들이 육아와 출산 문제로 사회 생활을 포기하는 현실에서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여성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출산장려 신중기해야" 우려도

갑자기 출산율만 높아지면 고령 인구에 대한 복지 대책은 마련하지도 못한 채 어린 아이들의 육아에 대한 부담까지 이중으로 짊어지게 된다는 우려가 현실적으로는 절대적 설득력을 띠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 풍토가 결국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선뜻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확실한 것은 21세기 한국의 인구 정책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3-11-27 16:04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