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폭설 골프


어느새 겨울이 왔나 싶더니 그래도 겨울 날씨 치고는 그리 춥지가 않다. 1년 내내 필드에 나가고 싶은 골퍼들에게는 다행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겨울은 지난해 보다 덜 춥고, 대신 눈이 많이 온다고 한다.

골프광인 클린턴 전 대통령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골프를 즐겼다는데, 필자도 눈 속에서 골프를 친 적이 없지 않다. 마치 눈사람처럼 귀마개와 털모자를 뒤집어 쓰고 솜바지를 입고 플레이를 하곤 했다. 얼마나 껴 입었는지 꼭 아이들이 좋아했던 텔레토비 같았다.

눈 속에서 샷을 하면 페어웨이에 떨어지더라도 공이 눈을 돌돌 말아 주먹 만해진다. 이게 눈인지 공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어떨 때는 도저히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할 만큼 눈밭이 깊을 때도 있는데, 이 때는 중간에 그만 두고 돌아가고 싶어 죽겠는데도 동반자들 때문에 끙끙대며 치기도 한다. 아마도 골프 마니아 라면 이 정도의 기억은 누구나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눈 속 골프의 추억이 하나 있다. 전날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티오프 시간이 됐는데도 그치지 않았다. 대개 눈이 오면 날씨는 그리 차지 않건만, 그 날은 날도 유난히 추웠다.

4명이 의논을 했다. “이런 눈 속에서는 안 하는 게 낫다”와 “눈 속 골프도 묘미가 있다. 눈 맞으면서 하는 골프가 낭만적이지 않느냐”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잠 설치고, 멀리 여기까지 온 수고를 생각해 나가야 한다고 결론이 났다.

4명 모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오들오들 떨었다. 솔직히 잔디 위에서 샷을 하는 것이 아니라 꼭 딱딱한 땅 위에서 자치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임팩트 순간 오른손에 전해지는 손맛의 느낌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치고 나면 눈과 공이 탕 하고 튕겨져 나가는 기분이다.

추위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어서 4명은 꼭 붙어 다녔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서 였다. 이건 골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눈 속에서 골프 ‘토크’를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한명이 치면 3명이 우루루 같이 붙어 다녔다.

몇 개의 홀을 돌고 난 뒤였다. 4명 중 한 골퍼의 코에서 콧물이 나왔다. 정작 그는 얼마나 날씨가 추웠던지, 콧물이 나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콧물이 입에 닿는 순간 그는 비로소 콧물이 나오는 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콧물은 그의 입까지 하얗게 자국을 냈다. 그린 위에서 그 모습을 본 나머지 세 사람은 그 순간만은 추위도 잊은 채 까무러치게 웃었다.

눈 속 골프에서 그린 위 퍼팅은 묘한 감정을 선사하기도 한다. 어드레스를 조금이라도 신중하게 할라치면 동그랗고 하얀 눈이 살포시 그린 위에, 그리고 볼 위에 내려앉는다. 그 기분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예쁜 우표 속에 나오는 그림보다 훨씬 예쁘다.

그렇다하더라도 지금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아마 골퍼들에게는 눈이 많이 올 때 필드에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치고 나면 재미있는 추억이 하나쯤 생길 수 있지만 그 다음날이면 영락없이 근육 마디마디 마다 몸살 걸린 것 처럼 아파올 것이다. 자칫하면 손목도 다칠 위험이 크다.

또한 페어웨이가 얼어있다 보니 걸을 때도 미끄러지기 일상이다. 혹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 다음 여름에도 만족할 만한 골프를 하기 어렵다. 구력이 오래된 아마 골퍼들은 연륜(?) 때문인지 그래도 별 부상없이 플레이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언 땅 위에서 샷을 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만약 그리 춥지도 않은 날에 경기를 잘 한 뒤 18홀에 올라섰는데 눈이 살포시 떨어지는 날이 온다면…. 이 날은 축복의 날일 것이다. 필자도 15년 넘게 골프를 했지만 18홀 그린에서 눈을 맞이한 경험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그 때의 그 광경을 또 맞이하고 싶은데, 언제 또 그런 날이 오려나?

박나미


입력시간 : 2003-12-03 11:02


박나미 nami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