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남덕우 전 국무총리


"대립과 반목의 혼돈상태, 대통령 리더십으로 풀어야"


심각한 국정 리더십 부재가 정치·경제적 위기 부추겨
정치자금 문제 등 난마처럼 얽힌 현안, 대통령 결단 필요

남덕우(南悳祐·80)전 국무총리(현 산학협동재단이사장)는 현 시국을 '위기'라고 규정했다.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해 "국정이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정·재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렬이 리더십을 발휘해 중대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단언했다.

남 전 총리는 "다행스럽게도 6년전인 IMF 위기때보다는 국제수지가 안정되고 외환 보유고가 높지만 심각한 국정 리더십의 부재가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며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불거진 극한 대립 상황을 풀기 위해서는 사법적 수단으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 자신의 치부라도 밝힐 것은 밝히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국이 사법적 처리를 놓고 앞 다퉈 '까발리기 식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이 지루한 싸움이 종지부를 한 시라도 빨리 찍고 정치개혁 법안을 제대로 마련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문제해결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11월 26일 전국경제연합회 부설 경영전문 교옥기관인 국제경영원(IMM)이 주관한 '젊은 시장 경제지도자(YLC) 양성 위원회 창립 기념의 밤' 행사에서 남 전총리를 만나 현 정국 상황에 대해 들었다.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 확립 시급

- 한국은 대란(大亂)과 소란(騷亂)의 '문제공화국'이 다. 가계부채, 기업의 해외 탈출, 정치부패, 농민문제, 부안 사태, 분권 갈등 등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지금의 혼돈 상태를 정돈하기 위해서 어디에서부터 가닥을 잡아가야 할지 모를 상태다. 먼저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을 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정신적 구심점이 없으면 국민적 통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국민에게 국가이념을 천명하고 그것이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도록 해야한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기본방침을 밝히고 이를 수행할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지도자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의 경영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지금 우리의 공통된 문제 의식은 어떻게 하면 대의정치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금융정책 실패로 인한 금융부실, 경기침체의 장기화, 노사분규와 이웃나라 중국의 경제적 도약 등과 같은 경제적 혼돈상태에서 빠져나가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다행히 수출이 증가하고, 국제수지도 아직 흑자기조를 유지하며 외환보유고는 1,300억 달러를 웃돌고 있어 IMF 위기 당시와는 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비(非) 경제적 요인'들로 인한 사회불안과 위기 의식히 한층 고조되고 있다. 리더십의 부재가 아쉽다."

- 파국으로 치닫는 불법 정치자금 문제의 해법은무엇인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우리 정치 문화의 소산이다. 이는 정치권과 재계, 투표권자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공동의 문제로 우리 정치문화의 후진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잘못된 것은 철저히 그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원칙론은 시대적 상황에 비춰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사법적 수단으로는 얽혀 있는 문제의 큰 흐름을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아무리 수사를 확대한다고 해도 결과는 미진할 수 밖에 없다.

일부에선 수산의 형편성에 대한 불만과 의혹을 제기할 것이고, 결국 당한 사람들만 억울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상황이 전개될 뿐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과연 어느 선에서 이 지루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하는데 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으로 보는가. 이제는 얽혀 있는 문제의 수습을 위해 봉합작업에 나설 강력한 리더십이 시급한 상황이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제대로 된 정치개혁법안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할 때다.

대통령이 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나서 자신의 치부라도 솔직하게 먼저 까놓고 애기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각 정당 역시 이를 수용하고 고해성사를 나서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시효 소멸조치 같은 방식을 써서라도 극한 대립정국을 안정시켜야 한다. 오랜 기간 구조적으로 왜곡돼 있는 우리의 정치 문화 현상은 일반 정서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것이 현실이다. "


리더십 부재가 정치불신 가중

- 위기의 원인으로 '리더십의 부재'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은데.

"지도자는 자기의 경륜에 대한 굳은 신념과 열정을 가져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뚜렷한 경륜과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지도자으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지도자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견해와 학신이 서 있어야 하고 그러한 확신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지지 국민을 넓힐 수 있다. 그러면 그 사회의 중심이 잡히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정치적 지도력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다. 아니 불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에 대한 자기의 소신을 명백히 밝히는 지도자가 없고 다만 원칙 없는 타협으로 국면을 호도하려고 하고 있는 경향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지고 우왕좌왕하는 꼴이 된다.

우리가 직면한 기본적인 문제는 모래알과 같이 흩어진 민심을 규합하는 일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구심점의 역할을 해야 한느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구심점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대통령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책임을 나누어야 할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구심점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경제 위기도 극복하고 치열한 21세기 시대를 제대로 열어갈 수 있다."

- 현 상황에서 지도자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지도자는 우선 자신의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확실히 알고 그에 대한 열의와 추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지도자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전문적 지식은 아니더라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그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일반적 개념은 갖고 있어야 한다. 국내 문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우선 순위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경륜이란 우선순위의 선택을 말한다. 셋째, 지도자는 사람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야에서 널리 인재를 구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자기의 경륜을 펴나가는 것이다. 넷째, 지도자는 국민을 설득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매스컴의 시대에는 언변도 조항야 하겠지만 신념과 성실이 뒤따르지 않으면 도리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다섯째, 지도자는 통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조직을 통솔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조직을 부릴 수 없고 거꾸로 조직이 그를 부리게 된다.

여섯째, 지도자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이해득실을 빨리 알아차리고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가 승리한다는 것은 삼국지의 교훈만은 아니다. 때로는 무엇을 한다는 결단보다 안 한다는 결단이 더 어려울때가 있다. 끝으로 지도자는 청렴하고 덕이 있어야 한다. 자신은 높은 도덕수준을 지키지만 남을 설교하려하지 않는다. 정치에 도덕론을 앞세우는 정치가는 그것으로 자기의 무능을 가리려 하고 자승자박에 빠지기 쉽다. 아마도 이러한 조건들을 고루 갖춘 지도자는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는 나라가 난국에 처할 수록 위와 같은 덕목들을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남덕우 전 총리는 누구인가.

1969년~78년 12월 재무부 장관과 경제부 총리를 지내면서 70년대 고도성장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80년대 초반에는 국무총리를 지냈다. 공직을 떠난 이후에도 한국 경제가 중대한 걸림길에 설때마다 경륜과 비전이 돋보이는 조언을 해 주목을 받았다. 그가 65년에 쓴 '가격론'은 미시경제학 이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교과서로 유명하다.

▲ 1924년 경기 광주 출생 ▲ 국민대, 서강대 교수 ▲ 재무부 장관 ▲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 국무총리 ▲ 한국무역협회 회장 ▲ 현 산학협동재단 이사장


입력시간 : 2003-12-04 11:4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