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 빈 그릇에 담아둔 자존심영업사원 출신 첫 임원, 상대방 마음을 여는 프로 세일즈맨

[직업의 세계-18] 자동차 세일즈맨 박노진
신발장 빈 그릇에 담아둔 자존심
영업사원 출신 첫 임원, 상대방 마음을 여는 프로 세일즈맨


3주전 어느 밤, 그는 또 한강변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으슥한 곳에 서서 냅다 소리를 질러댔다. 기껏 정성을 쏟았던 사람이 경쟁사의 차를 사 버린 날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하소연으로 시작된 웅변은 늘 그랬듯이 자기다짐으로 끝났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 테니, 용왕님이 협조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렇게라도 털어버린 뒤 다음날부터는 신입 때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실패는 빨리 잊어버려야 됩니다.”

세일즈의 달인, 박노진(49ㆍ GM대우자동차 판매이사)씨는 그렇게 산다. 수년째 영업계의 왕좌를 석권하고도 여전히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딛듯이 보낸다. 그는 영업사원 출신으로는 최초의 임원이라는 신화를 낳았던 주인공이다. 97년 이래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자사 판매왕의 자리를 차지한 저력의 프로 세일즈맨이기도 하다.

그간 세운 기록만으로도 웬만한 영광은 다 누렸다. 80년 입사 첫해에 자동차 49대를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83년부터 100대권에 진입, 이후 85년 한 해만 빼놓고는 줄곧 100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200대를 돌파한 것만 서너 차례, 273대를 기록한 93년의 경우 심지어 한달에 54대를 판 적도 있다. 한 해 평균 약 150대, 많을 땐 이틀에 한 대 꼴, 평년작으로도 사흘에 한 대 쯤은 팔아온 셈이다. 영업직 이사로 승급한 것이 99년의 일이다.


말단보다 더 말단 같은 하루

그런데도 여전히 말단사원보다 더 말단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 그의 근무지는 서울 동대문 지점. 새벽 7시쯤이면 이미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고객들에게 보낼 우편물이며 이메일 처리, 이미 며칠 전에 다 짜놓은 그날치 스케줄 점검까지 끝나면 10시가 훌쩍 지난다. 10시 반이 지나면 이미 사무실에서 사라지고 없다.

지하철을 타고 종일을 돌아다닌다. 하도 많이 다녀 웬만한 뒷골목 지리는 다 꿰고 있다. 들를 곳만 추리고 추려 하루 평균 약 20군데. 그렇다고 그더러 오라고 청한 곳도 아니다. 신문의 경제면에 나온 업종별 경기 현황을 보고 돈이 몰리는 업종을 가려 중점적으로 찾아다니는 것이다. 점심식사도 마케팅의 연장이다.

일부러 다른 업종의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수시로 수첩을 폈다 접었다 한다. “이런 자리에서 얻는 정보야말로 인터넷에도 안 나오는 살아있는 정보입니다. 가령, 함께 밥을 먹는 분이 주위의 누구는 요즘 사업에 대박이 터졌다든가, 누구는 부도가 났다든가 하는 소식을 알려주시거든요. 그럼 그 중에서도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분들을 가려서 메모를 한 뒤 바로 찾아가보는 겁니다.”

초면부터 바로 코 앞에 팸플릿을 들이 미는 건 초보 때나 한 일이다. 정감가는 미소와 칭찬세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조급하게 굴지않고 찬찬히 상대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린다. 불편한 첫 대면이라도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하며 공손히 관심을 보이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도 마음의 빗장을 푼다. 세일즈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물론 한번에 되는 일이 아니다. 업계가 알아주는 베테랑인 그라도 여전히 10번에 7,8번은 퇴짜를 맞는다. 나머지 중 1,2번도 그저 이야기나 들어주는 정도다. 어떨 땐 첫 계약까지 1년이나 걸리는 경우도 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 대략 오후 7시. 그 사이 잔무를 마저 해결하고 나면 아무리 빨라도 저녁 9시는 돼야 집으로 향한다. 고객들 중 누군가 경조사라도 터진 날이면 이마저 柰〈?求? 빈소에 가서도 인사가 끝난 뒤엔 낯선 조문객들에게 명함을 돌리기가 자동이다.

자기 전엔 집 주변 초등학교 운동장을 10바퀴쯤 달린다. 체력단련도 단련이지만 또 다른 목적도 있다. “뛰면서 오늘 내가 실수한 것은 없나, 머리 속으로 하루 일과를 정리합니다. 운동장을 못 뛸 땐 자기 전 단 1분이라도 꼭 그날 일을 반성하고 잡니다. 그러면 실수가 많이 줄더라구요.”


현실에 안주하면 세일즈맨은 끝

이미 확보한 고객만 6,000 여명이다. 그 중 상당수는 그의 성실함에 반한 고객이 스스로 다른 손님까지 소개해 준 케이스다. 이만한 고객부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뛰어다니며 새 고객을 찾아 나선다. 그가 장수하는 비결 중 하나다.

IMF때도 ‘상황이 어려운 만큼 2배로 뛰겠다’던 각오가 판매왕의 자리를 가져다 주었다. 다들 불황이라고 울상인 요즘도 그의 개인 성적은 변함없이 호조다. 11월 현재 이미 자동차 약 170대를 판매한 상태다. 올해도 변함없이 최우수상 유력후보다.

“그전엔 실적이 좋았던 세일즈맨들도 경력 10년쯤 지나면 서서히 맥이 끊기는 이유가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쯤 되면 ‘이 나이에 무슨…’하면서 가방 대신 수첩 하나만 달랑 들고 나간다든가 기존 고객들만 믿고 앉아서 오는 주문만 받고 있다가 결국 한계에 부딪쳐 도태되는 거지요. 그런게 ‘고참의 병’입니다.”

그는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넉넉지 않은 집안형편으로 어렵게 공부를 했다. 빨리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덕수상고에 진학, 졸업후인 80년 대우자동차의 경리사원으로 취직했다. 그런데 경리직을 맡으며 직원들의 월급명세를 보니 영업직 사원들의 봉급이 자신보다 5~6배나 많은 것을 보고 결심, 영업직으로 길을 바꾸었다.

문제는 사람들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질 만큼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이었다. “한번은 겨우 용기를 내 한 가전제품 대리점에 갔는데, 들어서자마자 그곳 종업원이 ‘어서옵쇼’ 큰소리를 지르는 데에 지레 기가 죽어서 엉뚱한 가전제품 값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그냥 나왔어요. 그래서 다음 번에는 작정을 하고 들어가자마자 제가 먼저 큰 소리로 인사했더니 ‘어디 전쟁났냐’고 면박만 당하고 또 나왔지요. 완전히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

자존심은 일찌감치 버렸다. 신발장에 빈 그릇 하나 놓아두고, 출근할 때마다 그 그릇에 자존심을 맡겨두었노라 자기최면을 걸었다. 수모도 많이 당했다. 설명 중 조금만 말이 막혔다 하면 곧장 상대방의 비아냥이 날아들었다. ‘그러니까 네가 차를 못 팔지’, ‘너 같은 사람은 회사에서 내보내야 된다’는 모욕에서부터 심지어 ‘그러니까 대우가 망했지’라는 독설까지 면전에서 묵묵히 들어야 했다.

“이런 일 때문에 그만두는 사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수모를 잘 참을 수 있어야 정상도 볼 수 있는 겁니다. 후배들에게 자주 해주는 얘기가 있습니다. 물은 섭씨 100도까지 끓으면 수증기가 되는데 80도에서 그만두면 아무것도 안 된다, 더 열심히 해보라구요. 경험상, 수모라는 것도 시간이 더 지나면 결국 수모를 준 상대방이 미안해 하며 사과하는 날이 옵니다. 그럴 땐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지요. 무엇이든 참고 기다리며 정성을 쏟다보면 반드시 그 보람이 돌아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과의 부대낌을 스스로 즐기지 못하면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세일즈를 하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난다. 점술가들은 누구랄 것없이 차를 인도하는 날짜까지 꼭 특정일, 특정시간을 ‘점지’받아 지정해주는 통에 세일즈맨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지난 대선 무렵 어느날에는 차 계약을 막 끝낸 어떤 고객으로부터 ‘좋아하는 후보가 누구냐’는 애꿎은 함정심문에 걸려들었다가 이튿날 바로 계약 취소 통보를 받은 일도 있다. 취소 당시 이유는 ‘집안 사정’이라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정치노선이 달라서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그는 정치와 종교에 관한 한 유구무언이 되었다.


자동차에 관한 한 해결사

자동차를 팔았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긴 여정의 시작이다. 사고면 사고, 고장이면 고장, 심지어 나중에 경쟁사의 차를 산 고객까지도 도움만 청하면 언제든 달려간다. 고객들끼리 ‘인수인계’에다 ‘대물림’까지 할만큼 그가 총애받는 이유 중 하나다.

“문제만 터지면 바로 저한테 연락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한번은 새벽 1시 반에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고 전화한 분도 있었어요. 음주운전에 걸렸는데 사실 제가 간다고 해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일단 달려갔지요. 경찰이 신분을 확인하더니 ‘가족도, 친구도 아니면서 어떻게 왔냐’고 의아해하더라구요.

그리고는 이미 모든 절차가 다 끝나서 사정을 봐달라고 해도 소용없으니 대신 온 김에 자기들 자동차 상담이나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결국 그날 경찰들한테 석대 팔고 왔습니다. 그 일 이후 농담처럼 ‘박 이사는 음주운전 때도 출동한다더라’는 소문까지 돌아서 제가 혼이 난 적도 있습니다.(웃음)”

더 거슬러 올라가, 차를 계약한 뒤 백일기도에 들어간 스님을 위해 번호판을 달고 매일 아침 차를 닦으며 백일을 기다려 스님을 감동시킨 일, 까다로운 의사를 고객으로 만나 출고공장까지 가서 일곱 시간 동안이나 마음에 드는 차를 바꿔가며 고르도록 했던 일, 미용실에서 오가는 정보를 얻기 위해 오후 서너시만 되면 찾아가 김밥을 돌렸던 일, 만나기 까다로운 사람일수록 날씨가 궂은 악천후에 찾아가 감동 끝에 일을 성사시킨 얘기 등은 업종을 불문하고 영업직 사원들 사이에서 성공지침처럼 떠도는 그의 이야기들이다.

옛날엔 가족의 원성도 많이 들었다. 어렸을 적 아들과 딸은 남들처럼 아빠, 엄마와 함께 서울대공원 한번 가 보는 게 소원이었다.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었던 박씨. 어느날 새벽 5시에 잠자는 가족들을 흔들어 깨워 서울대공원에 데려갔다. 7시쯤 문이 열리자마자 텅 빈 놀이시설에 들어가 두어 군데쯤 기구를 타고 놀다가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일중독자 아버지가 나름대로 짜 낸 고육지책이었다. 그렇게 자란 아들과 딸은 대학생이 된 지금 그의 열렬한 응원군으로 변해있다.


마라톤 마니아, 뛰면서도 세일즈?

시작은 돈 때문이었지만, 그렇다고 돈 때문에 일하는 것만은 아니다. 얼마 전에도 한 외국계 제약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그는 지금 돈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즐기는’ 중이다. 사실상 세일즈맨에게 은퇴란 없다. 그의 이달치 월급은 1,700만원. 수입으로도 억대연봉을 넘어선 지 벌써 여러 해 째다. 스스로 흘린 땀만큼 정직하게 댓가를 받는다는 것이 세일즈맨의 고충이면서 매력이다.

오로지 일밖에 모르는 그지만, 예외의 취미가 있다면 마라톤이다. 실제로 10㎞ 단축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상을 받은 일도 몇 번 된다. 여기서 막판 테스트. 과연 그가 마라톤대회에서 곱게 마라톤만 하고 왔을까? 당연, ‘천만에’. 마라톤이 끝난 뒤에도 그는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2-04 12:42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