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단속으로 초토화 2달만에 '새단장 신장개업'건재 과시삐끼 활개 "단속으로 신경안 써요", 일본인 윤락관광객도 증가

[르포] '퇴폐불패' 장안동 이발소타운
경찰 단속으로 초토화 2달만에 '새단장 신장개업'건재 과시
삐끼 활개 "단속으로 신경안 써요", 일본인 윤락관광객도 증가


‘XX남성휴게실 신장개업’, ‘XX이발소 신장개업’

장안동 ‘이발소 타운’이 명예 회복(?)에 나섰다. ‘신장개업’을 알리는 퇴폐 이발소가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열고 있는 것. 비 온 뒤 대나무순이 올라오는 듯 하다. 예전의 화려했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경찰의 ‘융단 폭격’으로 인해 초토화 됐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초 퇴폐 이발소를 상대로 집중 단속을 벌였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3,000여명의 업주가 형사입건 됐다. 불법적으로 운영되던 업소도 1,000 여개나 문을 닫았다.

장안동 역시 경찰의 그물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오히려 경찰의 집중 표적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장안동에는 수 십 여개의 이발소가 장안평 전철역을 중심으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 특히 장안평역에서 장안2동 먹자골목 사이 대로변에는 한집 건너 이발소가 자리를 잡고 있을 정도로 인근의 명물이었다.

당시 경찰의 단속으로 상당수의 업주는 이발소 문을 닫아야 했다. 이 곳에서 만난 한 이발소 관계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밀실의 위치까지도 파악하고 있었다”며 “그나마 단속을 모면한 업주들도 몸을 사려 사실상 문을 닫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토로했다.


불야성 이룬 이발소 타운

경찰 단속으로 거의 죽은(?) 것 같던 이 곳은 그러나 두 달여가 흐른 지금 또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훤히 불을 밝히고 있다. 물론 매출이 예년만큼은 아니지만 새로 문을 여는 업소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이전의 명성을 거의 회복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경찰 눈치를 보며 몸을 움츠렸던 얼마 전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다.

취재진은 직접 이 곳을 다시 찾아가 봤다. 밤 11시 경. 장안평역을 따라 수 십 여개의 이발소가 화려한 네온사인을 밝힌 채 지나가는 취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추운 날씨 때문에 행인은 많지 않았지만 ‘남성 휴게소’라 적힌 이발소 문으로 쉴새 없이 남성들이 드나든다.

대로변에는 서있는 호객꾼(일명 삐끼)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잡느라 분주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호객꾼은 “이제 경찰 단속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집중단속이 있고 나면 한동안은 조용해지기 때문이다. 신장개업을 내건 업소들도 ‘바지 사장’으로 대치됐을 뿐 사실상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호객꾼이 안내하는 이발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30여평 남짓한 이발소 안은 희미한 조명만 켜져 있어 옆 사람의 형체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계단 아래에서는 한 직원이 CCTV를 통해 바깥을 감시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이발소에 CCTV가 설치돼 있다”며 “이곳에서 경찰이 오는지를 미리 파악해 알려주니까 걱정할 것 없다”며 손님을 안심시킨다.

안으로 들어가자 커튼이 처진 방으로 안내됐다. 방안에는 이발소에서 사용하는 의자가 설치돼 있다. 잠시 후 호출을 받은 마사지걸이 안으로 들어왔다. 옷이라고 해 봤자 손바닥만한 천으로 중요 부위를 가린 게 전부다. 30분 정도의 안마가 끝나자 곧바로 밀실로 안내된다.

밀실은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평소에는 벽으로 가려져 있다가 리모콘을 누르면 열리게 된다. 때문에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해도 밀실 위치를 알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밀실 내부는 증기탕과 비슷하게 짜여져 있다. 7~8개의 방이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다. 방안에는 몸을 씻을 수 있도록 샤워시설과 간이 침대가 설치돼 있다. 마사지걸들은 이곳에서 손님의 온몸 구석구석을 씻어준다. 샤워가 끝나면 옆에 마련된 간이침대로 옮겨 2차(?)를 가진다.


마사지걸, 간단한 일어는 기본

‘딸기’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한 여종업원에 따르면 요즘은 일본 관광객도 자주 찾는다. 경찰 단속으로 인해 좀 뜸해지기는 했지만 두 달 전만 해도 열 명 중 한 명 꼴로 일본인 손님이 찾아왔다.

때문에 일본인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일어 회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따로 학원을 다니며 배우지는 않고 업소로부터 간단한 회화를 교육받고 있다”며 “일본 손님들의 대부분은 여행사에서 소개를 받았는지 단체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일본인 남성 관광객은 78만6,000여명. 이중 30% 정도가 윤락을 목적으로 입국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특히 장안동 ‘이발소 타운’의 경우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에 게재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 단체관광을 안내하는 한국인 가이드에 의해 단체로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업주들은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해 수익도 올리고 외화도 벌고 일석이조 아니겠냐”고 말한다.

인근의 한 업주는 “요즘 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는 일본 관광객이 매출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며 “생각 같아서는 일본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를 따로 고용하고 싶은 심정이다”고 털어놓았다.

시계 바늘이 새벽 두시를 넘기자 장안동은 더 활기에 넘치는 듯 하다. 술이 얼큰하게 된 직장인 남성들이 단체로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택시가 멈춰 서자 서너 명의 호객꾼이 이들을 둘러싼다.

한동안 잠잠했던 장안동 이발소 타운이 급속히 활성화하고 있지만 경찰은 단속에 어려움만을 호소할 뿐 아직 뚜렷한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인근 순찰대의 한 관계자는 “실제 경찰이 나서서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며 “윤락 신고가 접수되지 않는 한 단속이 어렵고, 출동했다고 해도 윤락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헛수고”라고 토로했다.

잠깐 숨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에만 500개의 퇴폐 이발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이 수치는 관할 구청에 신고를 하고 영업을 하는 경우다. 신고를 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영업을 하는 업소까지 감안한다면 그 수는 훨씬 상회하게 된다.

사실 경찰과 퇴폐 업소간의 '신경전'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경찰은 정기적으로 장안동 이발소타운을 상대로 단속을 벌여왔다. 그러나 효과는 그 때뿐이다. 단속이 끝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왜 이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행정규제 완화가 퇴폐 이발소의 난립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예전에는 이발소 개업이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였다. 그러나 지난 2000년 8월 공중위생법이 폐지되면서 관련 처분 기준이 애매해 졌다. 윤락행위가 적발되지 않고서는 처벌 자체가 어렵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인근 업주들 사이에서는 "단속이 있을 때만 몸을 사리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 더군다나 업주가 구속된다 해도 다른 '바지 사장'을 내세울 경우 얼마든지 영업이 가능하다."아무리 단속을 해도 퇴폐 이발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한 업주의 말은 상황이 어느 정도 인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대목이다.

사정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대만의 경우처럼 '공인제'를 실시하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만의 경우 이발청이 있어 정부의 공인 하에 성인 전용 이발소가 운영되고 있다"며 "무조건 단속하기보다는 일정한 구역을 정해 풀어놓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내 정서상 이 같은 법안의 도입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여성단체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 2003-12-04 14:42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