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아카데미즘을 위한 행보

[재즈 프레소] 한국재즈음악학회 설립한 김영수
재즈 아카데미즘을 위한 행보

연주 활동으로도, 강의로도 그는 어딘가 늘 비어 있는 듯 했다. 요컨대 그는 용량이 컸던 것이다. 이제 그 허전함을 메꾸기로 했다. 그것은 못다 실현한 자신의 본령을 찾는 길이거니와 들쭉날쭉한 한국 재즈의 지반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동아방송대 영상음악과 학과장 김영수(40)가 ‘한국재즈음악학회(Korea Jazz Music AssociationㆍKJMA)’를 만들었다. 한국 재즈의 자기 반성이자 업그레이드다. 11월 21일, 문화일보홀에서 만원 사례를 빚으며 창립 연주회를 열면서 바깥 세상과 낯을 텄다. 웬만한 재즈팬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그의 정통 재즈 기타 연주가 마지막을 장식했던 2시간 동안의 콘서트였다.

당시 그 무대에 출연했던 13명의 뮤지션은 학회의 회원이자 여러 대학에서 재즈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대에 오른 작품들의 작곡 겸 연주자인 셈이다. “이제는 재즈를 우리의 시각으로 구체화해 낼 때가 됐어요. 재즈를 연구하자는 거죠.” 그날 무대에 섰던 뮤지션을 포함, KJMA는 모두 25명의 교수급 뮤지션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지금까지 두 차례 가졌던 정기 세미나는 모임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즉흥 연주에 관한 교수법 등 실제 재즈 커리큘럼에 관한 연구나, 재즈에 있어서 청음의 중요성 등 재즈를 심도 있게 접근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 펼쳤던 강의는 이 모임의 학구적 면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때마다 평균 30여명의 관객이 모여 그 특별 세미나를 들었던 강남구 도곡동의 ‘재즈 스테이지’가 바로 이들의 고향이다.

회원 1인당 100여만원씩을 갹출해 7월에 80여명까지 들어 올 수 있게 만들어 문을 연 이 곳은 원래 지하 창고로 사용되던 데였다. 자신의 재즈 연주가 젊은 부르주아들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던 실력 있는 연주자들에게 이 곳은 내면의 불씨를 피워 올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최소한 수만원의 음식을 시키지 않고서는 음악을 듣기 힘든 데가 소위 잘 나가는 재즈 클럽이다. 그러나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중고 그랜드 피아노, 드럼 등에서는 장삿속을 벗어 낸 진짜 재즈가 흘러 나왔다. 이번 창립 연주회는 그들이 모여 갈고 닦은 결과였다.

재즈 뮤지션치고는 별스럽다 싶은 경력이 현재의 그를 어느 정도는 설명해 준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82학번) 출신인 그는 진정한 자유의 통로를 재즈에서 발견하고, 재즈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갔다. 독일, 네델란드, 스위스 등지에서 5년 동안 재즈를 공부한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는 LA로 건너 가 3년 동안 현지 클럽에서 각광 받았다. ‘정통’으로 자임할 만한 이력이다.

최근 ‘제 6회 상하이 아시아 음악제’의 심사 위원으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참석하고 왔다. 대회가 끝난 후 홍콩 재즈협회장의 안내로 들렀던 곳이 ‘코튼 클럽’, ‘Jz’ 등 그 곳의 대표적 재즈 클럽이었다.

“상당히 고가의 입장료였지만 모두 만원 사례였고, 청중이 경청하는 자세가 뭣보다 인상적이었어요. 재즈를 문화적 상징으로 받아 들이는 풍토 덕이라고 봐요.” 당시 서양 손님의 비율은 약 3할이었다. 그 모습을 접하니, 그의 뇌리에는 자연스럽게도 최근의 기억 하나가 솟아 올랐다.

“서울의 한 고급 재즈 클럽이었는데, 어떤 손님이 식사하는 데 방해되니 조용한 것으로 연주해 달라고 하더군요. 연주 도중에 ‘건배’ 외침이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재즈 클럽이 이렇듯 화려한 치장으로 장식된 데에는 저 같은 거품에 영합하는 탓이란 지적이다.

현재 KJMA의 홈 페이지(http://kjma.or.kr)는 나날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세미나 내용을 묶어, 1년쯤 지나면 단행본을 펴낼 생각도 갖고 있다.

현재 실용 음악이란 어정쩡한 이름으로 포장돼 몇몇 대학에서 가르쳐 지고 있는 재즈가 이른바 수도권 명문대의 정규 학과로 당당하게 인정 받을 때까지, 그는 내친 발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사실 그 모두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기도 하다. “6년째 교수로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생긴 매너리즘을 극복한다는 의미로 봐주세요.”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3-12-04 16:38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