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단순해지기


“혼자 가만히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나?” 필자가 재학 중인 대학원의 K 교수님이 뜬금없이 물었다. “….”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던 필자는 그냥 우두커니 K 교수님의 얼굴만 쳐다봤다. K 교수님이 또 다시 물었다. “보통 가만히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필자는 그제서야 이렇게 답했다.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요.” 스포츠심리학 강의 시간 때였다.

독자들께서 짐작한 대로 오늘 주제는 심리다. 골프 경기에서 맨 마지막의 싸움은 드라이버 샷도, 아이언샷도, 퍼팅도 아닌 기싸움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심리전이다. 흔히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마지막 순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리더보드 맨 꼭대기에 이름을 올려놓은 채 맞은 최종일 최종홀. 한 타 차이로 턱밑까지 쫓아 온 경쟁자가 있다면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선수라 하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큰 대회에서 잘 하다가 마지막에 흔들려 2위에 머물곤 하는 선수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극적인 순간에 긴장을 이기지 못하는 약한 심장 탓인 경우가 흔하다.

자 그러면 어떻게 훈련하면 떨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의 신체 상태는 알파파가 만들어져 나올 때 최적이라고 한다. 알파파는 뇌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 나오는 파장이다. 이 때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곧잘 떠오르고, 판단력과 순발력도 좋아진다.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이 상태는 거의 자극을 받지 않는 상태다. 이를테면 눈은 떠 있지만 마치 조는 듯한 상태다.

온 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선 마지막 순간, 승부는 알파파 상태를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스포츠 심리학에 나오는 알파파를 유지하는 방법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Cognitive Therapy’ (생각 바꾸기) 다. 보았지만 안 본 척, 들었지만 안 들은 척, 한마디로 신체의 감각 기관을 통해 무엇인가를 느꼈지만 마음으로는 안 느끼는 훈련이다.

‘Behavior Therapy’라는 것도 있다. 스스로 감정의 반복을 수없이 해보는 것이다. 평상시에 특정한 상황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으로는 느끼지 않는 법을 자꾸 연습해 봐야 한다.

이를테면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홀에서 자신이 티샷한 볼은 러프나 벙커에 빠지고, 상대는 페어웨이 한 가운데에 볼을 떨어뜨려 놓은 상상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홀을 잃을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겠지만,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훈련을 해 보는 것이다.

위 두 가지 말고, 필자가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조언하고픈 게 또 하나 있다. 필드에 나가면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티오프 시간이 너무 이르면 ‘아, 나는 새벽 골프는 잘 안되는데 어떡하지’,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았으니까 스윙 궤도를 평소보다 작게 하는 게 낫겠지’ 등등.

동반한 플레이어가 체구는 작으면서도 자신보다 비거리가 많으면 ‘나도 저 사람처럼 임팩트 동작을 해야 하나’, ‘스탠스를 좁게 서는 데, 나도 그렇게 해 볼까’ 등등. 그린 위에 올라가서도 마찬가지. ‘오늘은 느낌이 안 좋아. 꼭 지나갈 것 같아’, ‘나는 오른쪽이 높은 것 같은 데 캐디는 왜 왼쪽이 높다고 하지? 그냥 내 생각대로 쳐, 아니면….’ 등등.

이렇게 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다. 생각이 많으면 절대 동작은 부드럽게 나오지 않는다. 그냥 마음을 한번 놓아보라. 말이야 쉽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어쩌랴, 스코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을.

박나미


입력시간 : 2003-12-09 14:48


박나미 nami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