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신종 마누라 길들이기?


전에 나와 함께 일했던 여자 작가 하나는 늘 다이어트 중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리 뚱뚱한 것도 아닌데 본인은 ‘살아 살아 내 살들아, 몽땅 빠져나가라’를 외치곤 했다. 어쩌다 회식이라도 할 때면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불판을 애써 외면한 채 상추만 씹어대는 처절한 인내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나도 안 뚱뚱해. 보기에 딱 좋은데 뭘 그래.”

“아니요. 숨어있는 3인치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보세요, 이번엔 반드시 성공하고 말거예요.”

다이어트의 도사답게 시중에 떠도는 온갖 방법과 약 처방과 심지어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극단의 처치까지 꿰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성공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늘상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는데도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혹시 집에 돌아가서는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을 비관하며 폭식을 한 것은 아닐까 싶다.

나도 한번 나날이 늘어가는 뱃살을 빼본답시고 점심 한끼를 굶어본 적이 있었다. 단 두시간만에 포기했다. 식사시간을 넘기자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배고픔으로 인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는데 머리 속으로는 먹고 싶은, 먹어야 할 음식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심지어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은 현상마저 일어났다.

결국 회의 도중에 누군가 사온 떡볶이를 탱크처럼 돌진해서 몽땅 먹어버렸다.

단 한끼만 굶어도 이러한데 무려 열흘 동안 단식투쟁을 한 최병렬 대표를 보면서 나는 혀를 내둘렀다. 처음 최 대표가 대통령이 특검법안 거부권을 행사하자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한다고 했을 때 설마 했다. 그런데 단식 농성장에 ‘나라를 구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단식을 하는 날수가 늘어갈 때마다 정치적인 실리나 명분을 떠나 단식 그 자체가 주는 공포감을 느꼈다.

정신적인 수양을 위해 단식과 참선을 통해 고도의 경지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단식은 정말 힘든 고통이다. 정말이지 보통 모질고 독하지 않고서는 단식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단식을 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주장한 사람으로는 간디가 유명하다. 간디는 비폭력 무저항을 주장하며 평화로운 해결법을 찾기 위한 서로의 대화를 요구하며 장기간 단식에 몰입하곤 했다. 간디가 단식을 하면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며 화해를 했다. 최 대표가 열흘간의 단식을 끝냈을 때 비로소 ‘휴’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먹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 누군가를 만나서 처음 하는 인사말이 ‘식사하셨습니까?’ 일 정도이다. 그런 민족이 이제는 헐벗고 굶주린 세월을 거쳐 그래도 웬만큼 먹고 살만한 세상을 살고 있는데 단식투쟁은 사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냥 과식투쟁을 하는 게 세월의 흐름을 탈 줄 아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단식투쟁에 돌입한 최대표의 정서를 풍요로운 세대에서 출발한 장나라가 이해를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최 대표를 이해했다면 장나라가 최 대표의 단식농성장에 나타나 위문인사라도 했을 것이다.

최 대표가 단식을 끝냈다는 뉴스가 보도될 때 쯤 친구 하나가 전화를 걸어왔다.

“야, 나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

드디어 친구놈도 뱃살을 빼려고 다이어트와의 전쟁에 동참을 했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놈의 여편네가 잠자리를 거부 하잖아. 잠자리 거부권 행사라니….”

대통령을 따라 하는 친구 와이프의 거부권 행사와 야당 대표를 따라하는 친구의 단식투쟁,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입력시간 : 2003-12-0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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