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맛에 그릇 가득 사랑은 '덤'

[맛이 있는 집] 전북 완주 할머니 국수집
깔끔한 맛에 그릇 가득 사랑은 '덤'

낙엽도 거의 다 떨어져 내리고 늦가을의 정취가 한껏 느껴지던 지난달 말 화암사라는 절을 찾아 길을 나섰다. 혹자는 화엄사를 잘못 말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전북 완주군에 화암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알게 된 곳인데, 시를 읽으면서 언젠가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최근 안도현 시인을 인터뷰할 일이 있었는데 화암사 가는 길을 묻는 필자에게 약도를 그려가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실제로 가보니 약도 보다 중간 중간에 표지로 알려준 주유소나 면소재지 같은 것들이 더 도움이 되었다.

안도현 시인은 자신이 화암사를 찾는 길이면 한번씩 들러가는 곳이라며 국수집 한 곳을 가르쳐 주었다. 낡고 작은 가게에 국수 하나만 말아서 파는 곳인데 옛날 생각나는 그런 곳이라며 들러 보면 좋을 거라 했다.

시인은 그의 시 ‘화암사, 내사랑’에서 화암사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겠노라 했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좋은 곳을 발견했을 때, 웬만큼 괜찮은 곳일 경우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정말 좋은 곳일 경우, 그곳이 사람들 등쌀에 시달리지 않고 오래도록 그 모습을 지켜주었으면 싶은 마음에 숨기게 된다.

안도현 시인은 아마도 후자의 심정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 시가 발표된 지도 벌써 몇 년.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나서 시인이 숨기려 해도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노출된 상태다.

차는 절 아래 주차장에 세워두고 등산로와 흡사한 숲길을 20여분 가까이 걸어야 절 마당에 들어설 수 있다. 착하게 늙어 가는 오래된 절 집. 낙엽 떨어지는 소리, 옅은 바람에 풍경 흔들리는 소리, 산새 소리만 절 마당을 울릴 뿐, 그저 고요하다.

맑은 산사의 기운에 한참 취해 있다가 다시 숲길을 걸어 돌아 내려오는 길, 시인이 이곳을 숨기려 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화암사에서 나오는 길에 시인이 자주 들른다는 국수집을 찾을 수 있었다. 봉동 농협 앞에 자리한 아담한 국수집. 마침 장날이라 가게 앞 도로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상호는 <원조 할머니 국수집>.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며느리가 그 뒤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메뉴는 단 하나 국수. 하지만 그릇 크기에 따라 대, 중, 소로 나뉜다. 그릇을 보니 제일 작은 것이 일반 식당의 보통 국수 그릇 크기다.

육수는 주방 한쪽에서 하루종일 끓고 있고, 손님이 와서 주문을 하면 바로 국수를 삶아 낸다. 국수 삶는 것도 요령이 있을 텐데 얼마나 오랫동안 일을 한 것인지 시계를 볼 필요도 없이 딱 적당한 시간에 국수를 건져낸다.

더도 덜도 없이 잘 삶은 국수에 육수를 가득 붓고 송송 썬 파를 얹어 내준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양념장을 적당히 얹어 간을 맞춰 먹으면 된다. 멸치로 맛을 낸 육수는 시원하고 깔끔하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개운한 맛이다. 쫄깃한 면발도 일품. 국수에 손맛이 느껴지는 익은 김치를 얹어 먹어도 맛있다.

더 이상 단순하게 만들 수 없을 만큼 단순한 국수 한 그릇. 입맛도 다양해지고 매번 색다른 맛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요즘, 수수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는 이 국수 한 그릇에서 따뜻한 위로를 얻는다. 조금만 더 단순하게 살면 삶이 좀더 편안해 질 거라고 커다란 국수 그릇이 속삭이는 듯 하다.


▲ 메뉴 : 국수 3,500원(대), 3,000원(중), 2500(소) 063-261-2312


▲ 찾아가는 길 : 전주에서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17번 국도를 달리다가 봉동읍내로 들어가서 봉동농협을 찾는다. 농협 바로 맞은편에 원조 할머니 국수집이라는 작은 가게가 보인다.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2-10 11:13


김숙현 자유기고가 parara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