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손병두 전경련 상임고문


"돈 준기업만 '공적'매도 풍토 국가 경쟁력에 마이너스"
기술력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에 승부걸 때, 청년실업 심각한 문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재계의 입’을 자임(?)했던 손병두(61) 전경련 상임고문이 닫았던 입을 열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3월 부회장 직을 물러나 교육 일정 외에 일체 대외활동에 나서지 않았던 손 고문은 12월5일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는 기업들이 ‘주인 의식’을 상실하게 만드는 각종 규제와 사회 분위기가 주요 원인”이라며 “소득 2만 달러 달성 목표를 위해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할 기업들을 정치자금 수사를 통해 공적(公敵)으로 몰아세우는 등 기업의 사기를 꺾는 반(反) 기업 정서가 바뀌지 않는 한 더욱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초 대선을 앞두고 기업들이 ‘합법적인 자금이외에는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들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제 단체와 대학 강단에서 ‘시장경제 전도사’로서 60회 이상 출강에 나서고 있는 손 고문을 만나 현 정국을 진단해봤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수 있겠나"

- 정치자금 수사와 관련, 대기업 관계자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전경련은 자정결의를 했던 것으로 아는데.

“전경련 부회장을 역임하던 지난해 초 전경련은 합법적이지 않은 정치자금은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각 기업 스스로 자정을 결의하고 스스로 다짐하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자정 결의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의 입장에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의 다짐이 무의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다행히 이번 대선에선 과거보다는 제공 자금의 규모도 줄었고 기업들이 상당 부분 정치인들의 요구에 거절을 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엿보인다. 지금 겪고 있는 홍역은 재계가 보다 성숙해지고 깨끗해지기 위한 필연적 과정인 셈이다.”

- 정치자금 수사로 반(反)기업 정서가 심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기업은 정치자금의 공급자고, 정치인은 수요자의 입장이다. 수요가 줄지 않는 상황에서는 개혁이 안 된다. 기업은 허약하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요구해 오면 어떤 기업이라도 감히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당선 후 표적 사정’이라는 협박성 단어가 우리 정치문화의 현 주소인 셈이다. 누가 열심히 번 돈을 정치인에게 건네주고 싶겠는가. 정치자금의 수요를 줄이는 길만이 정치개혁에 이를 수 있는 첩경이다.

기업들도 회계처리가 투명해져 더 이상 과거처럼 비자금을 조성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돈 준 기업만 죄인 취급해 공적(公敵)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100% 깨끗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정치인들로부터 접대는 누가 받았는가. 유권자들 역시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정치문화는 정치인-유권자-기업 모두가 만든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 기업 설비투자의 감소와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고 청년실업과 30대 퇴출이 줄을 잇고 있다.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래 경제성장률이 세 번째로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작고한 직후인 80년에 한번, 외환위기 이후인 98년에 두 번째로, 금년이 세 번째다. 경제성장을 이끌어 가는 동력은 국내소비와 투자, 수출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 DJ 정부 당시 이뤄졌던 소비진작책이 수많은 신용불량자 양산과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초래했다. 부동산 가격급등 현상도 이에 따른 후유증이었다.

따라서 현재로선 소비에 기대를 걸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수출은 중국경제의 성장에 힘입어 양적 팽창을 가져오며 성장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반면 외국인 직접투자가 올들어 1999년의 10% 수준에도 못미치는 등 투자가 극도로 부진하다. 투자에 대한 인센티媛?없기 때문이다.

높은 법인세와 심각한 노조 갈등, 물류의 비효율성, 빈약한 의료ㆍ교육 환경 등 외국인들에게 매력이라고는 한 군데도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내국인 투자 역시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강성 노조, 중국보다 16~20배 비싼 인건비, 2배나 비싼 물류 비용에다 땅값은 10여배나 차이가 난다.

이뿐인가 금리도 1~2% 정도 높은 상황이다. 이미 심각한 산업공동화 시대를 맞고 있다. 저렴한 노동력에 의존하는 제조업은 중국의 벽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젠 기술력이 중심이 된 고부가가치 산업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런데 미래성장을 생각한다면 7%의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평균 실업률의 2배다. 대학 졸업자들이 산업사회에 편입돼 생산력을 높여야 하는데,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을 먹여 살리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경제성장을 이끌어가야 할 기업들이 ‘주인의식’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규제 과감한 철폐 절실

- 기업설비투자가 최악인 상황에서 기업으로서도 할 말이 많을 텐데.

“국내 기업들은 대한민국을 ‘기업규제 공화국’이라고 부를 정도다. 우리나라의 주요 경제정책을 보면 부동산 정책과 공정거래 기업규제 정책만이 눈에 띨 뿐이다. 기업들에 대한 규제는 왜 그리 많은지. 수도권 공장 증설 억제책과 지방의 균형 발전 등을 고려한 각양각색의 규제를 다 따지고 보면 기업의 국내 투자 의욕은 땅바닥을 길 만큼 곤두박질 치고 있다.

기업인의 ‘주인정신’이 실종될 수 밖에 없다.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주고 신 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각종 규제와 고비용 부담이 투자의욕을 꺾고 있는 셈이다.”

- 현 정부가 10년 내 소득 2만 달러 달성이라는 장기계획을 발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8ㆍ15 경축사에서 10년 내 소득 2만 달러 달성을 위한 기초를 닦아 놓겠다고 비전을 제시한지 4개월이 지났다.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할 국정목표를 제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이를 위해 과연 얼마만큼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마련했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인 플랜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만 해도 수출전략회의를 통해 기업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알아내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실천의지를 보였다. 소득 2만 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국가의 주역인 기업활동을 위해 제도적 규제 완화를 실천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 산하에는 현재 너무나 많은 전문 위원회들이 뿔뿔이 나뉘어져 일관성 없이 운영되고 있다.

국정목표가 소득 2만 달러 달성에 있다면 무엇보다 대통령 직속의 ‘2만 달러 추진위원회’가 구성돼 각종 경제ㆍ사회 관련 위원회들을 통폐합, 한 곳에 힘을 몰아줘야 효율적인 국정운영이 이뤄질 수 있다. 동북아 물류중심 발전 전략까지도 소득 2만 달러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한 축이 될 수 있다. ‘2만 달러 추진위’가 주축이 돼 국정 운영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결집력을 강화하는 종합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 기업들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보다는 금융시장 불안과 대선자금 수사 등 경제 외적인 불확실성을 더 우려하고 있는데.

“정치자금 수사는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1년 이상 언제까지, 어느 선까지 수사가 이뤄져야 철저한 수사인지 지금으로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젠 여야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정치자금의 수요를 줄이고 제도를 개혁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누가 정치자금을 더 먹고 덜 먹고 가 중요한 게 아니다. 먹은 것은 다 마찬가지 아닌가. 이번 기회에 정치풍토를 바꾸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기업만 몰아쳐 기업인들의 사기와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대외 신인도를 추락시켜 기업활동에 장애를 주고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하는 상황은 더 이상 안 된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2-10 11:34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