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에버랜드 저가 CB 인수 의혹 고발사건 위법성 인정이건희 회장·재용씨 조사 방침, 삼성그룹 전방위 압박

삼성 겨눈 檢, 몸통 치나
검찰 에버랜드 저가 CB 인수 의혹 고발사건 위법성 인정
이건희 회장·재용씨 조사 방침, 삼성그룹 전방위 압박


검찰이 삼성의 심장부에 칼날을 겨눴다.

재계의 ‘성역’으로 일컬어져 온 삼성이 연말을 앞두고 검찰의 수사가 집중되면서 12월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수사의 강도는 ‘충격과 공포’의 효과를 노리는 강한 파괴력을 지녔다. 최근 삼성 계열사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수사협조를 위한 ‘경고용’ 칼날이었다면, 또 다른 칼끝은 그룹 오너를 향해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12월1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을 통한 변칙상속 고발사건의 위법성을 인정, 이건희 삼성회장과 장남 재용씨(삼성전자 상무)의 조사방침을 결정했다. 검찰이 정치자금 수사와 관련 11월24일 삼성전기를 전격 압수 수색한 뒤 1주일 만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림으로써 삼성 그룹에 대한 전면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지검 특수2부(채동욱 부장검사)는 1일 곽노현 방송대 교수 등 법학교수 43명의 에버랜드 CB 저가발행 고발사건과 관련 CB 발행을 담당했던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현 삼성석유화학 사장)과 박노빈 현 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이 회장과 재용씨 등 나머지 피고발자인 31명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거쳐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실로 나타난 '충격과 공포'

‘충격과 공포’는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다. 사실 삼성 구조조정본부는 한 달 전 11월에 접어들면서 서초동의 기상변화를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 검찰의 수사가 먹구름 마냥 서서히 삼성그룹 수뇌부를 향해 다가 올 것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부심해왔던 터다.

삼성 구조본은 LG 최고경영진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이번 대선자금 파문으로 이재용 상무에 대한 저가 CB 인수 의혹이 다시 불거질 것을 우려하며 각종 시나리오를 마련해 대책회의에 분주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시민단체의 고소, 고발로 인해 불거진 이재용 상무의 에버랜드 저가 CB 인수 의혹은 수사를 맡았던 서울지검 특수2부가 해당 삼성그룹 임원들에 대한 혐의를 일반 배임에서 50억원 이상의 배임혐의가 인정되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으로 한 단계 높이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소시효는 12월2일에서 향후 3년 간 더 연장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셈이다. 최근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재계 전체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검찰측은 이재용 상무에 대한 보충수사에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특히 대선자금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 측에서 서울지검 측에 삼성그룹이 이번 대선자금 수사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일 경우 ‘이재용 카드’를 꺼내 들어 ‘충격과 공포’의 압박 강도를 높이도록 암묵적인 협조 요청을 했을 가능성 마저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핵심 계열사 비자금과 그룹 오너의 약점을 동시에 건드림으로써 삼성그룹을 전방위로 압박해가는 모양새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은 삼성이 주주인 계열사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재용씨에게 막대한 이득을 몰아줘 경영권을 장악하도록 해준 수법이 삼성 해당 계열사 임원들의 배임혐의가 되는지 여부를 놓고 그 동안 3년이나 수사 소강상태를 보이며 심사 숙고해온 터다.

검찰은 하지만 에버랜드가 자금확보 등을 이유로 96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권 차입 등을 시도하지 않고 CB를 발행한 사실, 그리고 CB의 주식전환시 발행물량이 기존 주식의 167%에 달해 사모사채 인수자가 지배주주가 될 수 있었던 정황 등을 볼 때 사채 발행이 오너일가에 대한 편법상속을 위해 시도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에버랜드가 나중에 삼성생명 주식을 대량으로 인수, 삼성생명의 대주주가 된 사실 등을 고려할 때 삼성 구조본이 중심이 된 기획된 ‘연출’?아니었냐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 동안 새 정부 들어 삼성과의 밀월관계가 이어지면서 강력한 로비전에 더불어 삼성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해 실물경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검찰이 이 건과 관련 올해 말까지 수사를 마무리 짓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었다”며 “그러나 연말을 앞두고 검찰의 갑작스럽게 수사진행의 급피치를 올리는 것은 단지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협조의 선을 뛰어넘어 재계 전체를 겨냥한 무엇인가 함축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삼성 "여론의식한 기소" 반발

삼성은 압박해 오는 검찰의 수사에도 특유의 절제된 표정을 보이면서도 ‘에버랜드의 CB발행’ 건에 대해선 할말은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검찰의 기소와 관련 “삼성그룹은 무죄를 확신하며 모든 진실이 법정에서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 에버랜드는 1996년 10월 장기저리의 안정자금 확보 및 자본금 확충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고 CB발행 이외의 대안이 없어 발행했다” 며 “전환가격은 당시 법과 관행에 따라 적법하고도 적정하게 결정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이번 검찰의 기소결정은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로 오히려 일부 시민단체나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특히 “피의자를 분리 기소하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가혹한 결정으로 검찰 수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어떤 이의가 없으나 그렇다고 특정 사건에 한해 끝도 없이 계속 수사한다는 것은 수사를 받는 당사자들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분개했다.

검찰이 ‘삼성 에버랜드 CB발행’카드를 흔들며 수사의 압박수위를 높이는 것과 관련해 지금까지 비자금 수사에서 뚜렷한 정황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 이전에 삼성의 최고 핵심인사가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직접 만나 삼성의 2세 승계와 관련해 “잘 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100억원을 건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당시 삼성은 삼성 계열사에서 직접 정치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2,3차 하청업체로부터 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이 같은 방식은 혹시 세간에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총수에게 직접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또 삼성이 이번 검찰의 수사에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협력사가 ‘작전’을 했기 때문에 삼성과 직접 연결을 짓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삼성전기와 동양전자공업에 대해 사과상자로 50박스 정도의 각종 서류를 전격 압수했다. 여기에는 물품거래내역이 담긴 장부와 회계자료, 통장 등 회사자금거래와 관련된 대부분의 서류가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미 정황증거를 어느 정도 포착하고 있을 만큼 기획된 검찰의 수사임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기는 ‘e삼성’ 등 인터넷 기업 정리과정에서 이재용 상무의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압수수색이 그룹 오너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로 보여지는 등 수사의 진전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측과 검찰 주변에서는 과연 누가 정치자금과 관련해 삼성그룹의 제1차 소환대상자가 될 것인지, 또 언제가 그 기점이 될 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삼성으로서는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12월을 뛰어넘어 13월로 이어질 기세 여서, 이번 겨울은 ‘시련의 계절’이 될 전망이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2-10 13:11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