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영화, 그 흔적을 찾아서겨울 마곡사의 깊은 정취와 공산성 성곽 휘감아 도는 금강기행

[주말이 즐겁다] 공주 마곡사와 공산성
백제의 영화, 그 흔적을 찾아서
겨울 마곡사의 깊은 정취와 공산성 성곽 휘감아 도는 금강기행


금북정맥(錦北正脈) 줄기에 있는 차령(車嶺)은 조선시대에 한양과 호남지방을 잇는 ‘호남대로’에서 가장 큰 고개로, ‘영남대로’에 있던 백두대간의 큰 고개인 문경새재의 위상에 버금간다.

호서ㆍ호남의 선비나 장사꾼들이 이 고갯마루에서 아픈 다리를 쉬어갔고, 이괄의 난 때 공주로 피난했던 인조도, <춘향전>의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갈 때도 이 고개를 넘었다.

640년(선덕여왕 9)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마곡사(麻谷寺)는 차령을 넘나드는 길손들의 소망을 들어주던 절집. 봄 경치는 마곡사가 제일이고, 가을 경치는 갑사가 일품이라 해서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라는 말이 있지만, 겨울잠에 들어간 산수유와 왕벚나무 꽃눈이 침묵의 미소로 반기고, 늘 푸른 적송이 늠름하게 버티고 있는 동마곡(冬麻谷)의 정취도 빠지지 않는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절 앞을 흐르는 맑은 계류를 건너면 원나라 라마교 양식으로 지어진 5층석탑(보물 제799호),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인 강세황이 현판을 쓴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현판의 글씨가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의 것이라고 알려진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같은 보물이 반긴다.

또 영산전(보물 제800호)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남긴 글씨라 하니 현판 구경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경내의 향나무는 일제 강점기 때 김구(金九)선생이 이 절집에서 숨어 지냈던 일을 회상하며 심은 것이다.

현재 조계종 6교구 본사로서 동학사, 갑사 등 충청남도 70여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는 마곡사는 금북정맥의 지맥인 무성산(614m)과 국사봉(591m) 같은 산줄기가 어우러져 태극형을 이룬 명당터로 잘 알려져 있다. <정감록>이나 <택리지> 등의 옛 기록에선 피장처 10군데 중의 하나로 꼽힌다.

마곡사에서 마곡천, 유구천을 따라가면 금강을 끼고 자리잡은 천년고도 공주가 반긴다. 공주 시가지와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뛰어난 곳에 자리한 공산성(公山城 사적 12호)은 공주땅을 들렀을 때 꼭 살펴봐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공주 땅을 1,500년 넘게 지켜온 공산성의 겨울풍경도 아름답다.

공산성은 백제가 한성(漢城)에서 천도한 후 부여로 옮길 때까지인 웅진시대(475~538년)의 도성이었다.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한 이 성은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길이 2,660m인 성곽은 능선과 계곡을 따라 이어져있는데, 원래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초기에 석성으로 개축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역사적 사연 깊은 누정(樓亭)이 곳곳에 서있는 성을 한 바퀴 돌다보면 진하게 풍겨오는 백제의 옛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한강에서 고구려에 밀린 백제가 자리잡은 금강 자락의 공주는 비록 5대 63년이라는 짧은 동안에 수도로 삼았던 곳이지만, 북방의 고구려를 경계하며 국력을 재정비하고, 금강 물줄기를 통해 서해로 해서 대륙이나 일본 등과 교류도 할 수 있는 요건을 충족시켜주는 땅이었다.


금강과 어우러진 산성 풍광 좋아

서문(西門)으로 공산성에 들어섰을 때 금강과 어우러진 공산성을 먼저 보고프면 왼쪽 성벽을 밟으면 된다. 그러면 조선시대에 지은 만하정(挽河亭)에서 백제시대 연못터인 연지(蓮池)를 보고 영은사 오솔길을 돌아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산성에 머문 것을 기념하는 정자인 쌍수정(雙樹亭) 등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만하정 연못터는 당시 금강에 배를 대던 부두시설이라는 설도 있다. 성을 한 바퀴 도는 Ⅴ?1시간쯤 걸린다.

공주는 옛날엔 우리말로 ‘고마나루’ 혹은 ‘곰나루’라 부르고 한자로는 웅진(熊津) 웅주(熊州) 등으로 적었는데, 고려 초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지금의 공주(公州)가 되었다. 이렇듯 곰과 공주는 한 몸이라 할 수 있는데, 인간과 동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집착하던 곰에 얽힌 슬픈 사연이 연미산과 건너편의 곰나루에 얽혀 전해오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백제의 영화를 살펴볼 수 있는 서쪽 강변으로 10분쯤 가면 소나무 우거진 백사장에 곰나루가 나온다. 그곳엔 곰사당이라 불리는 웅신단이 있다. 30여년 전 곰나루 부근에서 발견한 ‘돌곰’을 모신 이 사당에선 곰과 공주와 금강의 관계, 더 나아가선 곰 토템을 가졌던 북방 민족의 후예인 백제인들의 옛 흔적을 되짚어볼 수 있다.

공산성 입장료는 어른 8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400원. 주차료 2,000원. 기타 궁금한 점은 공산성 관리사무소(041-856-0333)에 문의.


▲ 숙식 마곡사 입구 집단시설지구에 마곡산장(041-841-5632), 석수산장(041-841-6100) 등의 민박집이 있다. 사하촌의 식당들에선 인근 산자락에서 채취한 산채더덕정식을 별미로 내놓는다. 더덕구이를 곁들인 10가지쯤의 산채와 된장국까지 곁들여 푸짐하다.

공산성 앞의 공주문화원 근처에 있는 이학식당(041-855-2455)의 따로국밥은 공주 인근은 물론 서울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1940년대 공주장터를 오가던 5일장 상인들을 상대로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이곳 국밥 먹으려고 대전서 90리 길을 걸어오기도 했을 만큼 맛있는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1인분 5,000원.


▲ 교통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정안나들목→23번 국도(공주 방향)→1.5km→광정 삼거리(우회전)→604번 지방도→18km→마곡사→8km→사곡→32번 국도→14km→공산성.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3-12-10 18:34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