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치안을 담당하던 사무라이 집단과 그들의 무사정신

[시네마 타운] 신선조(新撰組)- 바람의 검
교토의 치안을 담당하던 사무라이 집단과 그들의 무사정신

올해 극장가에서 사무라이에 대한 향수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우선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은 비록 시대 배경은 현재이지만 총 대신에 칼을 손에 쥔 킬러의 복수를 다루면서 일본 칼과 사무라이에 대한 경배심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또 미국에서 개봉된 톰 크루즈 주연의 <마지막 사무라이>가 무사도(武士道)를 주제로 하고 있고,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된 기타노 타게시 감독의 <자토이치>는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로 잘 알려진 장님 사무라이를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 ‘사무라이 영화’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번성했었다. 마치 장르의 탄생, 번영, 쇠퇴의 일생을 다하듯 70년대를 지나면서 사라졌는데, 마치 미국 서부영화가 새롭게 재조명되거나 장르적 자기반영적(self-reflexive) 작품들이 등장하듯, 1990년대에 들어 나카노 히로유키의 <사무라이 픽션>(1998)이나, 세이베이 타소가레의 <황혼의 사무라이>(2002)등이 해외에까지 개봉되었다.


삶과 살인의 명분 차이: 두 명의 사무라이

‘신선조’란 일본을 700년간 통치했던 막부 말기(사무라이가 사라지기 전이기 때문에 많은 사무라이 영화들이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마지막 사무라이>의 배경도 동일하다.) 좀더 정확히 1863년부터 1868년까지 활동했던 마지막 무사 집단의 이름이다. 이들은 교토의 한 구석 미부에서 만들어져 수도의 치안을 담당했던 국가경찰조직에 해당한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시대 순에 따라 배열되어 있지는 않다. 1898년 도쿄, 다리를 절뚝거리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고 병원에 와서 의사가 간직하고 있는 사무라이의 사진을 보게 된다. 사케를 주고 받으며 사진의 인물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면서 할아버지의 회상과 의사의 회상이 교차되면서 사진 속 인물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이 둘의 인생이 조금은 느슨하게 펼쳐진다.

<신선조>의 포스터는 칼을 든 채 약간 허리를 굽히고 있는 무사의 뒷모습이 담겨있다. 주로 주인공의 얼굴이 강조되는 포스터가 가장 인지도가 높다고 판명되는 한국에서 이런 드문 포스터는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영화에 그 장면이 등장할 때서야 왜 그 샷이 포스터에 사용됐는지를 알게 되는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 뒷모습의 인물은 바로 사진의 주인공 요시무라 칸이치로(나카이 키이치)이다.

요시무라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사이토 하지메(할아버지)는 남부사투리로 수다스럽게 고향과 가족에 대해 얘기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골에서 검술을 가르쳤던 요시무라는 신선조에 입당하자마자 실력을 인정 받아 사범 자리에 앉게 되고, 사이토는 냉철한 무사와는 거리가 먼 요시무라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실패한다.

사이토와 요시무라는 계속해서 비교되는 언사와 행동으로 진정한 무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죽이기 위해서 산다”며 사이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살인적 충동과 욕구가 무사에 적합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반면, 요시무라는 “살기 위해서 살인을 한다”라며 고향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위해 계속 돈을 밝히고, 비굴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행동을 한다.

요시무라의 이런 무사 같지 않은 행동과 언사들은 사이토 뿐만이 아니라 관객에게도 그가 진정한 무사정신이 결여된, 실력은 있으나 지극히 순박한 촌사람으로서 비쳐지게 만든다.

하지만 내러티브는 서서히 요시무라가 마음이 따뜻한 진정한 무사라는 점을 사이토를 통해 그리고 칸이치로의 어릴 적 친구로 남부 번(에도시대 다이묘가 다스렸던 영지, 주민, 통치기구의 총칭)의 우두머리였던 오노 지로에몬(미야케 유지)의 아들(의사)의 회상을 통해 엮어나간다.


진정한 무사정신과 인간적인 남성의 완벽한 결합

요시무라는 과거 남부 번에서 존경 받는 스승이었고, 그에都?다른 무사보다 더 예리한 분석력과 지도력이 있고, 타인을 배려하고, 가족과 고향을 사랑한, 인간적인 의리의 인물이라는 사실이 그의 죽기 전 생애의 단편들로 드러난다. 천황세력이 일본을 장악하게 되면서 신선조는 내분에 휩싸이고 총과 대포를 앞세운 천황군대 에 맞서 검으로 싸우게 된다.

그 힘겨운 전투에서 요시무라는 돈을 마다하고 번을 나와 한번 저버린 의를 두 번을 저버릴 수 없다며 절대 물러서지 않는 무사정신을 보여준다. 포스터에서 등을 지고 있던 바로 그 모습은 요시무라가 검을 빼어들고 천황군대에 뛰어드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신선조의 이 마지막 전투라기보다는 그 이후이다. 온몸에 치명적 부상을 입고 친구 오노를 찾아가지만 오노는 무사의 수치라며 할복자살을 권유한다. 자살을 하려해도 기운이 없으면 안된다며 손수 주먹밥을 만들어 하인에게 가져다 주게 하지만, 요시무라는 굶주린 허기를 채우기보다는 고향의 쌀로 만든 주먹밥의 냄새를 맡으며 고향을 추억하고 눈물을 흘리며 아내와 자식에 대한 자신의 애정과 그리움을 토로한다.

<신선조>는 무사도가 주제라기 보다는 사무라이 같지 않았던 시골 출신의 한 무사에게서 진정한 무사정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전혀 아닐 것 같은 인물(underdog)’의 성공 혹은 인간승리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무라이 정신보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애정이 넘쳤던 가장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이다.

의리와 충성심으로 뭉친 무사이면서 한편으로는 한 남편과 아버지인 사무라이의 인간적인 면모에서 전해지는 감동은 달리 생각하면 칼싸움과 할복자살의 폭력적인 사무라이 영화의 특성이 휴먼 드라마와 결합하고 있다는 장르적 혼합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다.

또한 한국에서 조폭영화 붐이 가부장적 보수적 남성성에 대한 향수와 관련이 있었듯이, 요시무라는 일본의 사무라이 남성성에 대한 열망과 무사도 정신에 대한 향수 그리고 동시에 자애스러운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멜로드라마의 이상적 남성의 모습이 잘 혼합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철도원’을 쓴 아사다 지로의 소설이 원작인 <신선조>는 무사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무사로 살았던 한남성의 이야기가 눈물을 자극하는 센티멘탈한(혹은 모노노아와레 物のぁゎれ:적막하고 쓸쓸하여 마음에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일본의 정서를 표현하는 대표적 용어) 영화다.

시네마 단신
   

이재용 감독, 영국 영화계서 러브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이재용 감독이 영국 굴지의 영화제작사 '워킹타이틀'로부터 제인 오스틴 소설 <오만과 편견>의 연출 제안을 받았다.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어바웃 어 보이> 등 화제작들을 잇따라 만들어온 워킹타이틀은 <스캔들…> 개봉 직후 외지에 실린 이 영화의 평을 보고서 <스캔들…> 제작사 '봄'쪽에 이런 제안을 해왔다. 이 감독은 이와 관련, 최근 런던에서 워킹타이틀 관계자를 만나기도 했다.


美 선댄스영화제, 한국영화 4편 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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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2-1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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