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스런 언어의 예술

[재즈 프레소] 나윤선 새 앨범 'Down By Love'
호사스런 언어의 예술

어쩐지 상당히 정감 있게 다가 온다 싶었는데, 충분히 이유가 있었다. 나윤선의 새 앨범 ‘Down By Love’는 전작들에 비해 확연히 다른 질감이다. 소문난 화려한 보컬로 듣는 이를 압도하기 보다는 나지막이 말을 걸어 오듯 낮은 포복으로, 어느새 이만치 들어 와 있다.

제목에서 앨범의 전체적 분위기가 충분히 우러난다. 사랑 때문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연의 상처로 인해 가라 앉은 여인의 마음을 그린 곡들을 모았다. 그녀의 창법 역시 가라 앉았다. 자신만만한 스캣은 뒤로 숨고, 콜로라투라의 아리아를 듣는 듯 정제됐다. 색소폰보다는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악기 편성은 이번 작품은 이성에 호소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영어 등 3개 국어에 한국어 노래로 이뤄진 이번 3집 앨범은 노래란 결국 언어의 예술이라는 기본적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1995년 파리로 떠나 유럽 최초의 재즈 학교 CIM에 유학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 자연스런 결실이다. 유려한 발음 덕택에, 그의 재즈에서는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2000년 이래 현지에서 열린 각종 재즈 페스티벌에서 그녀의 정통 재즈는 현지의 고급스런 귀를 매료시켰다.

이번 앨범의 자연미는 철저히 수공업적인 작업 방식을 택한 결과이다. 마치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릿이 자기 집의 작은 녹음기로 취입해 만든 솔로 앨범 ‘Melody At Night With You’를 들었을 때와 같은 아늑함과 친밀감이 전편에 가득하다.

“지난 여름 한달 내내 올리비에 오드(기타리스트)의 집에서 녹음한 거죠.” 윤순나(프랑스에서는 ‘Youn Sun Nah’로 알려져 있다) 퀸텟의 리더로서 하는 말이다. 소편성 악단의 녹음은 하루나 이틀이면 끝나는 게 상례다. 스튜디오 대여료뿐 아니라, 순서를 기다리는 뮤지션 때문에 작업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편성을 바꿔서 녹음해 보는 등 실험은 다 해 보았다. 광고 음악계에서 잔뼈가 굵은 오드의 발랄한 감성이 한껏 빛을 발한 건 물론이다. 이번 타이틀 곡의 작자이기도 하다.

2년 전 프랑스에서 음악일을 하던 친구가 들려 줬던 ‘Into Dust’를 수록한 것을 큰 행복으로 여긴다. “기타로만 구축하는 몽환적이고 넉넉한 느낌이 좋아요.” 유일한 한국 곡 ‘아름다운 사람’에서는 그녀 특유의 청아한 감성은 더욱 빛나는 느낌이다.

“중고 시절 교회 다닐 때 대학생 오빠들이 즐겨 부르던 곡이예요.” 제작 당시 동료들은 “왜 분위기를 가라앉히느냐”며 말렸지만, 그녀는 1994년 김민기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주연인 선녀로 나왔던 인연을 소중히 하기로 했다.

그녀의 화려한 재즈 경력을 아는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의문을 갖게 된다. ‘왜 재즈쪽을 억눌렀나’라는. “정말 색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해 보고 싶었어요.” 에지 그녀는 재즈 스타일리스트란 익숙한 이미지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고 있다.

그녀는 머무르지 않는다. 재즈를 본령으로 하되, 자신을 재즈와 동격화시켜 두지는 않을 작정이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프랑스 친구의 제안으로 트립합 계열의 곡도 한 번 녹음해 보았다. “재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 재미스러움을 알기에 그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을 생각이다.

1년 내내 재즈 페스티벌이 있고 각지의 재즈 클럽이 자신에게 손을 뻗쳐 오는 프랑스에서의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내년 2월말까지는 프랑스에서 머무르기로 돼 있다. 자신의 그룹과 신보 레퍼터리를 위주로 공연해 나갈 생각이다. “일종의 프로모션 투어인 셈이죠.”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한상 미진한 심정이다. 국내 공연 기회가 돌아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서는 그는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 못 한 까닭이 가장 크다. 이제부터는 그녀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2004년 하반기쯤에는 지방 투어에 나서고 싶어요.” 한국의 재즈판에 불어 올 새 바람이 기대된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3-12-17 17:15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