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개혁정책 표류, 경제팀 바꿔야"
참여정부 정체성도 실종, 카드사 해법은 금융시장 안정에 둬야

“사람이 문제다. 경제 비전문가인 노무현 대통령이 펼치는 경제 개혁의 성공 여부는 주변의 사람이 누구냐에 달려 있다. 현재 경제팀은 즉각 개편돼야 한다. 노 대통령이 경제 개혁의 의지를 여전히 갖고 있다면 이에 부합하는 정책 목표와 정책 관료의 조합을 실현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래 올 들어 경제ㆍ사회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커진 단체를 꼽는다면 단연 참여연대를 꼽을 수 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를 위해 소액주주 운동 등 기업 지배 구조 개선 및 재벌 개혁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상조(41ㆍ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만나 현 경제상황에 대해 진단해 봤다.


경제관료들 정책혼선 책임져야

- 참여정부의 전반적인 경제 개혁 조치에 대해 평가한다면.

“대외적인 경제 환경과 대미 관계, 대 국회관계 등 제약 조건 등을 고려할 때 참여 정부는 역대 최약체 정부다. 그러나 동북아 경제 허브 구상 등 경제 정책 목표에서는 어느 혁명 정부 보다 강력한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최약체 정부가 최강의 강령을 내놓은 모순을 안고 있다.

혁명적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참여정부의 시스템, 특히 경제팀이 얼마나 이를 뒷받침할 만큼 효과적으로 짜여 있는지 구성 면면을 따져 보면 한 마디로 비관적이다. 정책을 이끌어 가는 관료 대다수가 반(反) 개혁적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다 보니 개혁을 앞세운 참여정부의 정체성이 실종되고 표류하고 있다.

동북아 경제 허브 구상도 일관성 있고 짜임새 있는 실천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재벌ㆍ금융 개혁 역시 뒷걸음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 정책 기조가 일방적 ‘안정’으로 회귀한다면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것과 뭐가 다를 바 있겠는가. 정부의 개혁성을 살리기 위해선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 참여연대가 개각을 통해 교체돼야 할 각료 명단 1순위로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꼽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인적쇄신을 통해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할 시점이다. 재신임 발언 이후 일고 있는 개혁과 국정 쇄신 요구의 첫출발은 이를 이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의 교체로부터 이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진표 경제부총리 등 현 경제 각료들은 비전부재와 개혁 후퇴, 정책 혼선의 책임을 져야한다.

‘이라크 파병이 경제에 도움이 되며 더 이상의 부동산 대책은 사회주의적이고, 이제 막 수면위로 올라왔을 뿐인 LG카드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고 말하는 경제 수장으로부터 과연 비전과 개혁성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재벌ㆍ금융 등에 걸친 시장의 개혁 조치에 미온적인 김 부총리는 개혁 의지 부재, 신용카드사 대책 부실, 기업의 불법 행위 수사 방해, 부동산 대책 실기, 법인세 인하 발언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

- 노 대통령은 최근 김 부총리 유임을 통해 현재 경제팀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잘 받아 들이지 않는 노 대통령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 준 일례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경제 위기를 경제팀 교체 등을 통해 근원적으로 해결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자신감 마저 결여됐기 때문이다.

특히 LG카드 부도 사태로 다시 촉발된 카드 대란이 연말ㆍ연초에 재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칙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다시 관치 금융으로 해결하겠다는 신호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는 노 대통령의 상상력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카드사 경영부실은 지배 대주주 책임

- 360만 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 양산과 신용카드사 부채 30조원 등 금융부실에 따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데.

“신용카드사로 인한 금융 위기는 하루 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현재로선 뾰족한 묘책도 없다. 원칙에 충실한 해법을 강구하는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최종 대부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능에도 원칙이 있다. 개별 기업의 운명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금융 시장 안정에 목적을 둬야 한다.

지불 불능(insolvency)상태의 부실 금융 기관을 지원해 오히려 부실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되며,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절차를 준수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정부가 카드사 문제 해결을 위해 보인 3ㆍ17 대책에 이어 4ㆍ3 대책, 그리고 LG카드 사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봤을 때, 시장의 불확실성 제거는 커녕 최종 대부자의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카드사들을 모두 다 살리기 위해 카드사 마다의 차별성을 고려하지 않은 ‘올 인 서바이블’ 대책을 펼친 것이 첫번째 실수다. 유동성 위기를 맞은 회사나 지불 불능 상태의 회사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살리는 데에만 급급했다. 또 카드사 경영 부실에 대해 지배 대주주들에게 엄격한 제재 조치를 취하거나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도 못한 것이 두 번째 실패다. 단지 각 카드사에 대한 증자 압력을 통해 자본 확충만을 했을 뿐이다. 부실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법령에 근거한 시정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 당국이 채권 금융 기관의 자율적 판단을 제약하는 시장 개입을 통해 적법 절차를 무시한 관치 금융을 펼친 것이다. 이 같은 대책은 ‘돈 갚는 사람만 바보로 취급 받게 하는’ 모럴 해저드를 심화 시켰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만을 증폭시킨 셈이다.”

- 감사원이 신용카드 정책 부실에 대한 특별 감사에 착수했다. 카드사 건전성 감독 시스템의 부실 등을 포함해 문제의 핵심은 과연 무엇이라고 보는가.

“카드 산업의 부실은 한국 경제가 감내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사회적 비용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융 산업 전체가 부실 덩어리로 전락하는 현상황에서 정부 당국은 정책과 감독 책임에 대한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정부가 재벌 체제의 습성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관료들의 사고 방식이 재벌 체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정부 당국이 스스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상태에서 카드사 경영진과 신용불량자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수 있겠는가.

지금으론 경제 관료들도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한계 상황에 이른 카드사 2,3곳의 문을 닫게 할 만큼 소신도 없어 보인다. 어떻게 해서든 총선이 끝나는 내년 1ㆍ4분기까지 금융 시장의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끌고 가는 데만 급급하다. 대통령도 이에 대한 중대한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 정치적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법정 절차에 충실한 조치를 취해 가는 것만이 관치 금융에 대한 시비를 막고 금융 구조 조정을 원칙대로 해 나가는 첩경이다.”


대선자금 수사는 혁명적 사례

- 최근 벌어지고 있는 기업들의 정치 자금 수사에 대한 참여연대의 견해는.

“안대희 중수부장은 참여연대가 지난 8년간 이뤄온 성과를 단 한 달 만에 달성했다고 평하고 싶다. 역사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환구조를 갖고 있지만 안 부장은 역사가 더 이상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최후의 저지선을 형사적 판례로 남겼다. 이번 수사는 기존의 수사 관행을 깨고 새로운 사법적 규율을 세운 혁명적인 사례로 평가 받을 만 하다.

SK 비자금 수사에서 드러났듯 기업들의 비자금 규모는 정치인에 제공된 불법 정치 자금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SK가 조성한 비자금 규모는 무려 2,392억원에 달하지만, 정치자금은 겨우 100억원 정도만 드러났을 뿐이다. 사실 정치자금은 수면 위로 나온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기업경영에서의 이 같은 불법ㆍ부당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참여연대가 기업의 파수꾼으로 더욱 눈을 부릅떠야 할 때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 2003-12-18 11:16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