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 '친일카페'도 넘은 역사 왜곡·부정, 안티 친일카페와 힘겨루기도

[르포] 가치없는 '엽기' 일본찬양
사이버 공간 '친일카페'
도 넘은 역사 왜곡·부정, 안티 친일카페와 힘겨루기도


“일제시대는 우리민족의 축복이었죠.”

‘친일 카페’가 네티즌 몰이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관련 카페가 잇따라 문을 여는 등 사이버 공간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현재 파악된 카페만 10여 곳이 넘는다. 카페 이름을 보면 ‘더러운 조센징’ ‘조센 인민 반자이(만세)’ ‘한국 멸망해라’ 등 엽기 일색이다.

현재 누가, 어떤 이유로 이 같은 카페를 개설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이 같은 카페들을 통해 ‘위안부는 합법적인 공창제도’ ‘독립운동은 빨갱이와 대일본제국의 대결’과 같은 말도 안되는 낭설들이 아무런 제재없이 유포되고 있는 까닭이다.

사실 친일 카페가 논란이 됐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이 발생한 지난 2월에도 친일 카페를 사이에 두고 네티즌들이 설전을 벌였다. 전 국민적인 추모 물결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부 친일카페가 ‘잘된 일’이라는 글을 게재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신을 섬기듯 일본인을 섬겨라’, ‘(축)대구 지하철 참사를 기념하며’ 등의 이름으로 개설된 카페에는 “사망자 가운데 일본인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대구 사고로 조선인이 열등하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내용이 올라 네티즌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때부터 ‘친일 카페 vs 안티 친일카페’의 힘겨루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뿌리마저 흔들고 있다

최근의 특징은 친일 카페가 단순한 비방이나 일본 찬양 차원을 넘고 있다는 점이다. 반만년 이어온 역사를 부정하는 등 우리 역사의 뿌리마저 뒤흔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취재진은 포털 사이트인 다음(daum)에 개설된 한 친일 카페를 찾았다. 이 카페는 지난해 8월 개설된 곳으로 현재 4,0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카페에 접속하자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이 즐비하다.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반자이’ 등은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종군위안부가 합법적이라는 내용도 게재돼 있다. 이 글을 올린 네티즌은 “종군위안부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창과 마찬가지다”며 “정당한 보수를 주고 노동을 시킨 만큼 일본의 잘못은 없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친일 카페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는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을 ‘제국주의 대 빨갱이의 대결’로 묘사하고 있었다. 요컨대 일제 치하 당시 독립운동에 뛰어든 사람은 소수 중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조선의 독립운동은 ‘일본 vs 독립운동가’가 아닌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빨갱이 vs 황군’의 대결이라는 게 글을 쓴 네티즌의 논리다.

명성황후가 ‘애국의 화신’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글도 눈에 띈다. 문제의 글을 올린 네티즌은 “민비는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부정적인 인물이다”고 전제한 뒤, “일본이 보낸 자객에 의해 민비가 살해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역사의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었겠는냐”고 주장했다.

심지어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역사의 근본을 뒤흔드는 글들도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요컨대 ‘단군은 우리의 조상이 아니다’, ‘고구려는 우리의 선조가 아니라 일본의 왕조다’, ‘백제와 신라는 대일본제국의 속국이었다’는 등이 대표적인 사례. 문제의 글 밑으로는 ‘맞습니다’, ‘한국은 일본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 같은 카페들은 정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 일정한 절차를 두고 있다. 운영자가 올려놓은 질문에 답해 기준을 통과해야만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질문은 대략 10~16가지. 카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과 한국간 전쟁이 나면 어느쪽 편을 들겠는가’, ‘조센징한테 당한 적이 있는가’, ‘안톤 오노 선생을 존경하는가’ 등의 질문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해서 질문의 답변에 따라 회원의 신분이 결정된다.


대부분 욕설ㆍ비방으로 도배

도대체 어떻게 이 같은 카페가 버젓이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일까. 취재진은 우선 해당 카페의 운영자들과의 접촉을 위해 이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이었다. 여러차례의 요청 끝에 한 카페 운영자와 어렵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 운영자는 그러나 맹목적인 일본 찬양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에 대한 좋지않은 감정에만 젖어있어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카페를 개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일부 카페의 경우 우리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측면에서 글을 게재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카페들은 그야 말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욕설과 비방으로 게시판이 물들고 있다는 게 네티즌들의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자 네티즌들로부터 원성이 잇따르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 관련 민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정통윤 한명훈 팀장은 “정확한 통계가 나와있지는 않지만 친일 카페의 폐해를 지적하는 민원이 여러 루트를 통해 접수되고 있다”며 “그러나 시정을 요구할 뚜렷한 법적 권한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한 팀장은 “지난해 6월 제기된 헌법소원으로 인해 정통윤의 시정 요구 기능이 사실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이로 인해 친일, 친미 사이트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10여 개의 관련 카페가 개설된 포털 사이트 다음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 다음의 권경아 PR플래너는 “사용자 신고와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신고를 받고 있지만 판단 근거가 애매한 게 사실이다”며 “미풍양속에 현저히 위배되지 않는 한 폐쇄가 어렵기 때문에 정통윤의 판단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친일 논쟁 네티즌 '전면전'으로 확대
   

친일 카페와 관련, 현재 사이버 공간에서의 전쟁이 치열하다. 친일 카페가 개설되면 곧바로 안티 사이트가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 카페로 위장 잠입해 훼방을 놓기도 한다.

실제 최근 한 친일 카페의 경우 얼마 전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한 회원이 광적으로 친일 행세를 해 운영자를 시켜놨더니 카페의 글을 몽땅 지워버리고, 회원들을 강제 탈퇴시켜 버린 것.

이후 양측의 갈등은 극에 달한 상태다. 상대 카페에 가입해 비방글을 남기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카페가 해킹을 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 2003-12-23 17:17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