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프레소] 정재열과 벤 볼의 본격 하드 밥 앨범 '인 로'


브라더 인 로(brother-in-law)는 남편 또는 아내의 형제이고, 파더 인 로(father-in-law)는 장인이나 시부를 지칭하는 단어다. 다시 말해 ‘인 로’라는 단어는 사돈지간을 뜻한다. 이 말이 재즈 앨범의 타이틀로 등장했다.

정재열(35ㆍ기타)과 벤 볼(31ㆍ드럼). 모두 백제예술대 실용음악과 교수이자, 둘도 없는 재즈 파트너이다. 둘이 바로 사돈이다. 최근 발표한 5집 앨범 ‘디 인 로(The In-Law)’는 둘의 음악적ㆍ인간적 친분을 압축한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물론 그 같은 연유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본격 하드 밥을 표방한 앨범이라는 사실이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앨범에 수록된 5곡 모두는 일반적 재즈팬이라면 낯설고, 얼치기 재즈팬이라면 복잡ㆍ난해하다. 재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정나미가 둑 떨어지겠지만, 재즈를 제법 안다는 사람들에겐 복음처럼 들릴 것이다. 한국 재즈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에, 그들에겐 두 사람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리라.

모두 5곡이 수록된 앨범은 찰리 파커를 연상케 하는 듯한 속주가 아니면, 비정상적일 정도로 느릿느릿한 템포에 얹혀 두 사람의 연주력을 과시한다.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를 연상케 하는 록적인 곡 ‘For Little Tim’은 공격적이고, 불협화적 화성을 주로 구사한 ‘Free-gian’에는 그에 걸맞는 즉흥적 연주가 강한 여운을 남긴다..

1995년 두 사람이 한국의 재즈계에 출발을 알렸을 당시, 그들의 주장과 음악은 모두가 낯설었다. 이전에는 이름도 듣기 힘들었던 ‘하드 밥(hard bop)’을 기치로 출발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비밥, 퓨전, 애시드 재즈가 주류를 이뤘던 한국의 재즈에 한 줄기 신선한 파격이었다.

여기서 잠깐. 1950년대에 태동했으나, 한국에는 최근에야 모습을 드러낸 하드 밥(hard bop)이란 어떤 재즈인지 알아 두자. 대학에서 정규 클래식을 공부했던 까닭에 재즈 역시 해 대단히 클래식적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 존 루이스 등의 쿨(cool) 재즈가 한쪽편에서 태동하고 있었다. 거기에 반기를 들고 생겨난 재즈가 하드 밥이다.

‘하드’란 말이 음악적 의미로 쓰일 때는 악보대로의 연주보다는 즉흥에 치중한다는 뜻으로 바뀐다. 즉, 정교한 화성이나 클래식적 악상보다는 펑크와 소울 등 흑인 본연의 격렬함과 즉흥성에 초점을 맞추자는 재즈다. 하드 밥은 재즈의 부흥기였던 1980년대 이후에는 덱스터 고든, 프랭크 모건 등의 뛰어난 주자들에 의해 다시 주목 받고 있는 장르다. 연주자를 위한 재즈, 하드 밥이 한국에 들어 온 것이 바로 이들의 활동 덕이다.

토론토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정재열이 재즈를 정식으로 배우고 싶어 1990년 험버 칼리지로 옮겼던 것이 두 사람 인연의 시작이다. 음악적으로 지향점이 비슷했던 둘의 친분이 새로운 계기로 접어 든 것은 먼저 귀국한 정재열이 1995년 볼을 초청하면서 부터였다.

2년여 동안 한집에 살며 임인건(피아노) 등과 ‘야타 밴드’를 만들어 클럽을 중심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던 두 사람이 사돈지간으로 발전한 것은 정재열의 외사촌 여동생 때문이었다.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 반한 볼이 집에까지 찾아가는 등 적극 구애를 펼쳤고, 결국 두 사람은 1997년 결혼에 이르렀다.

변한 것은 볼이다. 그는 이제 거의 한국사람이다. 보신탕집에 들어 가 유창한 한국말로 보신탕과 추어탕, 삼겹살에 생마늘을 뚝딱 해치우고는 이를 쑤시고 다닐 정도다.

일반의 귀에는 난해한 재즈를 연주하지만 심성은 한국인이 다 된 것이다. 타악주자로서 사물놀이에 빠진 볼은 기회가 닿는다면 국악기를 적극 동원한 재즈 앨범을 만들 계획이다.

장병욱기자


입력시간 : 2003-12-24 15:44


장병욱기자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