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작가 육필원고·증여작품 등 총 144건, 623점 전시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장사익 씨등 300여명 찾아와 성황

지난달 21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태백산맥 문학관이 개관했다. 분단문학의 최대 문제작으로 손꼽히는 <태백산맥>은 조정래 작가가 1983년 현대문학에 연재해 6년 만에 완간한 대하소설.

태백산맥 문학관은 소설의 첫 장면 정화섭이 무당 소화를 만나기 위해 길을 가던 그 지점, 제석산 끝자락에 세워졌다. 보성군은 태백산맥 문학관을 시작으로 소설 속 현 부자집과 소화의 집, 주릿재와 철다리, 중도 방죽과 테마 공원으로 이어지는 문학 벨트를 건립할 계획이다.

◇ 국내 최대 작품 전시관

태백산맥 문학관은 소설의 주요 무대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4,359.6m 대지에 지상 2층으로 건립됐다. 작가의 육필원고와 증여 작품 등 총 144건, 623점의 전시물품을 보관한 국내 최대 규모의 작품 전시관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북향으로 지어진 건물은 대지보다 깊이 10m 아래에 터를 잡고 건물을 지어 올렸다.

문학관을 만든 건축가 김 원은 “조정래 선생에게 설계 제의를 받은 것이 2004년 11월 중순이었다. 소설이 그려낸 분단의 아픔은 산의 등 줄기를 잘라내는 아픔과 비견될 것이다. 이 건물은 우리의 아픈 이야기가 묻힌 땅 속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등줄기가 잘라지는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건물 외벽에는 이종상 화백이 제작한 길이 81m, 높이 8m의 대규모 벽화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이 들어섰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이 자연석 벽화는 오방색 돌을 활용해 백두대간과 지리산, 독도 등 우리 국토를 형상화했다. 오방색 돌 가운데 몇 점은 이종삼 화백이 지리산에서 직접 가져와 심은 것이다.

제 1전시실에는 소설 <태백산맥>의 탄생 과정과 소설 출간 이후 상황을 상세히 살펴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제 2전시실에는 작가의 방, 문학사랑방 등이 마련돼 작가정신을 살펴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1전시실에는 태백산맥 취재 자료가 눈에 띄는데 작가가 직접 그린 벌교읍내 약도와 지리산 약도, 꼼꼼하게 적은 취재 수첩과 메모가 전시되어 있다.

80년대 대표적인 한국의 정치경제학자였던 박현채 선생과 함께 지리산에서 찍은 사진과 박 선생이 알려준 빨치산 노래를 적은 원고, 토벌대의 빨치산 분포도도 공개했다. 태백산맥 집필 당시에 썼던 만년필과 파이프 담배, 찻잔과 함께 높게 쌓아 올린 육필 원고는 창작의 고통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밖에 ‘참패한 혁명의 현실적 대가는 곧 죽음이다. 소설은 산하에 널린 무수한 죽음 위에서 끝났다’로 시작되는, 당시 한국일보 김훈 기자가 쓴 <태백산맥> 탈고 관련 기사와 10권의 책을 쓰게 만든 단 2장의 작가 구성노트, 집필과정 누계표, 그리고 우익단체의 협박에 괴로운 심경을 토로한 2통의 유서도 볼 수 있다.

소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이 있었던 1948년 늦가을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제석산 자락에 자리 잡은 현부자네 제각 부근에서 시작해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 늦은 가을까지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픈 과거를 반추한 작품이다. 1983년 <현대문학>에 제 1부가, 1986년부터 88년까지 2,3부가 <한국문학>에 연재되어 원고지 1만6,500매로 완성됐다. 1989년 전10권으로 완간돼 현재까지 약 7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 각계 문화 인사 300명 찾아

이날 문학관 개관식에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비롯해 정종해 보성군수, 문학평론가 황광수, 소리꾼 장사익 씨 등 문화인사 300 여명과 후배 문인, 전라도민 등 1,000 여명이 찾아와 성황을 이루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조정래 작가와 전시실을 구경해 눈길을 모았다. 박 명예회장은 “60년 전 벌교는 혼란과 비극의 땅이었다”면서 “바로 그런 벌교에서 소설 태백산맥이 태어나 과거의 고통을 현재와 미래의 교훈으로 깨닫게 하는 기념관으로 탄생했다. (조정래 작가와) 오래 친교를 해온 이로서 기쁘다”고 축사했다.

황광수 문학평론가는 “문학관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보다 문학관이 세워질 만큼 기념비적인 작품을 썼다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지방 자치단체에서 이 문학콘텐츠가 도움이 됐을 만큼 대중적이면서 중요한 작품이 우리시대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이 문학관의 의미인 듯하다”고 밝혔다.

황 평론가는 1989년 태백산맥이 한길사에서 출간됐을 당시 이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20년 이상 조정래 작가와 인연을 맺고 있는 각별한 사이. <땅과 사람의 역사><소설과 진실>등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분석한 단행본을 냈을 정도로 조정래 작가와 문학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평론가이기도 하다.

소설 <아리랑> 집필 당시 러시아 취재에 동행한 적이 있는 그는 “집념과 근성이 놀라운 작가다. 조정래 작가는 소설이 쓰여 지지 않을 때 책상 앞에 더 바짝 다가가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프랑스어 번역을 담당한 재불학자 변정원-조르주 지젤마이어(Georges Ziegelmeyer) 부부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건립된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한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그렇게 희생자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문학관은 물론 이 희생된 사람을 위해 위로비를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감회를 밝혔다.

조정래 작가의 부인, 김초혜 시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조 선생의 문학관이라 나의 감회는 없다”고 입을 다물었지만, 계속된 질문에 집필과정과 이후 이적성 논란 때의 마음 고생을 털어 놓았다.

“제가 뭘 한건 없어요. 워낙 꼼꼼하고 자기 일을 알아서 하시는 분이니까. 빨리 쓰다 보면 글의 의미를 다 안 쓸 때도 있고 동사를 안 쓸 때도 있는데 그때는 내가 써주죠. (이적성 논란은) 지금 지나고 나니까 괜찮지만, 공갈 협박에 시달리다가 유서 썼을 때는 내가 되게 무서워했어. 협박에 내내 시달리다가 ‘여보, 전화내용 녹음해요’라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그때부터 안 오더라고.”

후배 문인들도 먼발치에서 문학관 탄생을 축하했다. 이문재 시인은 “태백산맥 문학관은 지자체가 앞장서 만들었고 규모도 크다. 테마파크 형식으로 만들 것이라고 하는데 지자체와 독자 모두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시사주간지 기자 시절 조정래 작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기호 소설가는 “89년 10권 완간 됐을 때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수업시간에 그 책을 읽었는데, 보통 태백산맥은 ‘불온서적’본다고 혼났었다. 그런데 나는 하필 소화가 나오는 은밀한 장면을 읽다 들켜서 선생님께 ‘음란서적’보는 놈으로 찍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문학관 설립에 대한 욕심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제가 강원도 출신인데, 그곳에는 박경리라는 너무나 큰 거목이 있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 '문학 공간'의 장점을 살렸으면

태백산맥 문학관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3년 보성군이 태백산맥 문학관을 관광벨트화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조정래 작가가 이듬해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 제작 발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한때 문학관 건립이 무산 위기를 맞기도 했다.

11년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이 무혐의 처분을 받아 2005년부터 다시 태백산맥 문학관과 공원 조성 사업이 진행됐다. 2003년 김제에 설립된 아리랑 문학관보다 건립이 늦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작가 생전의 문학관인 만큼 이 곳의 자료와 볼거리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문학관을 살펴 본 전문가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광운대 고명철 교수는 “문학관이 단순하게 창작했던 사람을 기념하기 위한 공간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창작자의 정신이 문학관을 찾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벌교란 지역을 공간으로 했기 때문에 문학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듯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실천문학 오창은 편집위원은 “문학적 공간을 위주로 보여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소설 태백산맥은 하나의 역사이니까, 역사 사진을 묶어서 실제와 소설의 차이를 보여준다든지, 당시 사건 현장을 발굴해서 함께 보여준다면, 더 알찬 구성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지아 소설가는 “소설 무대인 벌교를 100분의 1 또는 1000분의 1로 축소시킨 태백산맥 모형도를 전시실에 설치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직접 철다리와 중도방죽 등을 걸어다니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시대의 한이 서린 벌교가 문학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보성군청에서는 총 45억 원이 소요된 문학관을 비롯해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을 보존, 복원해 문학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보성군은 태백산맥 문학공원 사업비로 85억 원을 책정했다고 밝혔다.

■ 아리랑 문학관 이어 두번째
"작가로 생전에 보람을 느낀다"


2시 개관식이 끝난 후 문학관 2층에 마련된 문학 사랑방에서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작가는 한 시간에 걸쳐 문학관 개관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소설 <태백산맥> 집필 당시와 이후 이적성 시비 논란에 대한 소회, 문학에 대한 자세를 말했다. 젊은 작가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 태백산맥 문학관 건립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개관식 소감에 대해 말해 달라.

= (아리랑 문학관에 이어)두 번째 문학관이다. 사회적으로 내가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황송하다. 수 대에 걸쳐 글을 쓴 작가로 생전에 보람을 느낀다. 15년 전 보성군에서 ‘태백산맥’ 무대를 관광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1994년 검찰 고발 이후 좌절됐다. 이후 무혐의 결정이 난 2005년까지 11년 동안 ‘아리랑’과 ‘한강’을 쓰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리고 나서 문학관이 두 번째로 생겼다. 그 착잡함과 보람을 무엇으로 다 말하겠는가. 미루어 짐작 하셨으면 좋겠다.

- 문학관 건립하면서 소장 자료를 내놓을 때 보성군에 대한 요구사항 있었나

= 보성군에서 요청해서 소장 자료 내놓았고. 작가입장에서 작품 판권은 내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떻게 읽고 느끼는 가는 독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지자체가 필요로 한다면, 내 개인 소지품으로 둘게 아니고 넘기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아무 조건 없이 기부했다.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 요즘 소설의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다. 후배 작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 군부독재가 물러갔다고 해서 우리사회의 갈등이 다 해결된 건 아니다. 지금 비정규직 문제가 있고, 외국인 배우자 100 만 명인 다문화 사회가 됐다. 베트남, 필리핀에서 시집온 그들이 받는 핍박은 우리가 일제 시대 받았던 핍박보다 더 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이 왜 소설로 안 쓰여 지는지 모르겠다. 젊은 능력 훌륭한 작가들이 눈을 크게 떠야 한다.

- 태백산맥 완간 20년째다. 아직도 많이 사랑 받고 있다. 현재의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나

= 10년 전에 문학책 수명이 2~3개월이라고 했다. 근데 태백산맥이 1권이 86년에 나왔으니 출간 23년째다. 지금도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 것은 기적 같다. 그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다. 내가 당한 고통만큼 보상을 받는 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에 넘치게 행복한 사람이다.



벌교(전남 보성군) =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