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성냥·밴드 에이드·안전핀·주판 등 평범한 오브제의 재발견

“사람들은 일상을 살면서 ‘포스트 잇’을 비롯해 ‘반창고’, ‘지우개’, ‘안전핀’, ‘전구’, ‘코르크 마개’, ‘일회용 라이터’ 등 무수히 많은 물건들을 사용합니다. 성능에 문제가 있지 않으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들이죠. 크기가 크거나 가격이 비싸거나 한 물건들은 아니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는 진정한 디자인의 걸작이며 사용자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훌륭한 디자인이야말로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새로운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존재했고 또 알고 있었던 것처럼 즉각적인 친밀함을 선사하죠. 결국 진정한 디자인은 모든 경계를 넘어서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통하는 언어로 말을 건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모마)의 건축디자인 부문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품들의 디자인적 의미를 보여주는 전시를 국내에 선보이며, 좋은 디자인이란 곧 일상의 친숙함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경이와도 같다고 얘기했다.

모마의 국내 첫 공식 전시회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현대카드 공동주최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12월 31일까지 개최한다.

무엇보다 디자인계의 파워 우먼이자 모마의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가 직접 기획한 전시라는 측면에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화려함을 부각시키는 일반적인 전시들과는 달리 이번 전시는 우리 주변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디자인의 참 매력과 생활 속 디자인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대표적으로 이 단순한 물건 속에는 불을 지배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바로 ‘마찰 성냥’이다. 수세기 동안 셀 수 없을 만큼의 시도와 꼭 그만큼의 실패가 이어졌고, 1862년 마지막 시도에서 공기와 접촉할 때 가장 많은 불꽃을 피우는 인과 유황의 적정 배합 비율을 찾아내게 된다.

비로소 1827년 최초의 상자 성냥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초반에는 성냥 속 인의 독성으로 인한 질식사가 잦았고,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아 ‘마왕(Lucifer)’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성냥은 전세계에서 한 해 약 5,000억개 이상이 소비될 정도로 인기를 끄는 디자인 발명품이다.

계속해서 이 작품은 아내를 향한 관심과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존슨&존슨의 탈지면 구매 담당자였던 얼 딕슨은 요리만 했다 하면 손을 베거나 화상을 입는 아내 조세핀을 위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미니 붕대를 만들기 시작한다. 작은 네모 모양으로 자른 붕대를 접착력이 있는 긴 반창고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붙여 나갔고,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 붕대에 크리놀린을 덧입혔다. 이 아이디어가 그 유명한 ‘밴드에이드’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후 밴드에이드는 전세계인들의 필수품이 됐고, 오늘날에는 캐릭터 제품에서 항생 처리 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밴드에이드가 1,000억 개를 넘어선다.

한편 아무리 최신 유행을 좇는 멋쟁이라 할지라도 위급한 순간에는 구식 ‘안전핀’을 찾게 된다. 안전핀을 만든 뉴욕의 기계공 월터 헌트는 뛰어난 발명가다. 미국에서 최초로 재봉틀을 발명했지만 당시 봉제사들의 생계를 염려해 특허를 내지 않은 속 깊은 발명가이기도 하다.

4- 주판 (Bead Frame Abacus, ca.3,000 BC), 디자이너미상, 나무, 금속, 구슬, Photographs by Francesco Mosto
5- 안전핀 (Safety Pin, 1849) 월터 헌트 Walter Hunt, American, 1795-1859 강철 사진 : 미국, A.마이어스 앤드 선스 코퍼레이션 A. Meyers&Sons Corp Photographs by Francesco Mosto

넘치는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항상 빚에 시달렸던 월터 헌트는 철사를 만지작거리며 생활고를 고민하던 찰나에 안전핀을 생각해낸다. 무엇보다 날카로운 침에 찔릴 수 있는 위험을 제거한 것이 헌트가 고안한 안전핀의 장점이다. 1849년 안전핀 디자인의 특허 신청이 이루어졌고, 이 특허권은 4백 달러에 팔려나갔다.

이어 발명품하면 발명 왕국이라 불리는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가운데서도 ‘주판’은 최초의 개인용 계산기로 일컬어지며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세월조차 가늠할 수 없는 발명품들은 디자인 시대를 뛰어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나무틀과 철사 13개, 각각의 철사에 꿰인 구슬 7개로 만들어지는 주판은 숙련된 사용자의 현란한 손놀림이 시작되면 고요한 악기라도 된 듯 신비하게 움직인다.

그밖에 전쟁 중에 꽃핀 발명품도 눈에 띤다. ‘엠엔엠스 플레인 초콜릿 캔디’는 1936년부터 3년에 걸쳐 진행된 스페인 내전 중에 탄생했다. 스페인을 여행하던 포리스트 마스가 녹지 않게 딱딱한 설탕껍질을 씌운 초콜릿 알을 먹는 병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엠엔엠스 요리법을 발명한 것이다.

이후 엠엔엠스는 어떤 기후에서도 잘 견디는 편리한 간식으로 군대에 보급됐고, 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병사들의 인기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1940년대 후반부터는 일반인들에게도 판매가 실시돼 ‘임에서만 녹아요. 손에서는 안 녹아요’라는 슬로건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사소하고 평범한 오브제들도 디자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 하나하나가 모두 진정한 걸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모든 물건은 어떤 식으로든 디자인의 손길을 거친다.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며 소유욕을 불러일으키기는 물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익숙해서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에 파올라 안토넬리 큐레이터는 “디자인은 인간의 창의성을 표현하는 최상의 형태이자 모든 이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며 “가장 서정적인 디자인도 본질적으로는 건설적이고 지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용하고 실용적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추상적인 전략과 복잡하고 세부적인 실제 세계 사이의 간격을 메워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면서 진정한 디자인의 의미를 강조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