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뿌리로 만든 붓으로 일필휘지… 46년간 쓴 작품 세상에 첫선

모필이 발달하기 이전의 붓은 칡뿌리를 두껍게 묶어낸 것이었다. 이것으로 쓴 글씨를 ‘칡서’라 하는데, 그 역사는 천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제정일치 시대에 이른다.

제사장인 신관이 점 궤를 보고 왕에게 전달했던, 당시 절대권위의 상징인 점서 위에 쓰인 글씨 역시 ‘칡서’였다. 기(氣)의 흐름을 담았다고 해서 ‘기 서예’라고도 불리는 칡서는 국내에서는 삼국시대 전후로 전래되어 오다가 모필이 일반화되면서 쇠퇴했다고 전해진다.

‘칡서’ 전시회를 만나볼 수 있게 됐다. 12월 17일부터 23일까지 ‘갤러리 이즈(인사동, 구 학고재)’에서 열리는 <안중선의 ‘알몸’전>이 그것이다.

신관의 마지막 후손인 한 중국인 학자로부터 ‘칡서’를 전승받은 안중선은 회갑을 넘겨 처음으로 세상 밖에 작품을 선보인다. 46년간 써낸 작품 중 15점은 직접 전시되고 그 외 다수의 작품은 갤러리의 공간에 마련된 스크린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칡서’ 작품은 세 가지 기법으로 그려진다.

글을 중심으로 그림의 형태를 표현하는 ‘서화체’, 그림 속에 글을 표현해 영혼과의 접목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담고 있는 ‘화서체’,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을 나타내는 ‘화화체’ 기법이다. 근당 양택동을 비롯한 서예대가들로부터 전통 서예를 사사 받았던 안중선은 갑골문자, 상형문자, 전서체 등을 독학해 칡서를 현대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칡뿌리로 만든 붓이 먹물을 충분히 머금도록 30분간 담가둔 후에 수 초안에 일필휘지로 써내는 글씨 안에는 영혼과 우주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일반 붓은 쓸수록 매끄럽고 수려하게 써지는 반면, 칡으로 만든 붓은 쓸수록 힘이 강해져서 서체에 원초적인 생명력이 고루 발산된다.”고 안중선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 전시에 이어 내년 1월 3일부터 8일까지 일본 후쿠오카의 에루가라 호루(ELGALA Hall)에서도 전시회가 열린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