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 선묘, 금박세공, 조충도 세밀 묘법 등으로 '뿌리(혼)' 의미 되살려

한규언 화가가 모처럼만에 서울 도심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그동안 강화도를 떠나 제주도에서, 그것도 인적이 드문 성산읍 삼달리 외진 곳에서 줄곧 작업을 해왔기에 그의 서울행은 자못 궁금증을 일으킨다.

작가의 인생편력이 반드시 작품세계에 투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규언 화가의 경우는 남다른 측면이 있다. 한 화가는 강화도 태생이자 독학으로 화업의 노정을 걸어왔다.

그는 강화도에서 거처를 제주도로 옮긴 것에 대해 강화도 마니산 신화에 대한 관심에서 한라산에 머무는 신들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말한다. 한규언 화가를 지배하는 신화가 있다면 우리 역사, 혼의 ‘뿌리’인 듯 싶다.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서 우리의 뿌리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들었어요. 역사의 부침에서도 우리는 뿌리를 지켜왔는데 언제부터인가 남의 것(나라)을 추종하고 있어요.” “제주 삼달리 시골에서 도심으로 조금만 나오면 영어 간판이 눈에 띄고, 한동안 미국을 좇아서, 요즘은 중국이 잘 나간다고 하니 중국에 관심을 기울이고…. 줏대가 있어야지요.”

한 화가와 얘기를 하다보니 그가 이달 17일부터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여는 개인전을 <겨레의 혼 – 잉태>전으로 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커다란 캔버스엔 무수한 알들이 채워져 있고, 그외 공작, 잉어, 두꺼비, 벌, 황소 등의 조충어수(鳥蟲魚獸)를 비롯해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의 십장생에 이르는 다양한 사물들이 등장한다.

유 화가가 80년대 초부터 그린 드로잉에 채워졌던 신화적 요소들이 여전한 자태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들 소재는 우리의 ‘뿌리’와 상징적인 유관성을 지닌다.

유 화가의 이번 전시는 소재가 서로 종(種)의 경계를 넘어 상호 합체가 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1- '아리랑'
2- '겨레의 본향으로'
3- '천지의 태몽'

김영호 미술평론가(중앙대 교수)는 “한규언의 작업은 인간과 짐승과 식물이 경계를 허물고 상호 교류하는 설화세계 혹은 윤회사상의 단편들을 함께 드러낸다”고 말한다. 가령 화면에 자리한 황소나 인간은 어느덧 가지를 뻗은 고목의 형태로 이어지고 그 가지의 끝에 달린 거대한 열매의 내부에는 태아들이 자리 잡고 있는 형국이 그것이다.

또한 한 화가의 그림은 전래적 신화의 내용을 차용하고 있지 않고 비가시적인 세계로서의 신화적 내용들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표상해냄으로써 신화 담론과는 차별화된 조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기법 역시 수묵화의 선묘에서 공예의 금박세공 그리고 조충도의 세밀 묘법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한규언 화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자신을 포함한 ‘씻김굿’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시명‘겨레의 혼 – 잉태’의 참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우리의 신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시는 이달 23일까지 계속된다. (02)736-1020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