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바닐라 스카이' 현실일까 꿈일까'순간을 영원으로' 만들려는 인상주의 영화속 인간의 욕망과 비유

미술은 언어이다. 하지만 너무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까닭에 우리는 그들의 언어의 독해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지닌 뜻을 헤아리고 그 작품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계기로 삼거나 영화의 반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해 왔다. 이렇게 영화 속에 미술은 영화의 또 다른 은유나 비유로 활용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영화 속의 미술이야기를 통해 영화의 미술의 통섭의 세계를 만나보았으면 한다.

2. <노팅 힐>(1999)/샤갈(Marc Chagall) ‘결혼’ 등

3. <바닐라 스카이>(2001)/모네(Monet) 그림

4. <종횡사해>(1991) <화가 모딜리아니>(2004)/모딜리아니(Amedo Modigliani) 그림

5. <퐁네프의 연인들> / 렘브란트(Rembrandt) 그림

6. <미스터 빈>(1998)/제임스 에보트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의 ‘화가의 어머니’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진정 꿈이었으면 하는 현실이 있다.

하지만 이건 정말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일이 있기도 하다. 이렇게 사람들은 버거운 현실을 회피할 생각으로 꿈이었으면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어떤 일들을 꿈에서라도 이루어 보고자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꿈과 현실사이를 오가면서 서로 어느 것이 현실인지 모르는 주인공과 함께 두 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멋쟁이 미남배우 톰 크루즈(Thomas Cruise Mapother IV, 1962~ )와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 Sanchez, 1974~ ) 그리고 카메룬 디아즈(Cameron Michelle Diaz, 1972~ )가 출연하는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눈을 떠 봐’라는 정도로 새길 수 있는 ‘'Open your eyes.’지만 국내개봉당시에는 바닐라 스카이(Vanilla Sky, 2001)라고 소개가 되었던 영화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남자 데이빗은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영향력 있는 출판사와 잡지사를 운영하는 한편 얼굴마저도 잘 생긴 나무랄 것 없는 사내로 수많은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멋진 남자이다.

이런 데이빗을 줄리(카메룬 디아즈 분)는 연모한다. 하지만 데이빗은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자신의 친구인 브라이언이 좋아하는 소피아(페넬로네 그루즈 분)를 만나 한눈에 반하게 된다.

여기에 줄리는 질투를 느껴 데이빗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여기서 줄리는 현장에서 즉사를 하고 데이빗은 사고로 그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진 흉측한 얼굴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외모가 변한 데이빗의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이 영화는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면서 관객들의 시간감각을 마비시킨다.

줄리의 자동차를 타면서 인생이 뒤 바뀌고만 데이빗의 현실은 언제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인생의 절정기 또는 잘 나가는 시절의 위태로움을 이 영화를 감독한 카메론 크로우(Cameron Bruce Crowe, 1957~ )는 모네(Claude Monet,1840-1926)의 작품 <바닐라 스카이> 를 통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어머니가 물려준 모네의 그림을 소피아에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이 그림은 원 제목이 <아르장뙤이유의 세느강>(The seine at Argenteuil)이라는 모네의 초기작이다.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전쟁 중 일 때 런던으로 몸을 피했던 모네가 런던에서 J.터너, J.컨스터블과 같은 영국의 풍경화가들의 생기있고 명쾌한 색채에 교감하고 전쟁이 끝나는 1872년 프랑스로 돌아와 자리 잡은 곳이 아르장뙤이유이다. 이곳에서 그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맑고 청명한 색채와 인상주의라는 자연을 보는 화가의 순간적인 감각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남겼다.

사고를 당하고 흉측하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하던 데이빗은 사람들을 피해 세상과 연을 끊은 채 살아가지만 소피아를 잊을 수 없는 그는 그녀의 발레학원을 찾는다.

이후 데이빗은 그의 친구 브라이언과 함께 소피아를 만나 나이트클럽에서 함께 춤을 추고 술을 마시지만 자신의 망가진 모습에 괴로워한다. 여기서 데이빗과 브라이언은 소피아를 데려다 주기 위해 밤길을 걷다 각자 헤어진다. 여기까지가 현실이다.

그리고 "Open your eyes" 라는 대사가 나오면서 장면은 바뀌어 데이빗의 상상 속으로 이어진다. 상상 속에서 소피아는 술에 취해 잠들어있던 데이빗에게 눈을 뜨라고 말한다. 이때 뒤로 하늘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모네의 그림에 나오는 바닐라 스카이색과 같다. 전에 소피아에게 보여주었던 모네의 그림을 상기하면서 데이빗이 만들어낸 환상임을 암시한다.

5- 라 그르누이예르 (1869)
6- 인상, 해돋이 (1873)
7- 아르장퇴유,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 (1873)
8- 아르장퇴유의 요트 (1872)

여기서 모네의 그림은 자연이란 일순간 흘러가는 것, 아름다운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순강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누구나 인간은 아름다운 기억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지만 그것은 그림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림 속의 아름다운 바닐라 스카이빛 하늘과 색채는 영원한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그런 사실을 암시하는 행복한 순간의 영원함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헛된 욕망을 대신한다.

그렇다면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을 만났던 순간의 인상을 감각적으로 잡아내었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그림이란 무엇이었을까. 충실하게 반영된 자연의 영속적인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순간 사라지고 말 아름다운 자연을 채집하고 표본화 하려는 곤충학자 같은 심정이었을까. 아무튼 인상주의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전제된 화파라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감각과 손재주를 믿었던 화가들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줄거리와 맥을 같이한다.

영화 속에서 데이빗은 수술을 해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소피아와 행복하게 살게 되지만 이 모든 행복은 자각몽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나이트클럽에서 혼자 집으로 돌아온 그는 괴로워하며 다시는 소피아를 찾지 않는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집에 틀여박혀 외로움에 몸을 떨면서 두통에 시달린다. 그러다 인터넷을 통해 생명연장회사를 알게 되고 냉동인간이 되어 후일 좋은 세상에서 다시 자신의 얼굴을 찾아 소피아와 만날 기로 마음먹고 결국 약을 먹고 죽음을 선택한다.

이렇게 영화는 데이빗이 정신과의사인 맥케이브에게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줄리가 녹음해 놓은 알람시계가 울리는 장면부터 현실이 시작되는데 그는 여기서 자각몽(Lucid dream)의 상태에 들어있다.

자각몽이란 일반적으로 꿈을 꾸면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자각몽의 상태에서는 꿈을 꾸면서 스스로 꿈의 내용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꿈과 달리 현실적이며, 일관성이 있다.

따라서 가끔 꿈을 꾸는 동안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내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특징이 있다. 영화의 모든 것은 데이빗이 사고를 당하고 난후 꾼 ‘매우 사실적인 꿈’이다.

일순간 닥친 불행으로 인해 좌절하는 그가 꾼 달콤한 상상들이 영화 속의 데이빗의 모습이자 그의 인생이었다. 한 회사와 '냉동인간'이 되기로 계약을 한 후, 150년이라는 세월동안 잠든 데이빗은 자신의 꿈 속에 갇혀 소피아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모네가 보았던 아르장뙤이유의 세느강 위로 흐르던 푸른 하늘은 진정 현실일까. 꿈일까. 아니면 화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공상 속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에 불과한 것일까.

어릴 적 낮잠을 자다 깨어나 꿈속에서 경험한 것들을 현실이라고 착각해서 펑펑 울 었던 기억이 새로운 이 영화를 보면서 모네를 비롯한 미술사에 등장하는 모든 화가들은 평생 동안 자각몽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우리가 사는 현재 이곳의 삶은 과연 현실일까 ?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