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모차르트' 화려한 퍼포먼스 카리스마 열광의 도가니

온라인 예매사이트 티켓링크에 따르면 올 한해 국내에서 열린 클래식 공연은 1,725개에 이른다. 하루에 네 편의 클래식 공연이 무대에 올랐던 셈으로, 공연 관계자들은 3-4년 전보다 그 수가 1.5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난히 대형 오케스트라나 독주자들의 내한공연은 물론 국내 연주자들의 연주회 역시 많았던 2008년. 관객들의 마음을 깊숙이 흔들어 놓은 클래식 공연은 무엇일가? 여기, 클래식 음악 평론가들이 올해 국내에서 열린 클래식 공연 중에 '감동作'을 꼽았다. 그들 공연이 남긴 의미심장한 메시지들도 함께이다.

■ 올해 최고의 축제, 두다멜&SBYO

12월 14일과 15일, 각각 예술의 전당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는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무대는 199명의 단원들로 가득 찼고 지휘자는 마치 춤을 추듯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예정된 레퍼토리에 대한 치밀한 연주가 끝난 후 유니폼으로 맞춰 입은 점퍼로 갈아입은 단원들은 마치 '노다메 칸타빌레'(음대생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의 드라마)의 오케스트라처럼 악기를 돌리거나 춤을 추며 '비바!'를 관객과 함께 외쳤다.

그리고 연주가 모두 끝난 후, 감동과 흥분으로 가득찬 객석으로 점퍼를 던졌다. 그런 퍼포먼스를 어색해하거나 불편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그 축제의 열기를 즐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14일 공연에서 두다멜은 '엘 시스테마'를 통해 맺어진 스승인 곽승 지휘자에게 자신의 점퍼를 입혀주는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기도 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 축제를 즐겼던 음악평론가 장일범, 류태형, 유형종 씨는 <두다멜&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를 올해 최고의 공연으로 꼽았다.

"연주력은 물론 여타 오케스트라보다 큰 규모에서 나오는 음량 역시 대단했다. 보통 관객들은 지휘자를 보지 않지만 두다멜은 자신에게 시선을 끌어들이는 탁월한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그러나 단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오케스트라와 일체감을 이루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유형종 무지크바움 대표는 말했다.

이틀간의 공연은 각기 다른 프로그램으로 공연됐는데, 류태형 '월간객석' 편집장은 14일 공연을 장일범 음악 평론가는 15일 공연에 대한 감흥을 더욱 상세히 전해주고 있다.

"클래식의 매너리즘을 깨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14일 연주된 말러 교향곡 1번을 끝내고 두다멜은 지휘봉을 든 채로 1분 정도 멈춰 있었는데, 여느 때 같으면 객석에서 기침 소리, 벨소리, 박수소리가 들렸을 법하지만 그 날만큼은 아주 고요했다. 침묵도 음악이라는 사실 새삼 깨달았고 청중들을 공연에 완전히 동화시킨 두다멜의 모습에서는 성스러움 마저 느껴졌다." (류태형 '월간객석' 편집장)

"두다멜은 활화산 같은 지휘자다. 뜨거우면서도 놀라운 서정성을 겸비하고 있었고 특히 15일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지휘하는 두다멜의 모습에 감동했다. 구조가 참으로 건축적이다.

1악장이 나온 후 2악장에서 왜 이렇게 연주할 수밖에 없는지, 3악장 연주에 이어 4악장에서 왜 이렇게 분출할 수밖에 없는지, 지휘봉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탁월한 음악성과 지휘의 카리스마를 가진 모습이 베네수엘라의 '모차르트'라 부를만 하다." (장일범 음악 평론가)

평론가들은 지휘자인 두다멜이 청중을 향해 인사할 때도 포디엄(지휘단)에 서지 않고 단원들 속에 섞여있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아름다웠다는 말도 전했다. 더불어 베네수엘라를 클래식 음악강국으로 만든 '엘 시스테마'(주간한국 2249호 참조)를 통해 태어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라는 점에서 우리 음악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두다멜&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외에, 장일범 음악 평론가는 '이 시대 최고의 고전시대 레퍼토리 해석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쉬프 리사이틀>과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에사페카살로넨이 이끄는 LA필하모닉의 공연에 대해 각각 "피아노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해준 공연", "고급스러운 사운드"라는 평을 남겼다. 특히 LA필하모닉은 내년부터 두다멜이 지휘봉을 넘겨받게 된다.

소프라노 임선혜, 피아니스트 임동민

■ 평이 엇갈리는 베를린 필

올해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어떤가. 지난 11월 20일과 21일 양일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는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독일의 정통성을 가진 베를린 필과 영국 출신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브람스' 해석이 어떻게 어우러질지에 대한 시선이 모아졌다. 베를린 필에 엠마누엘 파후드(플루트)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와 같이 훌륭한 솔리스트들이 포진해있어 연주력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지휘자의 작품 해석에 대한 평은 다소 엇갈렸다.

"무엇보다 해외에서도 듣기 어려운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다는 점이 좋았다.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제대로 들려준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박종호 오페라 해설가)

"래틀이 그린 전체적인 밑그림은 해비한 양념을 넣어야 하는 음식에 소프트한 양념을 입힌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브람스 교향곡의 1번과 4번은 특히 어둡고 2번과 3번은 밝고 안온한 분위기이다. 그런데 래틀이 해석한 브람스의 음색은 전체적으로 밝았다. 2,3번의 경우는 괜찮았지만 1,4번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동안 베를린 필 전 지휘자들이 이어온 브람스 연주의 패러다임을 꼭 뒤집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특히나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 불릴 정도로 브람스가 고민 고민해서 만든 교향악인 1번은 앙상블이 부서지기까지 했다." (류태형 ‘월간 객석’ 편집장)

■ 눈길끈 한국의 연주자

해외의 대형 오케스트라가 내한하면서 한국의 연주자들 공연이 다소 묻히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중에도 인상 깊게 남은 공연이 있었다. 장일범 평론가와 유형종 무지크바움 대표는 동시에 <피아니스트 임동민 리사이틀>을 꼽았다. 올해 9월 처음으로 베토벤 소타나 독집 앨범을 발표한 임동민은 전국 리사이틀을 이어가고 있다.

유형종 씨는 “요즘 클래식계에 관객 친화적인 이미지로 각광 받는 젊은 연주자가 많지만 오히려 수줍음 많고 사색적인 연주를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고 장일범 씨는 “또랑또랑하고 맑은 연주를 하면서도 때론 어두움을 드리울 줄 알았다.”고 평했다.

한편, 세계 고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소프라노 임선혜 독창회>와 러시아 최고의 지휘자인 알렉산더 라자레프가 지휘한 KBS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의 ‘차이코프스키 4번’도 좋은 평을 받았다.

2천 여 편에 육박하는 클래식 공연이 무대 위에 올려지고 있지만 이런 수적 증가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문일근 음악 평론가는 올해 클래식 공연 전반에 대해 “연주회가 많아진 것에 비해 그 퀄리티가 보장되느냐에 대해 회의적”이라면서 “해외의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국내 오케스트라도 좋아질 때가 됐다고 본다.”고 매년 수준 높은 해외 오케스트라가 내한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같은 수준을 맴돌고 있는 국내 연주자들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내년 환율상승으로 내한 예정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는데, 혹자는 외화가 절약되고 국내 클래식 음악계 활성화의 계기가 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심정은 그러하지만 그게 갑자기 가능하겠는가."라며 기본기가 부실한 국내 음악교육이 개선되지 않는 한 개선될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