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예술, 관객 액션 따라 살아있는 듯 반응… 루체비스타 업그레이드

매년 연말이면 화려한 조명들이 도시의 밤거리를 하얗게 뒤덮는다.

특히 시청과 청계광장 주변의 빛의 향연은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몇 년째 사로잡고 있다. 그중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청계천 주변에서 열렸던 ‘루미나리에(빛의 축제)’였다. 이 행사는 일본이 먼저 상표 등록을 하는 바람에 2년 전부터 ‘루체비스타(빛의 풍경)’로 이름을 바꿔 진행해왔다.

주변 구조물과 어우러지는 형형색색의 조명 설치물은 야경의 세계적 명소 샹젤리제를 연상시킬 정도다. 나날이 화려해지는 빛의 축제는 연말 특유의 들뜬 분위기와 맞물려 시청과 청계광장 주변을 관람객들로 끊임없이 북적이게 한다.

서울시가 주최하는 하이서울페스티벌 겨울축제는 도심 곳곳에 입힌 ‘빛의 옷’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서울광장에는 중앙에 조성되는 스케이트장과 연계한 조명시설이 들어선다. 겨울답게 LED 눈썰매와 이글루가 눈길을 끌고 빛의 의자와 조명탑 등 더욱 다양한 볼거리가 설치된다. 청계광장에도 LED로 만든 은백색 스크린과 눈꽃거리가 조성된다.

무엇보다 올해의 포커스는 청계천에 맞춰진다. 그동안 루체비스타로 가장 화려한 빛의 장관을 자랑했던 청계천 일대는 올해 루체비스타 대신 한층 업그레이드된 ‘디지털 스트림’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현혹하게 된다.

■ 역동성·상호작용성 보완한 디지털 스트림

디지털 스트림은 여러 면에서 루체비스타와는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루체비스타가 조형물에 조명기기를 결합시킨 형태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점멸을 반복했다면, 이번 디지털 스트림의 설치물은 관객의 ‘액션’에 따라 마치 살아있는 듯이 반응하며 움직이는 상호작용적 영상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화려하지만 한 자리에서 고정된 채 전시됐었던 루체비스타의 한계를 보완한 역동성이 눈에 띈다.

가운데로 흐르는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분수를 교차시켜 거기에 다시 레이저를 투영하는 ‘디지털 캔버스’는 말 그대로 공중에 그리는 ‘빛의 그림’이다.

실용 레이저의 대표작가인 로랑 프랑소와(Laurent Francois)가 레이저로 점, 선, 면을 덧칠하는 새로운 기법으로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프로젝터로 청계천 옹벽에 꽃의 영상을 투사해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 ‘디지털 가든’은 인터액티브 설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액티브’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지털 가든’은 관람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거대한 꽃들이 때론 인사를 하고 개화하는 등 그곳을 지나가는 시민의 행동에 따라 반응하며 감상자와 호흡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설치 예술이 단순한 ‘실외장식’처럼 여겨지는 문외한에게도 예술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기회가 된다.

■ 청계천에 피는 디지털 꽃, '프랙탈 플라워'

‘캔버스’와 ‘가든’이라는 제목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디지털 스트림의 작품들은 단순한 ‘빛의 향연’을 넘어서 문화예술적 성격을 강조한 면이 짙다. 특히 디지털 아티스트 미구엘 슈발리에(Miguel Chevalier)가 내세우는 <프랙탈 플라워 Fractal Flower>는 도시의 빛과 예술작품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프랙탈’은 주로 기하학과 함께 쓰이는 용어로, 쉽게 말하면 무한히 확대를 해도 도형의 세부적인 특징이 없어지지 않는 성격을 말한다. 이를테면 불규칙한 물체들, 즉 구름, 산, 해안선, 나뭇가지 등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프로젝터로 옹벽에 투사되는 <프랙탈 플라워>는 조그마한 기하학적 식물들이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색과 형태로 변화하며 새롭게 재탄생되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한 영상작품이다.

매일매일 새롭게 달라지는 꽃들의 형상을 통해 관람객들은 이 작품이 생명과 자연의 사이클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평면적이었던 기존의 조명 작품들과는 달리 청계천 옹벽을 십분 활용한 이 작품은 마치 꽃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입체적인 풍경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지루하지 않고 끊임없이 흥미를 유발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프랙탈 플라워>는 우리가 사는 삶의 공간에 현대미술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의미있는 작품이 될 만하다.

■ 털 청계천, 문화도시 서울 시발점

레이저와 디지털 영상이 난무하게 된 청계천의 변화는 놀랍다.

영조 36년(1760년)에 완성된 청계천은 원래 서울의 하수도였고, 아낙네들의 빨래터이자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였다. 전쟁 이후의 청계천은 사회적 혼란과 재원부족으로 방치된 채 가난하고 불결한 당시 현실을 보여주는 장소였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복개된 청계천 위로 쭉 뻗은 고가도로가 건설돼 성장과 발전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화와 환경에 보다 큰 가치를 두게 됐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구상한 것은 청계천의 문화적 복원.

그래서 이번에 진행될 새로운 빛의 축제에는 한국 IT산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청계천을 지역적 특성과 문화적 요소로 결합시키겠다는 복합적 취지가 담겨 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의 문화도시 경쟁력 전략으로 ‘컬처노믹스’를 언급했다. 컬처노믹스는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문화를 알아야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컬처노믹스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문화마케팅을 넘어 문화를 소재로 부를 만드는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시가 이번에 하이서울페스티벌을 사계절 축제로 확대하고 무료공연과 전시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 움직임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서울시가 ‘문화·디지털 청계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이번 ‘디지털 스트림’의 작품들에는 어느 때보다도 시민에게 다가가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서울시가 세계적 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시민의 반응과 문화 향유의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디지털 청계천’은 다양한 관광객의 유입을 촉진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디지털과 빛, 예술의 만남을 기치로 내세운 청계천 디지털 스트림은 19일부터 내년까지 계속되며,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광교와 광통교 사이에서 매일 만나볼 수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