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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몸의 학교' 첫 발 내딛나
'몸의 학교'를 아시나요
콜롬비아 예술대안학교 모델로 국내서도 창립 움직임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콜롬비아 몸의 학교 무용단의 '몸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지난 연말 클래식 음악계의 화두는 단연 구스타프 두다멜이었다.

그가 이끄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SBYO)의 공연 이후, 두다멜과 ‘엘 시스테마’ 운동은 문화계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엘 시스테마 운동은 빈곤에 찌든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쥐어주며 이들을 예술가의 길로 이끈 베네수엘라의 대안교육제도다.

SBYO 역시 이 운동이 만들어낸 200여 개 오케스트라 중 하나다. 이들을 비롯해 엘 시스테마 운동이 키워내고 있는 아이들은 전 세계로 퍼져 세계 음악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

그렇다면 춤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까? 콜롬비아 ‘몸의 학교(El Colegio Del Cuerpo)’는 그 후보의 가장 앞에 있다.

몸의 학교는 정치적인 불안과 가난으로 점철된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콜롬비아의 청소년들이 춤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도록 가르치는 대안학교다. 이 학교의 무용단은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혁신적인 대안교육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도 ‘몸의 학교’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회공공연구소(소장 강수돌)의 박정훈 책임연구원이 ‘서민 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가칭) 방안을 연구해 그 창립을 제안한 것이다.

■ 예술은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몸의 학교 ‘한국 버전’은 콜롬비아의 그것을 그대로 한국에 옮기려는 것은 아니다. 박 연구원은 콜롬비아는 원래 공교육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고, 한국은 어느 정도 작동하다 점차 몰락해갔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설명한다.

그래서 그가 제안하는 대안예술학교의 모습은 ‘몸의 학교’의 생산적인 목적과 과정을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한국의 현실에 뿌리내리자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대안학교 모델에 대해서는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대안학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양적으로는 130여 개의 대안학교가 운영되고 있지만, 정부 인가를 받은 학교는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정부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정부 지원이 없는 대안학교에 들어갈 때는 약 300만 원 정도의 예탁금이 필요하다. 30만 원 정도의 수업료도 무시할 수 없다. 사교육비 마련이 어려운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대안학교가 정작 돈이 없으면 다닐 수 없는 모순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공교육이 제 기능을 못하고 일부 계층만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과열양상을 보이는 지금, 대안교육마저 역할을 못하는 현실은 곧 새로운 ‘몸의 학교’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됐다.

박 연구원이 대안학교의 혁신에 ‘예술’을 끌어들인 이유도 ‘몸의 학교’의 탄생과도 일맥상통한다. 사회로부터, 제도 교육으로부터 낙오된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가 ‘예술’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공교육 모델이 될 이 학교는 두다멜과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 양성’이 그 목표가 아니다. 모든 서민 청소년들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교육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교육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 교육의 현실을 생각하면 꿈 같은 소리다. 그래서 박 연구원이 설명하는 학교의 모습은 ‘몸의 학교’보다는 ‘꿈의 학교’에 가깝게 들린다.

2008년 한국의 대안학교를 찾은 콜롬비아 몸의 학교.


■ 춤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학교

그럼에도 박 연구원이 생각하는 대안학교의 모습이 마냥 꿈 같은 소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직접 경험하고 느껴온 한국과 중남미의 교육 현실이 새로운 모델의 기반이 됐다.

“어릴 적에 EBS에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봤어요. 그땐 참 흥미롭게 봤고 실제로도 그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결국 보지 못했어요. 일단 티켓값이 비싸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발레를 본다는 것’이 서민의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지만 지금까지도 못보고 있어요. 그런 학습된 정서가 아직까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처럼 한국에서 예술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 같은 인식이 있었다. 예술교육도 마찬가지다. 공교육에서 예술교육을 관장하는 시스템도 만들어졌지만,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제시하는 기준을 넘는 재능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의 예술교육은 소수의 엘리트 중심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상대적으로 ‘서민 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는 예술에 관심이 있어도 가난하기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던 모든 학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그래서 공교육 측면에서 의미있는 제안이 된다.

하지만 이 모델을 제시한 박 연구원의 태도는 신중하다. 멕시코에서 7년을 살며, 콜롬비아에서 몸의 학교와 그 성과를 목격한 경험으로,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오랜 과정을 거쳐야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올해 상반기 중 예술노동자들과 함께 ‘문화공공성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대안예술학교의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사전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춤을 통한 교육’이라는 기치 아래 구체적인 커리큘럼도 함께 정해질 예정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콜롬비아 몸의 학교 무용단은 그들이 처한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춤의 혁명’으로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춤으로 세계 평화를 꿈꾸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그것을 정말로 실천하는 추진력은 교육의 힘과 예술의 위력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반면 뒤늦게 출발한 한국의 몸의 학교는 갈 길이 멀다. 콜롬비아 몸의 학교가 지난 긴 세월동안 거쳐온 그 길을 이제야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안교육’이라는 명칭에 붙은 모든 편견이 이 학교가 싸워야 할 대상이다.

과연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몸의 학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그 모습은 어떤 형태가 될까. 대안 없는 교육정책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안예술교육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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