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명작속 여성 '행복'바이러스 아멜리에 상징

미술은 언어이다. 하지만 너무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까닭에 우리는 그들의 언어의 독해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지닌 뜻을 헤아리고 그 작품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계기로 삼거나 영화의 반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해 왔다. 이렇게 영화 속에 미술은 영화의 또 다른 은유나 비유로 활용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영화 속의 미술이야기를 통해 영화의 미술의 통섭의 세계를 만나보았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조금은 이상하고 야릇한 태도와 생각을 지닌 ‘아멜리에’(영화 <아멜리에> 주인공)’는 우리에게 다소 낮 설고 때로는 엉뚱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일찍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손길에 가슴이 뛰는 것을 심장병이라 오해해서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한 아멜리에.

이렇게 꼬일 수 없을 만큼 꼬여 버린 인생의 주인공 아멜리에의 유일한 친구인 금붕어 ‘카차롯’마저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혼자였던 아멜리에는 외로운 것이 아니라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고독이라는 삶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고 그리고 그녀가 얻은 때로는 가진 행복을 나누어 주기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앙증맞고 때론 귀엽기도 한 여배우 오드리 또뚜( (Audrey Tautou, 1978~ )는 아멜리에 역을 맡아 익살스러우면서도 우울한 연기를 보여준다. 여기에 그의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포르노 테이프를 파는 청년 니노 (마티유 카소비츠 분, Mathieu Kassovitz, 1967~ )의 연기도 코믹하지만 우수에 젖어 있다. 이렇게 일상에서 좌절을 안고 사는 영혼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프랑스의 거장 장 피에르 주네(Jean Pierre Jeunet, 1953~ )가 만든 <아멜리에>(Amelie, 원제는 “아멜리에 풀랭의 기막힌 인생”이다)는 코미디와 판타지 그리고 멜로와 애정과 로맨스가 버무려진 영화지만 일관된 것은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상자를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법을 알게 된 아멜리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그들의 행복을 훼방놓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귀엽고 사랑스런 한 편의 판타지 동화 같은 영화이다.

고독이라는 무거운 주제 때문에 자칫 무거운 영화가 되었을 것을 장 피에르 주네는 빠른 카메라 웍과 유머러스한 편집 그리고 내레이션을 통해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태도는 시종일관 기막힌 현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일상들을 마치 동화처럼 재미있고 나직하게 들려준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재미있다고 느끼다가 문득 영화가 끝나 자리에서 일어나려면 슬픔이 밀려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떻게 저렇게 모았을까 할 정도로 다양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일터인 카페 레 뒤 물랭(les du Moulins)의 주인 수잔은 곡예사 출신으로 애인의 배신 때문에 다리를 전다.

담배를 파는 조제뜨는 자신이 중병에 걸려있다고 생각하고, 3류 작가 히폴리토는 자신의 작품을 몰라주는 세상을 원망하고, 사랑에 실패한 조셉은 전 애인에 대한 스토킹을 멈추지 않는다. 아멜리에가 집에 돌아와도 상황은 여전하다.

조금만 건드려도 뼈가 부셔지는 크리스탈 맨 듀파엘은 집 밖을 나가기를 두려워한다.

바람둥이 남편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마들렌은 늘 우울하고, 조금 지능이 떨어지는 외팔이 점원 루시엥은 야채가게 주인 꼴리의 밥(?)이다. 전직 군의관 출신인 아빠 라파엘은 엄마 납골당을 장식하는 것이 소일거리이다. 그리고 아멜리에가 첫눈에 반한 청년 니노도 놀이동산에서 일하며 포르노 테이프를 파는 아웃사이더이다. 모두가 4차원의 인물들뿐이다.

어느날 아멜리에는 다이애나비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놀라 유리구슬을 떨어뜨린다.

구슬을 찾다 우연히 40년 된 낡은 상자를 발견하고 늙은 아마추어 화가 레이몽 듀파엘의 도움으로 상자의 주인을 찾아주면서 자폐적 자아로부터 탈출한다. 이후 아멜리에는 자신의 행복보다는 남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1- <우산> (1881-1886년) 특이하게 두가지 양식을 혼용했다. 그림 오른편은 1981년경의 양식이고 왼편과 윗부분은 1885년의‘건조한’양식이다.
2- 1918년 레콜레트 화실에서 찍은 르누아르와 그의 모델 카트린 에슬링
3- 영화 <아멜리에>와 영화속 한 장면.‘ 행복’을 그리는 화가 르누아르와 잘 어울리는 명화다
4- <샤투의 노잡이들> (1879년) 모파상의 소설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 샤투 맞은편 세느강 중간에 자리잡았던 레스토랑 건물 왼쪽의 테라스에서 르누아르는 대작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를 그렸다.
5- <만돌린을 켜는 여인> (1919년) 르누아르의 말년 작품
1- <우산> (1881-1886년) 특이하게 두가지 양식을 혼용했다. 그림 오른편은 1981년경의 양식이고 왼편과 윗부분은 1885년의'건조한'양식이다.
2- 1918년 레콜레트 화실에서 찍은 르누아르와 그의 모델 카트린 에슬링
3- 영화 <아멜리에>와 영화속 한 장면.' 행복'을 그리는 화가 르누아르와 잘 어울리는 명화다
4- <샤투의 노잡이들> (1879년) 모파상의 소설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 샤투 맞은편 세느강 중간에 자리잡았던 레스토랑 건물 왼쪽의 테라스에서 르누아르는 대작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를 그렸다.
5- <만돌린을 켜는 여인> (1919년) 르누아르의 말년 작품

듀파엘은 20년 동안 매년 1점씩 르누아르(Pierre A Renoir, 1841∼1919)의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Le dejeuner des canotiers,1881년, 유화, 129.5 x 172.7 cm, 필립컬렉션, 워싱턴, 미국)를 모사해 왔다.

그는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모두 이해했지만 화면 중앙 후면의 물 잔을 들고 있는 한 여자의 표정만은 이해하지 못한 때문에 그 그림을 완벽하게 모사할 수 없었다. 바로 그림 속에서 누구에게도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그 여성은 바로 영화 속에서 늘 혼자였던 아멜리에이다.

르누아르가 1880년대 그렸던 장르화(풍속화)의 하나인 이 그림은 그가 센 강가의 프루네즈 레스토랑에서 그린 작품이다.

“선이 아닌 색으로 형태를 만들었던” 그가 자연의 빛을 따르는 플레네르화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실재이다. 왼쪽 난간을 잡고 서있는 청년은 이 식당 주인의 아들이며, 강아지를 어르고 있는 여성은 양재사로 일하던 알린 샤르고로 후에 르누아르의 부인이 된다.

14명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모자를 통해 그들의 복잡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아멜리에에 나오는 등장인물만큼이나 다양하다. 인상파 화가로 분류되면서도 인상파 화법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르누아르의 작품으로 당시 새롭게 등장한 쁘띠 부르주아와 노동자들의 행복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삶은 끊임없는 파티요, 그때는 세상이 웃는 법을 알았다”고 회고하던 시절의 르누아르의 이 그림은 듀파엘에게 아멜리에를 만나게 함으로써 비로소 그 여인의 표정의 의미를 알게 해 준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영화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어준다.

자신의 사랑은 찾지 못한 채 남의 행복만 찾아주던 아멜리에는 드디어 듀파엘의 충고를 받아들여 ‘경주마가 울타리를 넘어 사이클 경주에서 뛰어들어 달리듯’4차원의 세계에서 현실로 나오고 니노와의 사랑을 이룬다.

“나에게 그림은 애교 있고, 즐겁고, 아름다워야 해요. 그래요. 아름다워야 해요. 인생은 귀찮은 일이 너무 많아 새로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니까요.”라고 늘 말했던 르누아르의 말처럼 이 그림과 영화 아멜리에는 정말 잘 어울린다.

게다가 50세에 발병한 류마티스로 노년에는 손에 붓을 묶고 간병인이 짜 주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던 르누아르를 떠 올려보면 이 영화는 19세기 그림을 그리는 기쁨으로, 그림을 사랑하며 그림이란 즐겁고 유쾌하고 예뻐야 한다고 했던 말처럼 사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고마워하고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글/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